얼마 전 본 '인스턴트 패밀리'에서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백인 부부에게 입양된 멕시칸 청소년이 "백인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싸우는 거 신기해서 구경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공공장소에서 큰소리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목소리가 크다. 얼굴 근육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발달되었는지, 웃거나 울거나 이야기할 때 얼굴이 잘 일그러진다. 얼마 전 다른 가족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들이 우연히 내 비디오를 찍어둔걸 보니, 다른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멀리 있는 내 목소리 나의 큰 재스츄어만 보인다.
신혼때 뉴욕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이다. 약간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 들리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빨개진 얼굴로 급히 뛰어 오더니, 목소리 좀 낮춰달라고 했다. 이후 계속 관찰을 해 보아도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한 번은 남편이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일본의 모습을 많이 보고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미국에 오랜 산 일본 엄마는 일본에 가면 아이들을 그곳 예의에 맞게 조용히 하도록 단속시키는 게 힘들고 답답하다고 했다.
한국 부부들을 보면 지인 앞에서나 공공장소에서 서로를 깎아내리는 행동이나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내 주위 미국 부부들이 지인 앞이나 공공장소에서 다투는걸 많이는 보지 못했다. 거의 우연히 나에게 들킨 장면들이다. 나와 친한 미국 부부는 나와 만나서 인사만 하면 항상 남편이 부인 정수리에 뽀뽀를 해준다. 그냥 뽀뽀를 하다가 나를 만나는 거면 이상할 게 없는데, 나와 인사를 나누고서 바로 부인 정수리에 뽀뽀를 한다. 부인을 방금 만난 게 아니고 쭉 같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멀리서 둘이 같이 걸어와서 나를 만나도 한결같이 꼭 내 앞에 서서 정수리에 뽀뽀를 한다. 그런 존중, 사랑의 표현은 내 앞에서 부인의 인격을 상승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소리 지르는 장면,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수업이 계속 반복된다. 반면 내가 본 미국에서는 본인의 감정을 이렇게 드러내면 미성숙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문화가 깔려있는 것 같다. 둘 중 어느 게 좋다고 말을 할 수는 없고, 어느한쪽 성향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사람 중에서도 목소리가 크고 감정을 그대로 뿜어내는 편인 나에게 약간의 절충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