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무너진다
많이들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레드불을 가끔 마시는지 모르겠다. 편의점에 가면 파는데, 나는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가끔 한 캔씩 마신다. (물론 한국에는 대체재가 있다. 박카스가 대표적이고, 딱 타게팅해서는 핫식스가 있다) 사실 레드불은 맛없고 비싸다. 나 원 참. 맛없게 만들고 비싸게 팔다니...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레드불을 계산대에 놓고 있다. 레드불 회사도 자기 음료가 맛없고 비싸다는 걸 안다. 농담 삼아, "우리는 어쩌다가 에너지음료를 팔게 된 회사"라고 한다.
2005년 포뮬러 1 스폰서였던 '레드불'은 당시 커다란 인쇄기를 경기장에 가져와 시합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결과를 찍어서 배포했다. (마치 경마장에서 승패를 기록한 표를 나눠주듯이) 이들은 2년 후 '익스트림'이라는 자신들의 콘셉트를 담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레드 불레틴(Red bulltin)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 역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독자의 3대 관심사인 스포츠, 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는 콘셉트의 이 잡지는 매달 200만 부 이상을 찍고, 이중 55만 부는 유료독자들이 구독한다.
이들은 자회사인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를 세웠고, 이걸로 콘텐츠를 쏟아낸다. 레드불의 전략은 열광할만한 행사를 열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거였다.
대표적인 게 2012년 있었던 우주 낙하(성층권) 이벤트다. 오스트리아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지상 3만 9000m에서 우주복을 입고 스카이 다이빙을 했다. 인류 최초의 맨몸 초음속 낙하(https://youtu.be/Oxc-hhQldBE)다. 800만 명이 동시 접속으로 본 이 이벤트를 위해 레드불이 투자한 돈은 740억 원이다. 하지만 이걸로 거둔 광고 효과는 47조 원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레드불 페이퍼 윙스'는 3년마다 열리는데 지난 대회에 80개국 4만 6000명이 참가했다. (올해 열리는 2018 대회는 예선이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4월 9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선전이 열렸다) http://paperwings.redbull.com/Countries/South_Korea/%EB%89%B4%EC%8A%A4.html 발차기 무술대회인 '레드불 킥잇(https://youtu.be/xiT3NMFWBP4 : 2017년 결승)'이나 스케이트 보딩, 절벽 다이빙 등 얘들이 하는 이벤트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월드컵에서 열심히 뛴 황희찬 선수도 레드불과 관계가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는데, 뭔가 황소 같은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레드불은 마케팅 비용 중 2/3 이상을 콘텐츠 제작 등에 쓴다. 특히 잡지뿐 아니라 동영상도 멋진데 전 세계 기업들 가운데 조회수가 압도적 1위다. 2위인 삼성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삼성이 2위라니... 사실 그것도 몰랐었다) 레드불의 브랜드 가치는 79억 달러. 레드불은 수천 개의 영상과 이미지, 음악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스포츠 이미지는 ESPN 외에는 레드불만한 회사가 없다. 영화, 다큐, TV 등 레드불이 다루는 영역에 한계는 없다.
일단 지루해지는 것 같으니 레드불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만하자.
회사가 잡지를 만들고 콘텐츠를 만드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KTX를 타도 KTX 잡지가 있고, 비행기를 타도 항공사 잡지가 있다. 물론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한번쯤 꺼내서 잡지를 읽어본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와우! 이거 미쳤네(Crazy!) 이건 사서 봐야겠는데 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을 거다. 기본전략은 똑같은데도 말이다.
쏟아붓는 돈의 차이가 만든 결과일까?
# 퀄리티, 오리지널 콘텐츠 그리고 역량.
한국에서는 잘 보지 않지만 제네럴 일렉트로닉, 레고, IBM, P&G, 코카콜라 등은 스스로 미디어 제작 회사가 만드는 콘텐츠보다 더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신문사의 경쟁이 신문사가 아니라는 건 옛말이고, 네이버니 포털이라는 것도 지나간 이야기다. 이제 경쟁자는 그냥 전문성을 갖춘 회사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이키를 예로 들어보자. 나이키는 2006년 모바일 기기용 브랜드 앱 NTC(Nice training club)과 NRC(Nike Run Club)을 만들어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성과를 추적하도록 도움을 줬다. (이건 콘텐츠가 아니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이것도 당연히 콘텐츠다)
이 앱은 300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사용하고 나이키는 이들의 이야기로 스토리를 만들고 정보를 얻어 더 나은 제품을 만든다.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를 만들고 수익으로 연결되는 거다. 단기간 소비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NIKE의 팬층을 만들고 계속 함께 가는 거다.
2020년 이후에는 미디어의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의 브랜드 비즈니스 모델 간 차이는 사라질 것이다. 미디어 회사들은 전통 미디어 상품과 동시에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올릴 것이다. 제품 및 서비스 회사도 역으로 그러할 것이다. <킬링 마케팅> p.99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힌트는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에요. 미디어 경영자로서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에 속박되어 그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놀라운 콘텐츠로 훌륭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킬링마케팅 p.115>
미디어 입장에서는 유형의 '상품'이 없다. 무형의 이야기와 스토리는 있지만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하지만, 커뮤니티 구축은 가능하다. 한국 미디어 시장에서 최근 주목받는 다수의 스타트업(?)은 커뮤니티를 중심에 뒀다. '여행의 미치다'가 생산하는 건 콘텐츠일까, 커뮤니티를 위한 상품일까? '트레바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어디에 기반했을까?
물론 커뮤니티를 가반에 두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콘텐츠를 기반에 놓고 커뮤니티 혹은 팬을 만드는 건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가치 있는 콘텐츠 경험을 통해 충성도가 높은 오디언스를 구축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티컬 하게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열정적이고 몰입감을 둘 수 있는 실질적인 경험이 제공되어야 한다)
"마케팅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엔 그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최대한 많은 이에게 정보를 일단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쳐도 소비자는 곧 흥미를 잃고 떠나기 십상이다. 쉴 새 없이 새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소비자를 '내 편'으로 잡으려면 더 확실한 '당근'이 필요하다. 사용자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흥미진진한 네트워크는 소비자를 묶어둘 강력한 유인이다." - 바라트 아난드 하버드대 교수 (HBX)
예를 들어 애로우 일렉트로닉스는 전기 전자 관련 회사다.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구매자인 전기 엔지니어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나에 집중했다. 그들은 엔지니어로 늘 최전선의 기술에 흥미가 있었고 학습을 열망하고 있었다. 애로우 일렉트로닉스는 이를 제공하는 미디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러 전기 엔지어들이 찾는 사이트들을 사들였고, 통합해서 애로우 닷컴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독자 참여도는 폭발했고, 애로우는 전기 관련 51개 미디어 자산을 보유한 산업 내 최대 미디어가 됐다. (물론 나는 애로우 닷컴에 들어갔다가 1분도 못 버티고 나왔다...) 애로우 일렉트로닉스는 이들의 관심사를 이끌고, 이들의 정보를 통해 최적화된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아스펜 코어는 웹 광고, 스폰서, 맞춤 콘텐츠 제작, 잡지, 데이터 판매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얻는 힌트는 뭘까? 버티컬로 좁힌 독자들의 실용적 경험 제공이다.
현실적인 상상을 해보자. 얼마 전 우리는 맥주 이상형 월드컵(http://news.joins.com/DigitalSpecial/301) 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심플하고 직관적인 콘텐츠인데 (별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아 아쉽다... ㅠ.ㅠ) 상상력을 보태보자. 요즘(?) 핫한 브루어리 문화가 있다. 뉴욕 등에서는 유행한 지 몇 년 됐고 한국도 꽤 많이 들어서긴 했는데, 가장 유명한 건 '어메이징 브루어리'(성수동 본점)인 듯하다. 만약 '어메이징 브루어리'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든다면? (잡지/웹진/TV 등 무한하다) 그리고 맥주와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벤트를 기획한다면 어떨까?
나라면 여름에 양양에다 서핑+맥주 브루어리 관련 이벤트를 한번 해보겠다. 실제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지난 수십 년간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셨던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맥주의 맛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본인들의 미션을 언급하고 있다. 성수동에 자리한 본사는 '성수(성스러운 물, Holy water)'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수제 맥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다.
위에 사례를 덧붙이자면 모든 수제 맥주는 여기로 통한다!라는 콘셉트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독자를 모으고 정보를 취합한다면 어떨까? 카스나 하이트, 코끼리(?) 맥주 말고 브루어리 문화를 제대로 선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건 조선비즈는 이미 지난해 제1기 수제 맥주 창업 아카데미를 열었고 올해 2회를 진행 중이다. 물론 홍보 방식은 전혀 재미가 없다. 무슨 노인네 수업 같은 느낌으로 홍보를....)
제품에서 충성도가 애플빠(혹은 농담 삼아-비하의 의미도 일부 포함 - 앱등이)처럼 구매로 드러난다면, 콘텐츠에서는 반복 경험 혹은 구독(Subscribe)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콘텐츠가 범람하고 니치한 접근이 없었기에 구독 문화가 잘 자리잡지 않았지만, 월간 윤종신 등을 기점으로 니치마켓에서 구독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건 다음번에 한번 이야기해 보자)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NC소프트가 미디어를 만들었다. 영화 '옥자', '아가씨', '설국열차', '올드보이' 같은 영화의 시각 특수효과 전문 기업 포스 크리에이티브 파티에 220억 원을 투자했고, 연합뉴스와 인공지능 미디어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야구 정보 서비스 페이지(PAIGE)에 힘을 싣기 시작했고, 웹툰 플랫폼도 키우기 시작했다. 기자들도 꽤나 스카우트해갔다고 들었다.
배달의 민족도 음식 전문 잡지 '매거진 F'를 창간했다. 흔한 "배달의 민족이 힙하구요, 기업문화가 독특하구요" 이런 이야기 말고, 그냥 음식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단다. 이 바닥에서 힙스터로 통하는 매거진 B를 만든 조수용 JOH 대표(카카오 공동대표)가 손을 잡고 만들어서 매거진 F다. 창간호는 Salt 였는데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처럼 접근하고 들어갔다. 스페셜 패키지에는 실제 소금을 넣어서 줬다. 2호는 Cheese 였다.
배달의 민족과 NC 소프트의 접근이나 지향점은 조금 결이 다르다. 하지만, 추구하는 건 같다. 오리지널 콘텐츠, 그것도 좁은 영역에서 팬을 형성할 수 있는 콘텐츠(물론 어찌 보면 음식 같은 건 아주 큰 영역일 수도 있다)를 미디어적으로 접근하는 거다. 그것도 아주 면밀하게 화려한 이벤트를 곁들여서.
마케팅 전략은 사실 잘 모르겠고, 미디어 혁신도 잘은 모른다.
근데 독자 혹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쓰고 싶고 보고 싶고 저장해 놓고 싶고, 스크랩하고 싶고 그런 콘텐츠가 잘 없는 건 맞다. 팬질하고 싶은 '미디어'가 없다는 말이다.
기업이 미디어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자, 딴 짓은 그만하고 일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