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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Lee Apr 13. 2024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다가온 꿈

4일 차 : 빰쁠로나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2023.10.14 토요일

산티아고 순례길 4일 차


Pamplona 빰쁠로나 ~ Puente La Reina 뿌엔떼 라 레이나

24.61km / 8시간 05분 / 날씨 좋음, 비 약간



어제보다 한 시간가량 빠른 7시에 출발했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 곳곳에 취객들이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밤새 술자리가 이어졌나 보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니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스페인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눈에 담으며 걸었다. 수확이 끝나 갈아엎은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산등성이에 줄지어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을 향해 다소 힘든 오르막길을 올랐다. Alto del Perdón(알또 델 뻬르돈, 용서의 언덕) 정상에 도착하자 상쾌한 바람과 함께 짜릿함이 밀려왔다.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정상에 세워진 조형물을 감상했다.



내리막길은 온통 자갈로 덮여 있어 아내가 힘들어할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3일 동안 단련이 많이 되었는지 생각보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내는 발을 헛디디지 않기 위해 매 걸음마다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내리막에서 유독 체력 소모가 심했다. 오늘도 언덕을 내려오고 나면 체력이 전부 소진되어 더 이상 걷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때문에 언덕을 지나면 나오는 첫 번째 마을인 Uterga(우떼르가)에서 일정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가 더 걸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을 공터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이어진 길은 평지 위주였다. 우떼르가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으면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어제 만난 한국인 순례객들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비수기에는 대부분의 알베르게에 전화 예약이 가능하단다. 그저께 Zubiri(수비리)에서 선착순에 밀려 좋은 알베르게에 묵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어제는 걸으면서도 같은 일이 발생할까 봐 조급하고 불안했다. 오늘은 원하는 알베르게에 미리 전화로 예약을 했고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다.


목적지인 Puente La Reina(뿌엔떼 라 레이나)에 도착할 무렵 비가 떨어졌다.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았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비도 꺼내 입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며칠 동안 마주친 네덜란드 부부가 이미 와 있었다. 안부를 나누다 따개가 없어 먹지 못하는 바람에 무겁게 들고 온 와인 얘기를 했다. 그들은 한참을 웃더니 본인들은 접이식 포켓 나이프를 들고 다닌다며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와인을 열 때는 전용 따개만이 유일한 도구인 줄 알았다. 포켓 나이프의 스크류를 코르크에 돌려 끼워 뽑아내는 방법도 있던 것이다. 숙소에서 정비를 마치고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순례자용 물품들을 파는 상점이 보였다. 접이식 포켓 나이프도 진열되어 있었다. 스크류가 있는지 여부만 서둘러 확인하고 곧바로 구매했다. 이제는 숙소에 와인 따개가 없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껏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다.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네덜란드 부부와 다시 마주쳤다. 그들도 우리와 가까워지고 싶었는지 오늘 밤에 와인을 마시잔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요리해 먹고 나자 곧이어 네덜란드 부부도 외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각자 준비해 온 와인 한 병씩을 나눠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Erwin(엘빈)과 Inge(잉어) 부부는 네덜란드인이지만 독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스키리조트 옆에 위치한 작은 식당 겸 숙박시설의 주인이라고 한다. 겨울철에만 운영하는 덕분에 1년에 절반만 일하고 나머지 절반은 여행을 다닌단다. 순례길도 이전에 여러 차례 걸었다고 한다. 부러웠다. 우리 부부가 원하는 삶을 실현하며 사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신감과 동기부여가 생겨났다.



본 매거진은 저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한 날(23.10.10)부터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에 당도하기까지 4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더 많은 사진은 @the_kangkan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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