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보다 30분가량 늦게 일어났다. 어제 저녁 네덜란드 부부와 가진 술자리에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떠날 채비를 했다. 전날 미리 삶아놓은 계란, 사과, 바나나, 요구르트를 챙겨 먹고 8시쯤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뒤쪽으로 펼쳐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이 만들어낸 주황빛 하늘을 등진 채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문득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개인 정비와 식사를 마치고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7시쯤 출발하는 것이 좋다. 그럴 경우 첫 한 시간 동안은 해가 뜨기 전인지라 주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은 핸드폰 조명이 비추는 바닥만 응시한 채 걷다 보면 여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인지 동네 산책로인지 분간이 어려워진다. 답답하고 아쉽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까지 힘들게 왔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도 미지수다. 최대한 많은 장면을 눈에 담아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지나치는 풍경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반면 오늘처럼 8시에 나설 경우에는 순례길에 오르자마자 일출과 함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단점은 금방 해가 중천에 떠올라 뜨거운 햇살을 더 오랫동안 견디며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력이 그만큼 빨리 소진되기에 걸음이 느려지고 휴식도 잦아져 숙소에 더 늦게 도착하게 된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해가 져버리는 바람에 마을 구경은커녕 서둘러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일찍 침낭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몇 시에 출발하던 장단점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8시에 나서서 최대한 빨리 걷고 휴식을 적게 취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생긴다.
계속해서 여러 생각들이 줄지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아내 없이 혼자 걸으면 8시에 출발해도 점심시간 즈음 목적지에 도착해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남은 시간 동안에는 개인 정비를 마치고 마을을 구경하는데 더 여유를 둘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내와 따로 걷게 될 경우 이곳에 함께 온 의미가 사라진다. 아내는 내가 아니었으면 굳이 이 고행길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잡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아내가 조금 더 빨리 걷도록 재촉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다 은연중에 다그치는 뉘앙스가 풍겨져 나왔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내는 이미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곳에 와서 많은 난관들을 극복해 내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칭찬과 격려가 아닌 질책성 언행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도 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는 내공이 부족하다. 나는 왜 이리 이기적이고 속이 좁은가. 조금 늦게 출발해서 천천히 걷는 게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유난을 떨었던 것일까. 반성하며 남은 일정은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한다. 동시에 내일부터는 마음에여유를 가지고 순례길에 임하리라다짐해 본다.
중간에 순례객들을 위한 작은 노점을 두 곳 지났다. 과일, 식수, 주스와 같은 간식거리를 판매하는데 요금은 구매자가 내키는 대로 지불한다. 첫 번째 노점은 히피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달달한 무언가가 몹시 당겼다. 사과주스와 오렌지주스를 하나씩 집어 들고 소정의 금액을 상자에 넣으며 떨어진 혈당을 끌어올렸다.
두 번째는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직접 구운 것으로 짐작되는 빵도 진열되어 있었다. 음식물들 뿐 아니라 돈을 넣는 바구니도 방치돼 있어 누군가 나쁜 마음을 갖고 그릇된 행동을 할까 염려되었다. 순례객들에 대한 신뢰가 확고한가 보다.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목이 말라 물을 계속 마시게 된다. 자연히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남자들은 비교적 걱정이 없다. 온 사방이 화장실이다. 실제로 걸어가다 가방과 스틱을 내려놓고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남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내는 그렇게 하기에는 심리적, 물리적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대신 바르에 주기적으로 들러 카페인 섭취를 핑계 삼아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다.
오늘은 불행히도 한 동안 바르가 없어 아내가 오래도록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겨우 마을에 들어섰으나 모든 상점들이 siesta(시에스타, 낮잠시간) 때문에 닫혀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급한 마음에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하나 한참을 찾아다녔음에도 화장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내가 점점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인내심과 방광이 폭발하기 일보직전 저 멀리 놀이터 바로 옆에 1층짜리 작은 단독건물이 보였다. 간판과 창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업용 시설도 주거용 공간도 아닌 것이 확실했다. 혹여 창고 건물은 아닐까 염려하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저곳이 화장실이 아니면 정말 큰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황급히 달려가 열려있는 문을 통해 화장실임을 확인하고서 가방을 내동댕이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다행히도 공공 개방형 화장실이었고 심지어 무료였다. 백팩 안쪽 깊숙이 넣어놓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잠시 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문을 열고 나타난 아내의 얼굴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시설도 매우 깨끗하더라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어떻게 마침 거기에 화장실이 떡하니 있었을까? 묵묵히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순례객을 그저 신이 도왔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우리 둘 다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신들께 감사를 전했다.
또 하나 운이 좋았던 점은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마침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가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놀이터에서 놀 던 아이 하나가 화장실 문손잡이를 돌려 들어가려 했다. 우리가 조금만 늦게 도착해서 아이가 먼저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고리가 잠겨 내부를 보기 전 까지는 그곳이 화장실인지 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들어가서 잠긴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잠겨 있던 것인지 모르는 건물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에 나타난 작은 해우소(解憂所) 덕분에 아내는 모든 근심 걱정을 비워 낼 수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자의 여유로운 모습
사진을 정리하다 뒤늦게 건물 정면에 화장실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을 인지했다. 당시에는 워낙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만큼 급박한 순간이었다.
순례길용 보조 어플을 이용하면 현재 위치에서 도착지 마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걷는 속도를 이용하면 남은 시간도 대략 짐작가능하다. 나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며 북돋는 차원에서 잔여 거리와 시간에 대한 정보를 아내에게 알려주곤 했다. 문제는 어플에서 알려주는 거리의 측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행정구역 표지판인지 중심지에 세워진 성당인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실제로는 어플에서 알려주는 거리보다 더 걸어야 최종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나와 아내 모두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오늘도 막판에 한 시간만 더 가면 된다는 내 말만 믿고 아내는 남아있는 모든 체력을 쥐어짜 내며 걸었다. 하나 막상 알베르게 까지는 추가로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실망감과 허탈함에 가득 찬 아내를 보니 죄인이 된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내가 앞으로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란다. 걷는 와중에도 어플을 확인해 가며 힘들어하는 아내를 도와주려 한 것인데 부작용만 생겼다. 역시나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아주 약간은 사생활이 보호된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네덜란드 부부, 늘 환하고 멋진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브라질 커플, 정겨운 인상의 이태리 삼부자 그 외에 5일 동안 마주치며 익숙해진 여러 순례객들과 같은 곳에 묵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같은 고행을 이겨내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