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7 화요일
산티아고 순례길 7일 차
Los Arcos 로스 아르꼬스 ~ Viana 비아나
18.91km / 5시간 03분 / 날씨 흐림
생장을 출발하여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은 약 800km에 달한다.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여러 마을들을 지나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가 있는 경우 하루 묵고 가기도 한다.
매일 걷는 거리는 평균 23km 내외로 대부분의 순례객들이 비슷한 거리를 걷는다. 체력이 남았고 마침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가 짧으면 조금 더 걷는 사람도 더러 있다. 매일같이 5km 미만의 짧은 거리만 걷거나 반대로 30km 이상 되는 장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장을 떠난 이후부터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순례자들이 주로 머무는 도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첫날 함께 걸은 사람들과 마지막 날 까지도 길 위, 식당 또는 숙소에서 계속 마주치며 친해질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오늘 못 본 친구는 내일 어디선가 마주칠 수 있다. 반대로 오늘 같은 숙소에서 묵은 동료를 며칠간 못 볼 수도 있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이 또한 순례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따르는 일정에 의하면 오늘은 Logroño(로그로뇨)가 목적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La Rioja(라 리오하)의 주도(州都) 로그로뇨 보다 10km 짧은 거리에 있는 Viana(비아나)에서 멈추기로 했다. 나름 대도시인 로그로뇨까지 30km 가까이 되는 먼 거리를 걸어가서는 막상 체력이 달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싶지 않았다. 비아나에 평이 괜찮은 숙소가 있거니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편을 끊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일정에도 여유가 있었다. 로그로뇨에는 tapas(따빠스, 한입 거리의 안주)로 유명한 골목이 있다. 내일 숙소에 일찍 도착해서 짐을 풀고 다양한 따빠스를 곁들여 낮술을 즐길 심산이 가장 컸다. 다만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일행들보다 하루 뒤쳐지기 때문에 이제 막 가까워진 친구들을 다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기로 했다.
7:15쯤 숙소를 나섰다. 어두운 새벽길을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 걸었다. 저 멀리 불빛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가 우리가 향하는 마을로 추정되었다.
출발 후 6~7km를 걸어 San Sol(산솔)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을 녹였다. 경로를 약간 벗어난 곳에 성당이 있어 가보았으나 문이 잠겨 내부는 구경할 수 없었다. 대신 바로 옆 마을인 Rio del Torres(리오 델 또레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난간에서 잠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오늘도 다행히 걷는 내내 흐리고 기온이 높지 않았다. 바람은 어제보다 강했다. 땀이 나지 않아 쾌적했다.
며칠 전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먹던 도중 아내가 고향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확인하더니 급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이내 한참을 울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의 아버지께서 상을 당하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아버님께서 아내를 많이 예뻐하며 챙겨주셨다고 한다. 애틋하고 각별한 마음이 컸던 만큼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깊은 상심으로 인해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 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한국을 떠나기 전 지인들을 초대해 홈 파티를 몇 차례 가졌었다. 아내의 고향 친구들과 자리를 마련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 친구와도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던 도중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대화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님과 통화가 이뤄졌다. 유럽에 다녀오면 얼굴 뵈러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이 주고받은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렸다. 홈 파티에서 통화하던 순간이 재차 떠오른 아내는 전화를 끊고서 다시금 왈칵 눈물을 쏟아내었다.
같이 저녁을 먹던 네덜란드 부부 Erwin(엘빈)과 Inge(잉어)는 아내를 위로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방법 한 가지를 알려주었다. 우선 걸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은 돌을 찾아 지니고 다니라고 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십자가와 돌탑이 쌓인 장소가 나온다. 갖고 온 돌멩이에 고인의 이름과 마지막 인사말을 적고 십자가 옆에 놓으며 명복을 빌면 된다고 했다. 엘빈과 잉어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자신의 고향이 아닌 인접 국가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인이나 가까운 친척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하더라도 장례식에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도 빈번하단다. 그럴 경우 고인의 넋을 기리며 작별인사를 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알려주었다. 얘기를 듣다 순례길을 걸으며 십자가와 돌무덤이 쌓인 곳을 여러 군데 지나온 것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엘빈과 잉어 덕에 그 장소가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아내는 걸으면서 마음에 드는 돌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다 비로소 오늘 오전 마음에 드는 둥그스런 녀석을 발견해 챙겼다. 신기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규모가 제법 큰 추모 공간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돌멩이들이 나무 주변에 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도 고인에 대한 메시지가 적힌 문구가 빼곡히 달려있었다. 아내는 물티슈로 깨끗이 닦은 돌멩이에 작별 인사를 쓰고는 튼튼해 보이는 돌탑 위에 놓았다.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뵙지 못한 마음의 짐도 함께 내려놓은 듯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나는 고인을 살아생전 뵌 적은 없지만 짧은 묵념으로 애도를 대신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마을에 진입하면서 눈 여겨 두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종업원에게 점심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13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음료와 간단한 안주거리는 주문할 수 있단다. 시계를 보니 30분만 기다리면 되었다. 아내와 나는 맥주를 한잔씩 시켜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식당 내부는 제법 고급스럽고 역사가 오래돼 보였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종업원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가 순례자임을 알고는 특별히 이른 시간에 식사를 대접해 주겠단다. 순간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스페인 사람들은 휴식에 상당히 진심이다. 15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런 호의를 베푼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가적인 이익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 들의 소중한 15분을 우리에게 희생한다는 소식에 연신 감사인사를 전하며 주문을 했다. 곧이어 나온 음식은 예상대로 상당히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직원이 불러 세웠다. 어디에서 왔는지, 순례는 아픈데 없이 잘하고 있는지 등등 물어보았다. 스페인에서 만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김없이 건네는 관심의 표현이었다. 멀리 동양에서 온 순례객 두 명이 더듬더듬 스페인어를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악수를 건네며 Buen Camino(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따듯한 인사를 해주었다. 나도 Hast Luego(아스따 루에고, 다음에 또 봐요)라며 화답했다.
나와 아내는 이왕 나온 김에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를 생각이었다. 식당 근처 세 군데의 마트를 찾아갔으나 시에스따 때문에 모두 닫혀 있었다. 마트를 찾느라 방금 점심을 먹은 식당 앞을 자꾸 왔다 갔다 하자 아까 그 직원이 다가왔다.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물어보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멀지 않은 곳에 마트가 있는데 그곳은 열려 있을 거라고 했다. 정말이지 어쩜 그리도 친절할까 인류애가 차올랐다. 직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향했더니 대로를 약간 벗어난 위치에 마트 간판이 보였고 문도 열려있었다. 계산대에 앉은 중국인 사장은 시에스따를 굳이 지키지 않는 듯했다. 필요한 식재료들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휴식을 취했다.
해가 저문 후 숙소 주방에서 저녁 요리를 마칠 때쯤 다른 순례자가 테이블에 앉아 가져온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우리와 동석하게 되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스웨덴 출신 남성은 소방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5년만 더 근무하면 연금을 수령하며 은퇴 이후에도 편히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근무하면서 동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에 심적으로 지쳐있다고 했다. 더 이상 일에 대한 열정도 없어 순례길 완주 후에는 퇴사할 계획이란다. 그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나의 상황과 일부 겹쳐져 크나큰 공감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고 한들 본인과 맞지 않으면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확고해졌다. 마트에서 산 와인을 나눠주며 서로의 앞날을 위한 건배를 했다.
룸메이트 중 한 명은 캐나다에서 온 항공사 직원이라고 한다. 순례길은 이번이 두 번째란다. 오늘 걸으며 처음 마주쳤는데 트랜스젠더 수술을 통해 성별을 바꾼 듯하다. 물어보진 않았으나 아마도 본인만의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기회가 되면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어쩌면 순례길은 심적으로 지치거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해답 혹은 구원을 바라고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가? 나도 무언가 스스로 얻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가?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특별히 답을 얻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현재를 즐기고 싶다고 느낄 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