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걷기로 한 거리가 짧아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숙소 문을 열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점점 세지더니 드디어 비가 오고야 만다. 배낭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Viana(비아나) 중심부를 벗어나자 비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걷기에는 참 성가신 날씨였다. 우비를 계속 입고 있자니 습하고 벗자니 옷이 젖는 상황이었다. 투덜거리며 걷다가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금세 기분이 풀렸다. 눈앞에 무지개가 나타난 것이다.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감상했다. 개인적으로 무지개와 인연이 깊은지라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어제 만난 따듯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더해져 비아나라는 마을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졌다. 만약 스페인에 살게 된다면 비아나가 잘 맞을 것 같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날씨 때문에 가라앉았던 기분은 한동안 무지개와 함께 걸으며 되살아났다.
이제 10km 정도는 걸은 것 같지도 않게 느껴진다. 중간중간 여유를 즐기며 걸었음에도 순식간에 목적지인 Logroño(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는데 또다시 무지개가 나타나 우릴 반겨주었다. 마지막까지 산뜻한 기분이 유지되었다.
오늘 묵을 공립 알베르게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순례자가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작은 나무상자에 넣으면 된다. 석식과 다음날 조식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인기가 상당히 많다. 체크인 시간은 14시인데 우리는 11시쯤 도착했다. 가방을 숙소에 보관하고 따빠스를 먹으러 가려했는데 할 수 없이 메고 갔다. 로그로뇨는 따빠스 중에서도 특히 꼬치에 끼운 형태인 pinchos(삔초스)가 유명하다. 어제부터 잔뜩 기대를 하고 미리 검색해 둔 가게들을 찾아갔으나 어느 곳도 열지 않았다. 짜증이 슬슬 올라올 때쯤 다행히 영업 중인 곳을 발견했다. 와인과 다양한 삔초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재료들이 굉장히 신선하고 양념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자꾸만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느긋하게 낮술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14시가 되어 숙소 체크인을 하러 갔다. Hospitalero(오스삐따레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우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침대에 가방을 올려놓고 숙소 주변을 제대로 구경하러 나갔다. 지금껏 머물렀던 마을들과 확연히 다르게 도시 느낌이 많이 났다. 로그로뇨에는 삔초스와 낮술을 즐기기 위해 온 것도 있지만 못지않은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시안 식료품점에서 파는 라면 때문이었다. 시내 구경을 핑계 삼아 찾아간 식료품점에서 라면 3 봉지와 통조림 김치를 구입하고 나무젓가락까지 챙겨 숙소로 돌아왔다.
혹여 냄새 때문에 다른 순례객들이 불편할까 싶어 주방 창문을 활짝 열고 그야말로 폭풍 흡입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단순히 해외에서 한식을 접해서, 힘든 노동을 마치고 먹어서,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감성에 젖어서 그리 느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맛이 달랐다. 한 동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MSG의 유해성 논란으로 인해 내수용 제품들에는 MSG가 빠진 채 생산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맛이 순해졌다. 반면 수출용(혹은 해외 생산) 제품들은 영향을 받지 않은 탓에 혀와 입안을 쨍하게 때리는 예전의 맛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둘이서 3 봉지를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MSG는 Ma Sit Gun(마싯군)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순례자들과 다르게 하루에 걸을 여정을 이틀에 나누어 온 탓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몇몇 인연들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예상대로 그들끼리는 이미 상당한 친목이 다져져 있었다. 다만 무리에서 한두 명의 순례자가 리더 역할을 하는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우리가 원래 속했던 그룹은 모두 각자의 시간과 영역을 존중하며 식사 시간과 같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도미토리 침실 내부에서는 가급적 대화를 자제했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소곤거리는 배려가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부분 일상을 벗어나 정신적 휴식을 취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청껏 떠들고 웃어대는 바람에 침실에 누워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리더 격인 몇몇은 과할 정도로이 사람 저 사람 불러대며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나누어 댔다.이 또한 순례의 일부라 생각하며 자기 수련의 기회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샐러드, 삶은 계란, 렌틸콩 스튜, 빵, 와인 그리고 요거트로 구성된 알찬 식단이었다. 같은 숙소에 묵는 순례객들이 함께 테이블에 모여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 부부는 스페인 출신 중년의 여성분과 특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주고받다가 내가 얼마 전 만 40세가 되었다고 하자 20대 후반인 줄 알았다며 깜짝 놀랐단다. 아주머니에게 18세 소녀 같다고 화답해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묵은 숙소는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의식을 제공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지하 비밀 통로로 옆 건물인 성당 내부로 이동했다. 낮에 방문했을 때는 시끌벅적했는데 밤이 되어 고요한 성당에 들어서자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행한 자원 봉사자는 따라온 순례자들의 국적을 저마다 물어보고는 손바닥 크기의 종이를 나눠 주었다. 우리에게는 한글로 번역된 주기도문이 쥐어졌다.
특별한 의식은 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객들이 각자의 모국어가 적힌 주기도문을 돌아가며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동일한 내용의 주기도문을 다양한 언어로 듣다 보니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읽는 이의 감정이 공유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점차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한국인은 우리 부부 둘 뿐이어서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차분히 주기도문을 읽고 고개를 들자 따듯한 눈길들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은 한글을 모르기에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감정은 충분히 동기화된 듯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형언할 수 없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다. 아내와 나는 종교가 없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한 번씩 성당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낭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순례자들도 저마다 하루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했다. 누군가는 나처럼 일기를 쓰고 있고 또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과는 다르게 고요하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가진 특별한 의식 덕에 다들 마음이 차분해진 것인지 취침 시간 이후에는 정숙을 유지하기로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