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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Lee May 15. 2024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17일 차 :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까지

2023.10.27 금요일

산티아고 순례길 17일 차


Boadilla del Camino 보아디야 델 까미노 ~ Carrion de los Condes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26.2km / 8시간 21분 / 흐림 > 비 > 맑음 > 흐림, 바람은 계속....



눈을 뜨자마자 젖은 옷과 신발들이 생각나 난로 앞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모두 바짝 말라있었다. 어제 체크인을 하고 우비를 벗자마자 신발과 옷가지들을 난로 바로 앞에 놔두었다. 아내에게도 그리하라고 일러둔 후 샤워를 하러 갔다. 저녁을 먹고 확인해 보니 아내 신발은 난로의 열기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이 좋은 위치를 선점했었나 보다. 아내 신발이 밤새 마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내 것을 만져보았다. 안쪽까지 새것처럼 뽀송했다. 잘됐다. 둘의 위치를 바꿨다. 확인해 보니 아내는 깔창도 분리해 놓지 않았다. 흠뻑 젖은 신발을 말리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나 보다. 깔창을 빼서 옆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걸었다. 건조대에 있던 기능성 의류들도 걷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자리에 두꺼운 양말들을 옮겼다. 잠들기 전 취한 적절한 조치들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출발 전 7:45쯤 밖에 잠시 나가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기껏 모든 장비들을 말려놨는데 또 젖겠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그때 로비에 있던 누군가 8시부터 강수량이 0mm가 될 거라 전파하고 다녔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자신이 즐겨 찾는 사이트의 기상 예보는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며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웠던 탓에 반신반의 했다. 하늘도 전혀 갤 기미가 없었다. 몇몇은 거추장스러운 비옷을 입지 않고 싶은 마음에 희망을 품고 로비에서 기다렸다. 또 다른 한 무리는 미덥지 않았는지 채비를 갖추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아내가 어물쩍 거리며 준비하는 사이 어느덧 8시가 조금 넘었다. 다시 나가보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있었다. 공용 로비로 돌아와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 자신만만해하던 순례자를 향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모두를 향해 Buen Camino(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를 힘껏 외치며 나서는 그의 뒤를 따랐다. 짧은 시간 사소한 것들로 인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분주한 아침이었다. 어제 워낙 비 때문에 고생을 했던 터라 가방에는 처음부터 덮개를 씌웠고 우비는 손닿으면 바로 꺼낼 수 있는 곳에 두었다. 한 방울이라도 비를 맞으면 즉시 착용하겠다는 정신 무장도 단단히 갖췄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어제의 당초 목적지이자 오늘의 첫 번째 마을 Fromista(프로미스따)에서 아침을 먹었다.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까지의 잔여 거리가 적힌 큼지막한 비석이 보였다. 1일 차에 생장을 떠날 때만 해도 800km가 넘는 거리가 남았었는데 어느덧 462km로 줄었다. 아직 반도 안 왔지만 조금씩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는 것이 실감 난다.



아침을 먹고 나자 다시 부슬비가 내려 우비를 꺼내 입었다.


중간쯤 나타난 마을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성당에 들어갔다. 이틀 연속 비바람을 맞고 걷느라 심신이 지친 탓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아내가 성당 기부함에 동전을 넣고 양초에 불을 밝혔다. 평소 무의미한 지출을 선호하지 않는 탓에 말리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없었다.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길을 나서기 위해 우비를 주섬주섬 입고 있는데 구름이 걷혀있는 게 보였다. 아내의 정성에 하늘이 응답했나 보다. 근 1주일 만에 보는 태양이었다. 우중충했던 기분도 밝아졌다. 오랜만에 광합성을 하며 힘차게 걸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Villalcazar de Sirga(비얄까사르 데 시르가)라는 작은 마을에 멈췄다. 제법 오래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메누 델 디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른 곳에서는 15€를 넘지 않는데 자그마치 18€란다. 경험상 유럽에서는 가격이 비싸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근처에 다른 식당도 없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을 안고 주문 후 기다렸다. 전채 요리를 받고 나서는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의 맛과 양 그리고 구성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곳은 오래전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식당만 운영하는 듯했다. 한창 식사를 하는 도중 30여 명의 단체 손님이 들어와 홀을 차지하고서는 시끌벅적 점심을 먹었다. 잠시 후 무리 중 누군가 전통 순례자 복장을 하고 나타나 순례자들을 위한 노래와 기도를 주도했다. 덕분에 즐거운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어젯밤 아내가 빈대에 물렸다고 한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어 심적으로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안다. 혹시라도 가방에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을지, 오늘 밤에도 숨어있던 빈대가 기어 나와 나를 물어뜯지는 않을지 등등 별의별 걱정이 하루 종일 정신을 괴롭힌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른다. 조그맣고 어린것이 괜히 나를 따라와 고생만 하는 듯해 안쓰럽고 미안하다.




숙소에 도착해 다른 순례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어제의 무시무시한 비바람에 질린 몇몇이 버스를 타고 Leon(레온)으로 이동(속칭 점프)했단다. 네덜란드 출신의 Robert(로버트)는 그게 우리인 줄 알았다며 여기까지 정말 걸어온 것이 맞느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까지 길 위 혹은 식당에서 계속 마주친 누군가 오늘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오해할 만도 하다. 하나 힘들게 고생해서 이곳까지 온 것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지 않아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장난이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로버트는 그걸 살짝 넘은 것이다. 나는 오히려 로버트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아 택시를 탄 줄 알았다고 받아쳤다. 상황이 안 좋거나 힘들면 같은 마을에 며칠 쉬었다 갈지언정 점프는 나의 선택 사항에 있지도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투가 워낙 단호했는지 알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로버트는 점프한 순례자들이 나약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그들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해댔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로버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나와 조건이 같지 않다.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점프를 한다고 해서, 또 누군가는 동키 서비스(다음 목적지까지 짐을 배달해 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순례길을 즐기고 경험하면 그만이다. 그 또한 순례의 일부다.



본 매거진은 저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한 날(23.10.10)부터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에 당도하기까지 40일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더 많은 사진은 @the_kangkan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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