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넷에서 기괴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나무의 뿌리가 땅속이 아닌 지면 위로 노출되어 얽히고설킨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는데그 가운데에 부처의 두상이 박혀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처음에는 누군가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찾아 거기에 부처의 두상을 일부러 파묻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확대한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랜 시간 동안 뿌리가 두상을 감싸고 자란 것 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사진은 강렬한 인상만을 남기고 나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러다 태국 한 달 살기를 하며 느긋한 오후를 보내던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아유타야(Ayutthaya)라고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을 머뭇거리자 아내는 그곳이 우리나라의 경주와도 유사한 유적 도시라고 알려주었다. 평소 경주를 자주 오가며 유적 도시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좋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별다른 계획이 없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여러 이미지들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이 보였다. 예전에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그 사진'이었다.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이미지가 아닌 실물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인해 아유타야에 대한 나의 마음은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바뀌었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90km 거리에 있는 아유타야는 과거 400년간 이어진 태국 왕조의 옛 수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767년 미얀마의 침략으로 인해 도시가 멸망했고 그렇게 몇백 년이 방치되었다고 한다. 정글이 되어버린 옛 수도는 이후 유네스코에 의해 조금씩 발굴되었고 지금은 과거 태국이 번성했던 모습을 다시금 느껴보려는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다음날 우리는 방콕에서 기차를 타고 아유타야로 갔다. 기차역을 나와서 배로 작은 강을 건너고 다시 툭툭을 탔다. 행선지는 왓 마하탓(Wat Mahathat)이다. 매표소를 지나 옛 사원으로 들어갔다. 정확히는 사원이 있었던 터만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은 파괴되어 군데군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벽과 기둥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파괴된 잔해라고는 하나 기둥과 벽의 높이가 상당히 높았다. 아마도 지금의 잔해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당시에는 있지 않았을까. 한 나라의 왕조가 400년 동안 이어지는 것은 굉장히 긴 기간이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휑한 모습만 남게 될 거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러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나무뿌리 속 부처의 두상을 발견하기 직전에 다른 충격적인 현장을 마주했다.
수십 개의 돌부처들이 가부좌를 틀고 두 줄로 앉아있는데 모두 목이 잘려있었다. 침략 당시 미얀마 군인들이 부처의 두상을 전리품으로 가져가면서 목이 잘린 부처의 석상들만 흉측한 모습으로 남았다고 한다. 가운데 자리 잡은 가장 크기가 큰 부처의 석상은목을 기준으로 위쪽과 아래쪽이 서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후대에 머리만 제작하여 보수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와중에 시선을 돌려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이곳을 찾게 된 가장 큰 이유인 나무뿌리에 박힌 부처의 두상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에 박힌 부처의 두상을 직접 보고 나니 조각나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미얀마 군인 중 한 명이 승리의 전리품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돌부처 중 하나의 머리를 잘랐을 것이다. 침략 당시에는 태국이 부유했었기 때문에 사원에도 수많은 전리품들이 있었을 것이다. 군인은 정신없이 전리품을 챙기는 와중에 작은 보리수 밑에 놓아둔 부처 두상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다. 미얀마군이 떠난 자리에는 몇 백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며 정글이 되었다. 정글과 함께 보리수는 매해 자랐고 뿌리도 점차 길고 복잡해졌다. 마침 뿌리 옆에 잘린 두상이 놓여있었고 두상도 뿌리와 성장을 함께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예전에 모니터 속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는 가늠 조차 하지 못했을 이야기가 그려졌다.
보리수 옆에 세워진 안내표지에는 부처 두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미로 두상보다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보리수 바로 앞 바닥에 나무가 깔려있어 두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옷을 더럽히지 않고 앉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미 잘린 두상에 대해 예의를 갖추라는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잘 나가던 왕조가 멸망한 증거이자 태국 역사의 부끄러운 모습 중 하나라고 볼 수 도 있다.
보리수 뿌리에 부처의 두상이 박혀서 자라게 된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아직도 신성시 여기는 태국 사람들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두상을 배경으로 앉아서 사진을 남겼다.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곱씹어 보았다.
거의 전 국민이 불교를 믿는 태국에서 침략자에 의해 잘린 것도 모자라 나무 아래 버려진 부처 두상으로 인해 태국인들의 자존심도 엄청나게 손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버려졌던 두상은 지면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두상에 대한 예의를 갖춰 달라는 문구의 의미는 바닥에서 올라간 부처의 두상처럼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왕조를 이루고자 하는 태국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부디 존중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