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연한 특권의식
얼마 전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 관계부처 합동 발표가 있었다.
연합뉴스 보도(2018/1/29)에 따르면 전체 적발건수는 26개 기관에 총 1,488건으로 모집공고 위반 297건, 면접시험위원 구성 부적절 266건, 규정 미비 171건, 부당한 평가 143건, 채용요건 미충족 112건, 선발 인원 변경 38건, 기타 501건 순이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임직원 189명 업무배제, 기관장 8명 해임"
"채용비리 관련 4,788건 적발, 255건 징계, 109건 수사의뢰"
"해임대상 공공기관장 8곳, 검찰 수사 단계라 공개 미뤄"
"채용비리 연류자, 조사 후 검찰 기소 시 퇴출"
"부정합격자도 절차 거쳐 퇴출"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합동브리핑(http://blog.daum.net/loveacrc/11191)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이낙연 총리의 "금융기관 채용비리 엄정히 조사해 처리"라는 기사도 볼 수 있었다.
이총리 "채용비리 작태에 개탄... 중대한 적폐", 2018/1/30(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1/30/0200000000AKR20180130041200001.HTML?input=1195m)
한 번 생각해보자.
통상 공공기관 또는 은행에서 정규직 1명을 뽑을 때 많게는 100 대 1 이상, 적게는 30~40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게다가 공공기관 또는 은행의 신입 공채는 직무별로 최종 합격자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만약 채용비리로 100명의 정규직이 낙하산으로 입사한다면, 그리고 평균 50대 1의 경쟁률을 가정한다면, 채용공고에 지원한 전체 응시자 수는 5,000명이나 된다. 전국적으로 1,000 ~ 2,000명으로 부정입사자 수가 확대된다면 피해자 수는 5~10만 명까지로 늘어난다. 혹자는 응시기회만 앗아갔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입사를 위해 준비한 기간과 각종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사회적 손실은 사실 추산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이 이처럼 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국민들이 가장 공정하길 기대하는 곳은 정부와 공공기관일 것이다. 그런 공공기관의 채용시스템이 무너졌다고 하니 여론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균등"이 훼손되었다는 경고이자,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라는 낙인효과로 확대 해석도 가능하다.
어쩌면 이는 특권의식이 가져온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우리가 남이가?"
코레일 간부 자녀의 특혜 취업을 풍자한 전국 철도 노동조합의 플랜카드 문구다.
어디까지 뿌리 깊게 스며들었을까?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과연 공공기업과 은행만의 문제일까?
또한, 금융기관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채용비리 수사가 아니라 이 사회에 만연한 특권의식,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사실 모든 기업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실제 나는 대기업에서 채용 과장을 경험했고, 회사를 옮기면서 면접도 수차례 경험했으며, 현재도 스타트업에서 인사 및 채용을 총괄하고 있다. 사실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채용비리를 혼자 힘으로 견뎌내는 것은 무척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게다가 채용 청탁은 고위 임원 또는 경영진을 통해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매우 은밀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한 번 추측해보았다.
OOO 국회의원 자녀,
OOO 고위공직자 자녀,
OOO 임원(부사장, 사장) 자녀 등
그들의 자녀가 입사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기업의 HR 임원(50대 초반)은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나라 60년생 어르신들은 의전을 참 좋아한다. 미리 알아서 굽신굽신하는 그 의전 말이다. 혹 사장이 지시하지 않더라도 회사는 알아서 입사지원자의 신상을 체크할지 모른다. 거래처, 그룹관계사 등 다양한 루트로 조용히 신상을 업데이트할 것이며, 은밀히 사장님께 보고할 것이다.
물론 생각 있는, 힘 있는 정관계 부모들은 자식들이 알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직접 언질할 수도 있다.
"따르르릉, OOO 사장~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내 자식이 그 회사의 메일을 보고 합격/불합격 아는 것보다는 내게 미리 알려주었으면 좋겠네, 그러면 내가 자식들과 얘기하는 것이 훨씬 편할 것 같네, 그것만 해주게, 실력은 있는 녀석이까 잘 볼 걸세..." (이처럼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전부 다 추측이다.)
이런 전화를 받은 사장 또는 경영진은 고민하다가 인사임원을 방으로 불러들인다.
"OOO상무, 입사지원자 리스트 중 OOO 있나? 그 친구는 OOO의 자녀일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 잘 지켜보고 진행사항을 알려주게~, 잘 챙기라는 말일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이것도 역시 추측이다.)
"행간의 의미"라는 말을 아나요?
대기업 12년 동안 문서를 작성하면서 귀에 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행간의 의미는 사회생활, 특히 조직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잘하는 사람은 승진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지금의 경영진은 '행간의 의미' 파악에 있어 달인일지 모른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의전의 달인이기도 하다.
또한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 정관계 로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정관계 어르신들께 자녀 취업보다 더 좋은 로비가 있을까? 어쩌면 취업 알선은 로비의 최정점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알아서 입사시켜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런 로비가 중요한 기업은 어디가 있을까?
공공기관과 은행 아닐까? 그리고 금융기관?
물론 전부 저의 추측이다.
지난 올림픽 시상식 사진이다. 대한민국의 김연아가 완벽한 연기를 하고도 금메달을 받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한국사람 입장이고, 러시아 사람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소트니코바 vs 김연아는 어떻게 된 걸까?
당시 피겨 심판진들의 점수를 살펴보자.
* 기술점수(TES) : 김연아 69.69점 vs 소트니코바 75.54점 (*차이 5.85점), 가산점은 1.91점 소니코바가 높았다.
* 예술점수(PCS) : 김연아 74.50점 vs 소트니코바 74.41점 (*차이 0.09점), 소트니코바가 현장 분위기에 취해 방방 뜨는 연기밖에 못했으나 예술점수 격차가 작다.
** 합계 : 김연아 219.11점 vs 소트니코바 224.59점 (*차이 5.48점)
김연아 관련 당시 해외반응은 아래와 같다.
* ESPN : 홈페이지 소치올림픽 소트니코바 사잔과 함께 '러시아의 홈 어드벤티치(Home-Ice Advantage)'라는 문구를 크게 부각하였다.
* 월스트리트 저널 : "충격"
* 미국 NBC 공식 트위터 : "김연아는 금메달을 도둑맞았다."
얼마 전, 손연재는 아래와 같은 일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가 해명하기도 했다.
소트니코바 금메달 사진에 '좋아요' 눌렀다가 악플 세례 받은 손연재 해명글 (http://www.insight.co.kr/news/137729)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세계가 시청하고 가장 공정해야 할 올림픽 무대에서도 이런 일들은 벌어진다.
결국 이 모든 판정은 얇은 백지 한 장, 그러나 안간힘을 써도 그 한 장이 잘 못 채워질 수 있다. 이것도 스포츠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판정도 사람이 하는 일, 그리고 스포츠에도 로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 또한 추측이다.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특권의식과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리고 특권층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대중들의 생각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즉, 절차를 무시한 낙하산 채용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혹자는 부러워한다. 또 다른 혹자는 낙하산도 심지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인맥과 능력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학벌, 능력, 부의 격차가 당연시되는 사회? 흑수저 계급론이 인정받는 사회? "
그런데 왜 그럴까?
우리나라 대기업, 즉 재벌의 특권의식은 어떨까? 재벌의 자녀는 상무 다는데 몇 년 걸릴까? 5% 이하의 회사 지분만으로도 재벌의 지위를 대물림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이런 것들이 당연시되는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이다. 재벌은 실제로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다. 그래서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그래서 한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은 귀족답게 행동해야 한다, 명성·신분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라는 말이 재벌의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카카오, 네이버, 넷마블, 블루홀 등 창업을 통해 신흥 IT 재벌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사회공헌적 의무가 많이 퇴색되었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창출한 대표자의 업적만이 부각되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재벌 또는 창업신화를 이루면 이런 부와 명예를 누린다'는 슬로건으로 빈부격차를 양산하고 있다. 나만의 착각이길 바란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낙하산은 여전히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고, 해당 기관장 경질과 관련자 인사조치 등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없어 보인다. 결국 힘 있는 분(?)들의 자녀에게는 큰 위험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맹점이다.
새로운 개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노력은 과연 어려울까?
우리의 자녀 세대를 위해서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이다.
오늘도 저녁 9시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한 채용비리~ 그런데 이제는 적발 보다는 대책, 또는 향후 예방책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과연 우리사회, 정부가 어떤 방향성과 변화된 모습을 청년들에게 보여줄지 기대해 봅니다.
표지의 맑은 하늘 처럼 공정한 세상이 펼쳐질 그 날을 위하여~~~~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