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토요일

쉬기만 할래

by Lounge And

아무것도 하기 싫은 토요일


눈을 떴는데 알람이 없었다.
몸이 먼저 일정을 확인하더니, 오늘은 비어 있다고 알려 준다.
그 사실만으로 이불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가, 다시 뒤집어 두었다.
토요일의 첫 선택은 “나중에 보기.”


부엌으로 가서 물부터 한 컵.
커피는 잠시 뒤로 미루고, 속을 먼저 달랜다.
몸이 고맙다고 한다.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었다.
바깥공기가 천천히 들어와 방을 한 바퀴 돈다.
이 정도 환기면 마음도 함께 환기된다.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트레이닝복.
머리카락은 묶지 않고, 양말은 도톰한 걸로.
토요일은 몸이 먼저 편해야 한다.


세탁기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닫았다.
삶에는 미루는 날이 있어야 한다.
미루기로 결심한 일들이 오늘의 균형을 만든다.


거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등을 대었다.
천장을 보면서 다섯을 세고, 다시 다섯을 세었다.
오늘은 숨이 할 일을 먼저 한다.


플레이리스트는 가사 없는 걸로.
볼륨은 냉장고 소리보다 조금 낮게.
조용해야 생각이 도착한다.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두 페이지를 읽고 그대로 덮었다.
토요일의 독서는 “읽었다”보다 “넘겼다”로 충분하다.


점심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밥 한 공기, 계란 프라이, 김치 한 젓가락.
그릇을 비우니 몸이 먼저 설득된다. 살아낼 힘을 받았다고.


설거지를 하다가 싱크대를 조금 더 닦았다.
반짝임이 생기면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이건 일이라기보다 의식에 가깝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잎을 한 번 쓸어 줬다.
작은 생명들이 오늘의 속도를 가르쳐 준다.
빨리 자라는 건 없지만, 멈춘 것도 없다.


쇼파에 기대 누웠다.
문득, 낮잠이 오겠다는 기척이 느껴졌다.
저항하지 않았다. 토요일은 낮잠에게 친절해야 한다.


짧은 잠에서 깨니, 오후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창문 밖 빛이 한 톤 밝아졌고, 마음의 톤은 반 톤 낮아졌다.
그 사이가 토요일의 맛이다.


장 보러 나갈까 하다가 남은 재료를 떠올렸다.
두부 반 모, 파 한 줌, 된장 한 숟갈.
집에 있는 것들로 끓일 수 있으면 그게 더 기운이 난다.


작은 냄비에 된장을 풀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한 숟갈 떠먹으니 몸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고.


밥상에 혼자 앉아 천천히 먹었다.
숟가락이 바빠지지 않도록 일부러 속도를 냈다.
느리게 먹는 건 마음을 아끼는 방식이다.


식후에 10분만 걷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골목 한 바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생각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며 편의점에 들렀다.
달콤한 무언가를 고를까 하다, 따뜻한 보리차를 집었다.
오늘은 누가 봐도 평범한 선택이 나에게 맞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휴대폰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메시지, 알림, 세일.
오늘은 대답 대신 무음. 고요를 잃지 않기로 했다.


노트를 꺼내 한 줄만 썼다.
“오늘의 계획: 하지 않기 리스트.”
빨래, 장보기, 큰 정리—모두 내일로 보냈다.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었다.
잘 쉬는 날이 있어야 잘 버티는 주가 생긴다.
버티는 주가 쌓여야 잘 사는 달이 된다.


저녁엔 TV를 켜지 않았다.
대신 불을 조금 낮추고, 음악을 조금 올렸다.
집의 숨이 들리는 밤은 드물고 소중하다.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제일 어려웠다.
성실의 습관이 쉬는 법을 방해할 때가 있다.
오늘은 그 습관에게도 휴무를 줬다.


침대 옆 탁자에 보리차 컵을 올려두었다.
따뜻함이 손바닥에서 천천히 스며든다.
이 온도면 꿈도 과장하지 않을 것 같다.


잠들기 전 창문을 한 번 더 열었다 닫았다.
밤공기가 짧게 드나들었다.
방 안에 하루의 여분이 남지 않도록.


불을 끄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꽤 많은 걸 했다.”
안부를 묻고, 숨을 고르고, 미루는 법을 배웠다.


토요일은 일요일을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느림이 내일의 여유를 만든다.
그렇게 한 주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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