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회복 12%

서서히 회복된다.

by Lounge And

휴식, 회복 12%


아침에 눈을 뜨니 몸속 배터리 아이콘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어제보다 낫지만, 아직 멀다.
대략 12%, 그 정도의 회복.


수치를 누가 알려 준 건 아니다.
단지 발끝의 무게, 어깨의 각도, 눈꺼풀의 속도.
몸이 오늘의 잔량을 조용히 말해 준다.


12%는 작지만 무의미하진 않다.
문서 한 파일을 열고, 메일 두 통을 정리할 만큼.
그리고 저녁까지 무너지지 않을 만큼.


물을 먼저 마셨다.

컵 하나, 잠깐의 햇빛, 짧은 숨 고르기.
휴식은 생각보다 물리다.


커피는 한 모금 늦췄다.
위장이 놀라지 않게 바나나 반쪽을 먼저.
몸에게 “오늘은 천천히”라고 알려 준다.


해야 할 일 목록을 세 줄로 줄였다.
꼭, 하면 좋음, 미룸.
12%의 하루엔 ‘미룸’이 많아도 괜찮다.


침대는 정리했지만 이불을 탓하지 않았다.
거실은 쓸었지만 광을 내진 않았다.
회복엔 적당한 허술함이 필요하다.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었다.
바깥 공기가 방을 한 바퀴 돌고 나간다.
그 사이 내 마음도 반 바퀴쯤 돈다.


플레이리스트는 가사 없는 걸로.
냉장고 소리보다 조금 작은 볼륨.
조용해야 생각이 도착한다.


점심은 미역국과 밥 한 공기.
과장 없이 몸을 달래는 조합.
배가 먼저 평화로워야 마음이 뒤따른다.


휴식을 방해하는 건 피곤이 아니라 ‘과한 계획’일 때가 많다.
나는 오늘 계획을 고쳐 썼다.
“잘 쉬기,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기.”


오후엔 25분만 가볍게 일했다.
탭은 다섯 개, 알림은 잠깐 묶었다.
작은 몰입이 작은 회복을 만든다.


잠깐 걸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골목 한 바퀴.
땀이 아니라 바람이면 충분하다.


휴식과 도망은 닮았다.
차이는 끝에 있다.
도망은 빚을 남기고, 휴식은 버틸 힘을 남긴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멈췄다.
나는 쉬는 중이지 소비되는 중이 아니다.
화면을 내려두고 물을 다시 들었다.


책을 두 페이지 읽고 덮었다.
표시도, 밑줄도 없이.
오늘의 독서는 “읽었다”보다 “넘겼다”가 맞다.


잠이 쏟아지면 15분만 누웠다.
알람은 한 번만.
짧은 낮잠이 저녁의 낭떠러지를 메운다.

해 질 무렵, 창틀에 팔을 올리고 밖을 봤다.
오가는 사람, 가게 불빛,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
세상이 크기 전에, 오늘의 내가 먼저 작아진다.


저녁은 무리하지 않았다.
두부 반 모, 달걀 하나, 김치 한 젓가락.
그릇을 비우니 마음이 먼저 설득된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설거지를 하다가 싱크대를 조금 닦았다.
반짝임은 성취보다 위로에 가깝다.
깨끗해지는 쪽으로 하루가 기운다.


밤엔 불을 일찍 낮췄다.
휴대폰은 무음, 메신저는 내일.
쉼의 기술은 대답을 늦추는 법에서 시작한다.


노트에 한 줄만 썼다.
“회복 12% 확보.”
숫자는 작아도 방향은 선명하다.


완벽히 쉬는 날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날은 ‘조금 쉰’ 쪽에 가깝다.
그 ‘조금’이 내일의 큰 차이를 만든다.


오늘의 나에겐 스스로를 덜 설득하는 일이 도움이 됐다.
휴식은 논리가 아니라 허락이니까.
“괜찮다, 여기까지만.”


전원을 완전히 끄지는 못해도
절전 모드로는 충분히 버틴다.
그게 12%의 철학이다.


불을 끄기 전, 창문을 한 번 더 열었다 닫았다.
밤공기가 거실을 한 번 스치고 나갔다.
내일의 공백을 위해 오늘의 열기를 조금 비웠다.


이제 잠을 청한다.
오늘의 성공은 대단하지 않지만 정확하다.
회복 12%—작지만 분명한 진척.


#브런치스토리, #감성에세이, #휴식, #회복, #일상회복, #충분주의, #느린하루, #미세회복, #물한컵, #창문환기, #가사없는음악, #미역국, #낮잠15분, #산책, #뽀모도로, #탭다이어트, #무음모드, #자기돌봄, #게으름아니라회복, #작은성취, #리듬만들기, #생활에세이, #도시감성, #브런치연재, #공감글귀, #남기지않는하루, #허술함의미학, #몸의언어, #천천히, #무리하지않기, #밤공기, #적정의미학, #소소한의식, #마음정돈, #회복탄력성, #내일을위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것도 하기 싫은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