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달리고~
알람보다 캘린더가 먼저 나를 깨웠다.
파란 네모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지어 있었다.
오늘은 바통을 주고받듯 말과 문서를 이어야 하는 날.
첫 회의가 시작되기 전, 물을 컵 가득 채웠다.
커피보다 물이 오래 간다.
릴레이의 첫 구간은 늘 호흡에서 결정된다.
입장 전에 노트를 열었다.
‘목적-결정-담당-기한’ 네 칸.
회의가 길어지면, 나는 이 네 칸만 지킨다.
회의는 시작보다 종료가 어렵다.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끝을 떠올린다.
“오늘 여기서 무엇을 정하고 나갈까요?” 한 문장을 첫 줄에 올린다.
첫 회의에서 예상 밖 질문이 나왔지만, 허둥대지 않았다.
모르면 “확인 후 오늘 안 공유”로 박자를 잡았다.
정확하지 않게 길게 말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짧게 말하는 쪽이 팀을 덜 지치게 한다.
회의와 회의 사이 10분은 급수대다.
물 한 모금, 창밖 30초, 메모 정리 3줄.
이 10분이 무너지면, 뒤 구간이 우르르 무너진다.
두 번째 회의는 숫자가 넘쳤다.
숫자는 힘이지만, 때로는 소음이다.
그래서 맨 위에 ‘한 장 요약’을 올리고, 아래에만 상세를 쌓았다.
링크가 연달아 열리고 닫힌다.
프로필 사진들이 켜졌다 꺼진다.
얼굴의 온도차를 읽는 일도 회의의 절반이다.
“결정은 무엇인지, 다음 행동은 누가 언제 할지.”
회의가 격해질수록 이 두 줄을 차분히 반복한다.
낭만은 문학에, 마감은 회의에.
세 번째 회의에서는 모두가 피곤했다.
그럴 땐 진행자가 에너지를 빌려 준다.
의제를 두 개로 줄이고, 각자 말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였다.
릴레이의 핵심은 넘겨주기다.
내가 잡고 늘어지면 뒷사람이 넘어질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달릴 만큼만 정리해 바통을 건넨다.
점심은 12분 만에 먹었다.
빨리 먹지 않으려고 일부러 천천히 씹었다.
오후 구간은 위장을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후 첫 회의는 분기점이었다.
의견이 갈리는 자리에서, 나는 숫자와 사례를 나란히 꺼냈다.
사실과 맥락을 함께 두면 감정이 길을 잃지 않는다.
회의 중 누군가가 “그건 지난번에도 얘기했죠”라고 말했다.
기억은 흔들리고 기록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반복 쟁점’에 태그를 붙였다. 다음 회의에서 바로 찾기 위해.
네 번째 회의는 외부였다.
말보다 파일명이 먼저 신뢰를 만든다.
날짜-버전-핵심어, 단정한 제목이 설명을 절반 줄였다.
일정을 보며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회의는 회의 사이에 있다’는 문장을 떠올린다.
사이가 무너지면, 회의는 기록만 남고 의도는 사라진다.
회의 메모의 마지막 줄엔 늘 질문이 있다.
“내가 지금 결정할 일은 무엇인가?”
질문이 없으면, 회의는 발표회가 된다.
다섯 번째 회의에서 한 동료가 내 노트를 흘끗 보았다.
“그 네 칸, 복사 좀 해도 돼요?”
좋은 습관은 전염된다. 전염되면 팀의 속도가 맞춰진다.
오후 세 시를 넘기면 집중이 꺾인다.
나는 그때만큼은 화면을 잠깐 가린다.
눈을 쉬게 하면 말도 쉬워지고, 말이 쉬워지면 결론이 빨라진다.
가끔 회의가 싸움처럼 끝난다.
그럴 땐 끝에서 한 칸 물러서 요약을 보낸다.
“오늘 합의: 2, 보류: 1, 추가자료: 1.”
분류는 감정을 식히는 가장 빠른 응급처치다.
여섯 번째 회의는 15분 일찍 끝났다.
기적 같은 여유 15분을, 메일 쓰기에 다 쓰지 않았다.
5분은 숨, 5분은 물, 5분은 산책.
남는 시간은 다음 회의의 질에 투자한다.
해가 기울수록 말이 늘어진다.
이럴수록 회의실 시계를 보지 않는다.
대신 ‘결정-담당-기한’ 칸을 조용히 채운다. 채워지면 끝이다.
마지막 회의가 끝나고 파일을 닫았다.
그때부터가 진짜 릴레이다.
회의마다 태어난 할 일들을 달력으로 옮기는 구간.
나는 오늘의 결정을 10줄로 쓰지 않았다.
3줄로 썼다.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밤이 길 때는 문장을 줄이는 게 버티는 기술이다.
퇴근 알람이 울렸다.
인박스는 비지 않았지만, 메모는 단정했다.
비워야만 끝나는 건 아니다. 정리해도 끝난다.
집으로 오는 길, 오늘의 장면들이 짧게 재생됐다.
겹치는 말, 어긋난 시선, 그래도 맞춰지는 박자.
릴레이 회의의 목적은 결국, 사람과 일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문득 떠올랐다.
바통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지만, 사실은 신뢰가 건너간다.
오늘의 바통은 크게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3줄을 펼치면 된다.
회의는 회의실에서 오래 남지 않는다.
기한과 파일과 습관 속에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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