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것

오늘은 아니길

by Lounge And

실패라는 것


아침에 셔츠 단추를 잘못 끼우면,
끝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려야 한다.
실패도 대체로 그렇게 풀린다. 처음의 한 칸을 바로잡는 일부터.


나는 실패를 사건이 아니라 기록으로 본다.
크게 넘어져도 한 줄로 적으면 작아진다.
“가정이 틀렸음, 확인 부족, 일정 과신.” 같은 생활어로.


실패는 대개 무리에서 온다.
욕심이 등 뒤를 밀고, 일정이 발목을 잡고, 운이 어깨를 툭 건드린다.
그 조합이 좋지 않은 날을 사람은 실패라고 부른다.


무릎이 깨졌을 때 필요한 건 철학보다 물과 휴지다.
실패도 비슷하다.
먼저 물 한 컵, 마음 한 번 정리, 다음으로 할 일 한 줄.


실패한 날은 박자를 느리게 가져간다.
설명하지 않고 저장부터 한다.
설명이 길어지면 대개 감정이 앞지른다.


실패는 나를 작게 만든다.
작아지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멍의 모양, 재료의 성격, 습관의 빈틈.


회의에서 답을 못했을 때는 “오늘 안에 확인”을 박아 둔다.
그 약속이 나를 자리로 다시 끌어다 놓는다.
실패는 자존심으로 덮지 말고, 일정으로 덮는다.


메일을 잘못 보냈다면,
사과 한 줄과 수정본 한 장이 최고의 구호다.
빠른 수정은 늦은 변명보다 멀리 간다.


실패를 오래 붙들면 실패가 커진다.
그래서 나는 실패를 짧게, 후속을 길게 한다.
짧게 인정, 길게 개선.


실패도 운이 있다.
혼자만의 실수로 끝나면 다행이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신뢰를 깎으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안전과 신뢰는 언제나 첫 줄에 둔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 말투에서 드러난다.
“몰랐습니다” 대신 “이렇게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뒤에는 “다음 번엔 이렇게 막겠습니다.”


나는 실패를 ‘버전’으로 관리한다.
혼란 → 버전1 → 버전1.1.
완벽 대신 진행을 선택하면 길이 보인다.


가끔은 실패가 방향을 준다.
문이 닫히면 벽이 보이고,
벽을 보면 길을 포기할지, 돌아갈지, 뚫을지 선택이 생긴다.


실패한 날의 식사는 단순하게 한다.
밥, 국, 단백질 한 가지.
몸이 조용해야 머리가 돌아간다.


카페인과 말은 줄인다.
대신 물과 기록을 늘린다.
차분한 문장이 감정을 대신 정리한다.


실패를 너무 빨리 의미화하지 않는다.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은 때로 게으름이 된다.
의미는 개선이 움직인 뒤에 붙여도 늦지 않다.


동료의 실패엔 짧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괜찮아”보다 “내가 A, 너는 B, 마감은 오늘 5시.”
책임을 나누면 죄책감이 줄고 실행이 남는다.


실패는 관계의 시험지이기도 하다.
감정으로 해결하면 상처가 남고,
사실로 해결하면 기록이 남는다.
나는 기록을 남기는 쪽을 택한다.


작은 실패를 일부러 만든다.
테스트 주문, 시범 배포, 가짜 화면.
작은 실패를 앞에서 소비하면 큰 실패를 뒤에서 막을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연다.
밤공기가 한 바퀴 돌고 나가면,
오늘의 실패도 그 정도만 남는다.


노트에 세 줄을 적는다.
“무엇이 틀렸나, 어디서 새었나, 내일 무엇을 바꿀 건가.”
세 줄이면 충분하다. 실패는 화려한 문장을 싫어한다.


잠들기 전 셔츠 단추를 한 번 더 본다.
아침의 삐뚤어짐이 떠오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반듯하다.
고쳐 끼웠으니까.


결국 실패라는 것은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이다.
못 넘어지게 사는 게 아니라,
넘어진 뒤를 빨리 단정히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내일, 나는 또 같은 자리에 선다.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고,
물을 한 컵 마시고,
첫 줄을 새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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