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t Forward>(2023)
소심하지만 심지 곧은 하이틴 너드 주인공, 사랑을 위해 기꺼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사이버펑크 여전사, Beyonce가 Renaissance에서 그러했듯이, 백마를 탄 팝스타, 그리고 필연적으로, 케이팝 우상. Fast Forward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정체성은 삼중 국적의 혼혈인, 오랜 태권도 수련자,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경쟁자 그리고 성공적으로 데뷔한 솔로 아티스트라는 전소미 본인의 그것에 못지않을 정도로 복잡한 듯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대중이 '하이틴'이나 '사이버펑크'와 같은 하위(혹은 비주류) 문화의 개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테크토닉'이나 '저지 클럽', 'UK 개러지'는? 충무로가 저물고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가를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 BTS가 빌보드를 점령하고 케이팝이 국외에 더 많은 청자를 가지게 되었을 때, 혹은 멜론 차트와 노래방 발라드가 저물고 그 자리를 '인디'와 '감성 플리'가 대체하기 시작했을 때? 누구도 정확한 시점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더 새로운 것, 더 힙한 것,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더 진정성있어 보이는 것에 대한 요구는 소수의 발라드-회고주의자들을 뒤로 하고 점차 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Fast Forward가 이토록 다양한 문화적 지역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모른다. 뮤비는 케이팝의 철학을 충실히 이행한다. 보는 이의 시선을 최대한 빠르게 사로잡고,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여 절대 놓아주지 말 것. 사춘기를 지나는 감수성 예민한 아웃사이더 소녀의 성장기나 자기파괴적인 습관에 중독된 채 공허함을 메우려 클럽을 서성이는 밤들, 혹은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삼중 국적 케이팝 스타의 정체성 탐색과정 중에서 어느 한 가지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채 너무도 빠르게 지나쳐가고, 영상이 끝나고 기억에 남는 것은 특유의 중독적인 안무와 코러스의 멜로디뿐이다.
이 유사-연애 감정과 자아 실현, 상업 논리와 아티스트 정체성의 편린들은 용광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손쉽게 머릿속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와 반짝임 속에서라면 현실 세계의 고민은 어제의 일일 뿐이다. 여기, 당신의 영혼을 위한 즉석 섭취형 마취제가 도착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영원한 것은 아니고 3분 정도 지속될 뿐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몇 번이고 되돌려서 다시 볼 수 있다.
이제 충분히 보았는가? 아직 온갖 종류의 의상과 무대, 교차 편집과 챌린지 영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누워서 화면을 밑으로 넘기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어느샌가 취향마저 배달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상업적으로 분쇄되어 원래 형태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된 조각들을 어떻게 끼워 맞출지는 개인의 몫이지만, 뭐 어떤가. 골치아픈 일은 현실 세계에서 이미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런 것쯤 잠시 잊고 이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면 된다. Fast Forward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일을 완벽하게 끝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