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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02. 2016

사람 둘 성향 둘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났다

 너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들은 좋다, 싫다 둘 중 하나로 답이난다던 소개팅이 내겐 그렇지 않았다. 그저 놀람과 놀람과 놀람. 끝없는 놀람 속에 너와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목에서 문득 느꼈다. ' 열개중에 열개가 다 안맞으면 열한개는 맞으려나? '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40분 전에 도착한 메시지엔 저돌적이지만 귀여운 말들이 담겨있었다. 「 오늘 재밌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 핸드폰 화면을 보며 웃음 짓던 와중에도 생각이 났다. 너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 저 내일 잔업 있어서 빨라도 8시에 퇴근인데 괜찮으세요?」 답장을 보내고 아이크림을 바르려 뚜껑을 여는 순간 침대 위에서 작은 진동이 울렸다. 「 좋아요. 그럼 내일 퇴근하고 회사 근처에서 기다릴게요. 」



 기다린다는 끝 말을 한참 들여다보다, 잘 자라는 인사로 답장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왜인지 걱정보다는 기대가 되던 만남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다름에 답은 딱 두 가지였다. 달라도 너무 좋아지거나, 달라서 너무 싫어지거나. 아직 너와의 관계가 깊지 않아서였는지 몰라도, 그때에 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나저러나 뭐 어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팀원들과의 미팅이 끝나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속시간에서 30분 이르게 스케줄이 끝이 났다. 저마다 급하게 가방을 챙겨 팀실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가방에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사 근처 카페에 와 있다는 문자에 나는 지금 갈게요. 라고 답하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무래도 급하게 나온 게 마음에 걸려 가방 안을 살피며 입구를 벗어나는데, 앞을 제대로 보지 않은 탓에 걸어오던 사람과 부딪혔다.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며 고개를 드는데 내 앞에, 그러니까 내 눈 앞에 네가 서 있었다. 어제 보았던 정장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차림으로 자전거와 함께.



 " 저 오늘 반차썼거든요. "

 " 반차요? "

 " 네. 하도 안 썼더니 부장님이 그만 아끼고 쓰라고 하셔서요. "



 스스럼없는 너의 말에 나는 좋겠다며 웃었고, 너는 좋았다며 웃었다. 그럼 오후엔 뭘 했냐고 묻는 내 말에 너는 냉큼 영화를 봤다고 대답하며 묻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사실, 무슨 영화를 봤는지 어떤 감독의 영환지 세세하게 묻고 싶던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 그럼 그 영화는 보셨어요? 아들이 바뀌, "

 " 그럼요! 저 그 영화 제일 좋아해요. "



 성향이 너무 달라 부딪힐게 없다고 생각한 너와 나 사이에서 드디어 맞는 하나가 나왔는데 바로 영화였다. 너는 나만큼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하는 장르 또한 비슷했다. 방금 전 까지 쉼 없이 얘길 했던 영화와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더 너와 나를 공통으로 이끌어 주었다.



 " 이러다 계속 걸어가겠다. 다리 안 아파요? 배는 안 고파요? "

 " 다리는 안 아픈데 배는 좀 고파요. "

 " 뭐 먹을래요? 주변에……. "

 " 마땅한 게 없죠. 어… 맥주 한잔 할래요? 조금만 걸어가면 이 길 끝에 작은 맥주 가게 있거든요. "

 " 좋아요. 근데 맥주로 괜찮겠어요? "

 " 네. 그 집 안주 괜찮아요, 가요. "

 " 그래요, 가요. "



 그렇게 걸어가며 우리는 다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끊겼던 영화의 이야기가 다시금 자연스레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이야기는 순조롭게 음악으로 넘어갔다.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고 듣는다던 너와는 다르게 나는 듣는 노래라곤 음악 사이트에서 정해놓은 TOP 100 리스트가 다였다. 음악에 대한 마음이 깊지 않다는 내 말에 너는 웃음 진 얼굴로 말했다. 음악 가리지 않으면 제가 듣는 곡들 나눠 들을래요? 라고.



 음악 많이 들어요? 라는 내 말에 너는 가디건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이거 들어요. 아무렇지 않게 서슴지 않게 내 손에 제 것을 쥐어주는 너를 보며 나는 멍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괜찮다는 내 말에 너는 이미 그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그랬었다. 안 믿기겠지만 저 이거 두개 있어요. 그러니까 들어요, 편하게 듣고. 다음에, 아니 이 안에 있는 음악 다 들으면 그 때 줘요. 라고.



 " 이거 다 들으려면 한 달은 더 걸릴 텐데 괜찮아요? "

 " 두 달이면 더 좋죠. 세 달이면 정말 좋고. "

 " …. "

 " 그 안에 있는 음악 다 들으면 다른 음악으로 채워서 줄게요. "

 " …. "

 " 근데 우리, 템포는 잘 맞는 거 같은데. 그쵸? "

 " 뭐…. "

 " 매일 만나는 게 부담스러우면 이틀에 한 번씩 만나는 건 어때요?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 "

 " …. "

 " 일주일에 한번도 부담, "

 " 아뇨, 좋아요. "



 내 말에 너는 다행이다 라는 말과 함께 웃었다. 가게에 들어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맥주 두잔과 감자튀김을 시켰다. 순간 잠깐의 적막이 흘렀고, 오늘 너와 만나고 처음으로 둘의 시선이 맞았다. 찰나인 그 순간에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너는 아까처럼 맑게 웃으며 얘길했다.



 " 휴일엔 뭐해요? 밖에서 보내요, 아님 집에서? "

 " 전 대부분 집에서 보내요. 저한테는 집이 놀이터나 마찬가지라. "

 " 나도 좀 그런데, 딱히 나갈 이유 없으면 안 나가죠? "

 " 네. 친구들은 날 좋다고 나가는데 저는 날 좋아도 나가는 일이 적어서. 집에 가만히 앉아서 바깥 구경 하는 거 좋아해요. "

 " 어디 책에서 읽었는데, 누구나 위로를 받는 풍경 하나쯤은 있대요. "



 주문한 맥주와 감자튀김이 테이블에 놓여지고, 너의 말에 나는 순식간에 내 행동이 이해 되었다. 멍하니 서서 밖을 보기도, 가만 앉아서 밖을 보기도, 그런 일상이 내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였는데 그게 그런 이유에서 였다니-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 곳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내가 있을 곳에 있다는 안정감도 들고 했었는데 그게 내게 위로가 되었다니.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서요, 누구나 위로를 받는 풍경 하나쯤은 있다는 말. "

 " 어디 생각 나는 곳 있어요? "

 " 네. 집에서 밖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느꼈는데,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왠지 늘 같은 그 모습에 위로를 받았던 거 같아요. "

 " 집이 좋아질 수 밖에 없겠다. 그쵸? "

 " 그래서 그런가봐요. "

 " 저는 그냥 한강이 좋아서 가는 줄 알았는데, 얼마전에 그 책을 읽고 느꼈어요. 아 그 곳이 내게 위로가 되는구나, 하고. "

 " 위로……. "

 " 문화적으로 받는 위로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위로는 아마도 사랑이겠죠? "



 너는 그 말을 끝으로 맥주를 마셨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또 맑게 웃었다. 조용한 노래가 공간에 울려퍼지고, 말 없이 창 밖을 응시하는 너를 보며 나는 마음이 간지러워짐을 느꼈다.



 내일 뭐해요? 내 말에 너는 궁금 가득한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했고, 나는 재촉없이 너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주말인지라 없던 약속도 생길거란 생각에 약간의 초조함도 느끼던 순간 너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 우리 내일 뭐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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