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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30. 2015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너의 그 말에 나는 초라함을 느꼈다

 그저 말 한마디면 되었다. 누구나 연애를 하면 그 상대에게 내 하루가 맞춰지고, 그 상대에 대해 내 오감을 다 기울이곤 하니까. 여느 때 처럼 평범한 날 이였지만 그 날 만큼 우리의 애정전선이 차가웠던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건 한달을 매일같이 출근했던 네가 오랜만에 갖게 된 휴일에 있어 나는 최대한 간섭을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토대로 나는 너에게 통화를 하며 얘길 했었다.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되냐고 묻자 너는 집에서 하루종일 쉬고싶어 라고 얘길했고, 너의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나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쉬어 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 했다.



 사실 조금은 서운했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애써 그 마음을 혼자 눌러 보았다. 내가 너에게 이해 받고 싶은만큼 너도 나에게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 클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내가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하니까.



 일요일 오전을 집안을 청소하는데에 쓰고보니, 날씨 좋은 오늘을 방 안에서 보내기가 아쉬워 여느 때 처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음 주면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더니 아직은 무리 인 듯 했다. 손에 들고 나온 머플러를 목에 두르며 어디로 갈지 고민 하던 차,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의 노선표를 보곤 나는 무작정 서촌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더 그 마음을 누르며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 멍하니 있다는 친구에게 날도 좋은데 왜 집에만 있냐고, 얼른 준비하라고 우리 서촌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얘길하니 친구는 한껏 귀찮은 목소리를 내보이다 이내 알았다며 웃었고,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자주가던 카페에 들어섰다.



 그렇게 십분 이십분, 오십분 한시간…. 오후 두시가 되어서야 카페에 도착한 친구는 아까만해도 커피는 무슨 커피야 해놓곤 가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제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라떼를 주문하고 내 앞에 앉았다.



 ㅡ 너 오늘 데이트 안해? K 오늘 쉬는 날 이라며?

 ㅡ 피곤하대. 아무리 그래도 한달을 출근했는데 안 그럴까 싶더라고, 집에서 하루종일 쉴거래.

 ㅡ 안 서운했어?

 ㅡ 서운해도 어쩌겠어.



 때 마침 사장님이 들고 온 트레이엔 갓 만들어진 따듯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커피 향도, 아트도 너무 예뻐 사진으로 찍다 문득 집에 혼자 있을 K가 생각나 메세지를 보냈다. 맛있겠지? 라고 쓴 글 위로 방금 찍은 커피 사진이 올라 있었다. 그리곤 친구와 그간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며 문득 시간을 보는데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역시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 생각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니 여전히 K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설마 아직까지 자는건가. 밥도 안 먹고…. 혼자 살면서 끼니를 챙겨 먹는 건 K에겐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아침은 그렇다쳐도 점심까지 거를까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통화음마 길어졌다. 정말 잠에 빠졌구나 싶어 전화를 끊으려던 차, 내 생각과는 다르게 밝은 K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어!

 ㅡ …어? 너 자는 거 아니였어?

 ㅡ 아니, 나 지금 애들이랑 피씨방 왔는데?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되냐고 묻자 너는 집에서 하루종일 쉬고싶어 라고 얘길했고, 너의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나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쉬어 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 했다.



 ㅡ 아까는 집에서 하루종일 쉬고 싶다더니.

 ㅡ ….

 ㅡ 놀러 갈 거면 간다고 연락이라도 해주지, 나는 너 밥도 거르고 자나 싶어 전화 했는데.

 ㅡ …아, 미안해.

 ㅡ 끊을게.



 전화를 끊고 멍해진 나는 기분이 나빠짐을 느꼈다. 나는 당연하게 K를 생각해서 했던 행동과 연락들이 이제는 K에겐 익숙하게 배여져 있을 뿐, K는 그 당연함을 모른 채 지내고 있었다. 왜 그래? 친구의 말에 피씨방 이래. 라고 대답한 난 왠지 모르게 내가 우스워진 기분을 느꼈다. 찰나의 기분이였지만 그 느낌은 나를 충분히 기분 나쁘게 만들었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ㅡ 종일 집에서 쉰다며?

 ㅡ 나도 그런 줄 알았지.

 ㅡ 너가 그렇게 물어 봤을 땐 데이트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거, 너 전화 온다.



 친구의 말에 나는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을 쳐다봤고 액정엔 K의 이름이 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해도 오늘 중 가장 기다렸을 전화였을테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찰나의 순간으로 K의 연락은 내게 달가움과 멀어져 있었다.



 ㅡ 받아서 화내.

 ㅡ 그러기도 싫어.

 ㅡ 하긴, 말해봤자 뭐해. 미안하다고만 할 텐데.



 요란스레 울리던 진동이 멈추고 곧바로 메세지가 띄어졌다.  「애들이 얼굴 본 지 오래됐다고 집 까지 쳐들어와서 끌고 가는 바람에 나왔어.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진짜 미안해. 」  그 문자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친구들 만큼 자신의 얼굴을 못 봤던 건 나도 마찬가진데. 친구들을 만났어도 그 중간에 나에게 연락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였을텐데…. 그저 멍하니 아쉬움과 걱정으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내가 참으로 미워지던 순간 이였다. 계속해서 도착하는 메세지를 뒤로 K의 이름을 꾹 눌러 전화가 연결되길 기다렸다.



 ㅡ 어.

 ㅡ 너 나랑도 얼굴 못 본지 오래됐어. 알아?

 ㅡ 알아. 아 진짜 미안해. 정말 미안해.

 ㅡ 친구들 만나러 가면서 내 생각은 안 났어? …나도 네 친구들처럼 그럴 수 있었어. 근데, 네가 하루종일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나는 그 말이 걸려서 모른 척 전화 끊었던 건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초라한 마음과 함께 울컥함이 밀려왔다. 내게는 이런 말로 저런 말로 상황을 달래 보려 하던 목소리였지만 내겐 그 긴 말이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다. 알았어 끊을게. 맥 없이 전화를 끊고 나는 이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앞에 앉은 친구를 보며 지금 이 상황을 넘겨보려 애를 썼지만 그것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괜한 불편함만 줬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 다시금 떠오른 K의 문자에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어딘데? 내가 지금 갈게. 다분히 이 상황을 덮고 싶어 혼자 바빠진 K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나 지금 친구랑 같이 있어. 저녁 먹고 들어 갈 거야. 내 대답에 K는 그럼 집에 갈 때 연락줘. 라는 말로 대답을 했고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친구와 카페를 나서 동네를 둘러보다 작은 꽃집을 발견했다. 평소 꽃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였지만 오늘 따라 꽃들이 눈에 밟혔던 게 아마도 기분 탓일까 싶었다. 너도 하나 사. 이미 하나를 고른 친구를 지나쳐 나는 장미 한 송이를 골랐다. 계산대로 가자 예쁘게 꽃을 만져주는 플로리스트를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이거 받고 기분 풀어. 친구가 건네는 꽃을 받으며 나는 얼굴으론 웃음이 번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저녁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연락하라는 K의 말이 머리속에 둥둥 떠다녔지만 지금은 하기 싫었다. 어쩌면 그게 너도 내 연락만 기다려봐라. 라는 마음에서 나온 삐죽한 행동이였을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길, 괜한 생각들에 느려진 걸음으로 평소라면 10분만에 걸어왔을 거리를 오늘은 30분이나 흘러서야 도착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과 바나나킥을 사서 품에 안고 걸어가는데 오피스텔 입구에 떡 하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두 컴컴한 거리에 무서움이 밀려와 나는 습관적으로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았고, 당연하게 K에게 전화를 걸려던 차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집에 올 때 전화 하랬잖아. "



 목 끝까지 올린 파카에, 푹 눌러 쓴 모자에 알아보기 힘들던 남자는 다름아닌 남자친구 K였다. 그리고 이 순간, 무서움에 핸드폰을 찾아 K에게 전화하려했던 내 행동에 그만 헛웃음이 났다.



 " 핸드폰은 왜 이제 꺼내. 혹시 나보고 무서워서 꺼낸거야? 나한테 전화하려고? "

 " 아니. "

 " 아니기는. "

 " 왜 왔는데? "

 " 미안해서. "

 " …. "

 " 아까는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이 눈을 봐도 용서가 안될 것 같았던 그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 앞으로는 안 그럴게. 너 서운하게 행동 했던 거 미안해. "



 수줍게 내밀던 손은 오랜시간 밖에 서 있었단 걸 증명하듯 빨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 전화를 하지. 아니면 카페라도 가 있던가. "

 " 그럼 반성하는 기미가 안 보이는 거 같아서, 나름 벌 선거야. "

 " …. "

 " 사과 받아주라. "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나를 품에 안는 너로 인해 내 얼굴엔 그제야 웃음이 돌았다. 다음부턴 그러지마, 나 진짜… 기분 좀 그랬어. 내 말에 너는 알았다며 나를 품 안에 꼭 안았다. 들어가자. 내 말에 너는 나를 품에서 떼어내며 내 손에 들려있던 캔 하나를 보곤 손으로 저를 가르켰다.



 " 내꺼는? "

 " 여기서 기다릴 줄 누가 알았어, 없어. "

 " 사갈까? "

 " 됐어. 이거 너 마셔. "

 " 너는? "

 " …안 마셔도 돼. "

 " 안 마셔도 돼? "

 " 응. "



 그럼 왜 샀어? 내게 묻는 얼굴을 보며 나는 더한 대답을 남기지 않았다. 차마 너 때문에 마시려고 했다는 말은 꼭 오늘이 아니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 밥 있어? 등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는 웃음으로 대답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간 그를 향해 물었다. 된장찌개 끓여줄까? 내 말에 그는 기다렸단 듯 대답하며 웃었다. 꼭 오늘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날선 마음이 오늘로 끝이났다.



 오래 만나 온 시간이 무색할만큼 나는 여전히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해 하는 말 보다도, 미안해 하던 너의 그 눈빛에 날선 내 마음은 이내 사라져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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