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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27. 2015

너와의 첫 만남

여전히 너에겐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 / 두 번째

 어색함이 한껏 맴돌던 순간이었다. 뭐  좋아해요? 라고 묻는 너에게 나는 순간 떠오르는 게 없어 선뜻 대답을 건네지 못했다. 그런 나를 너는 알아챘는지 먼저 고기 좋아해요? 아니면.. 치킨? 이라고 물어오면서도 재촉 없이 너는 당연하게 내 대답을 기다려 줬다.



 혹시 사거리 근처 가락국수 집 알아요? 거기 맛있는데.
 할머니 집 말하는 거 맞죠?
 네.
 엄청 좋아해요. 가요, 맛있겠다.



 그렇게 너와 난 첫 만남치곤 부담 없는 식사로 함께했다. 추워지는 날씨 탓에 국물 있는 음식이 좋았지만, 사실 나는  그때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중 뚜렷한 기억이라곤 네게 티는 내지 않았어도 여간 떨었던 것 밖엔.



 주문 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던 중, 우리 사이엔 간간이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너는 우연히 나와 눈을 마주칠 때면 맑게 웃으며 그런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 사실 다가가면서도 방식이 너무 올드 한 건 아닌가 했거든요. 또 한편으론 너무 가볍게 다가간 건 아니었나 싶고…. "
 " …. "
 " 책 건네면서도 혹시나 남자친구 있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나 걱정도 했는데, …다행이에요. "




 조심스러운 너의 말에 나는 다른 말 대신 웃음으로 답했다. 주문한 가락국수가 나오고, 비어있는 테이블 위로 몇 가지 반찬들이 올려졌다. 맛있게 먹으라는 할머니의 말에 너와 나는 서로를 어색해하던 순간은 잊은 채, 맑은 얼굴로 고맙습니다.라고 얘길 했다.



 하필이면 그 날 따라 가게 있는 손님이라곤 우리 둘 뿐이었다. 서로 가락국수를 먹는 소리 외엔 할머니의 칼질 소리가 다였던 공간으로 찬바람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바람이 차네. 미세하게 열린 창문을 닫으시던 할머니께선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다. 야들아, 밖에 눈 온다.



 첫 눈이네! 내리는 눈이 반가웠는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전보다 조금 격양돼 있었다. 첫 만남에 눈이라니 뭔가 로맨틱하다 싶었다. 그로 인해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애써 긴장으로 웃음을 자제했던 나와 다르게 너는 웃음을 내보였다. 그리고 나를 보며 저 지금 되게 설레요.라고 얘기했다. 그 순간, 왜인지 모르게 나는 너로 인해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시작된 나의 떨림은 가락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틈이 없었고, 급기야 물인 줄 알고 집었던 컵엔 어묵 국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 먹었으면 갈까요?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내 앞으로 보이는 말끔해진 그릇을 보며 네.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 계산해주세요! 그리고 그 순간 너의 행동으로 나는 쉽게 너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래된 가게라 문을 꼭 닫아도 조금은 열리곤 했던 그 문을 나서며 너는 다시 한번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가게에서 나와 얼마 걸음을 하지 않았을 즈음 조용하던 내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 위로 떠오른 이름은 다름 아닌 아빠였고, 그 순간 나는 오늘 저녁 8시에 잡혀있었던 가족 파티가 그제야 생각났다. 올 때 케이크 사와. 8시가 되기 15분 전, 나는 아빠의 전화에 알았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곤 옆에서 함께 걷던 네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사실 오늘 막내 동생 생일이라 일찍 들어갔어야 했는데 제가 까먹어 버렸어요.  미안한 데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대신 제가 다음에 가락국수 보다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

 " 진짜요? 그럼 제가 날짜 정해도 돼요? "

 " 네. 대신 하루 전엔 말해주세요. "

 " 그래요, 그럼 내일요. "

 " 내일, 요? "

 " 네. 혹시 다른 약속 있으세요? "

 " 아니요, 약속은 없는데. "

 " 그럼 됐네요. 나는 하루 전에 말했고, 약속은 없고. 괜찮죠? "



 얼결에 나는 대답을 건넸고 너는 웃으며  가요.라고 얘길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있는 동안에도 너는 내게, 내일 여섯 시예요. 라고 얘길 했고 나는 다시금 얼결에 네. 라고 대답했다.


 자리에 앉으니 옆으로 네가 느껴진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네가 나를 향해 서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필이면 신호에 걸린 지금이 달갑진 않았다. 옆을 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안보기도 뭐한 상황에 창으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까지 들은 이상 모른 척 할수 없어 고개를 돌리니 네가 웃으며 서 있다.


 내일 봐요. 눈을 맞으며 손을 흔들던 너의 얼굴 위로 보조개가 피었다. 때마침 출발하던 버스의 움직임에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고, 너는 밝게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날을 이후로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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