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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23. 2015

너와의 첫 만남

여전히 너에겐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

 처음엔 그저 아, 책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비스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가게에 자주 오는 사람이면 한 번 눈길로 머물 게 두 번 세 번은 보게 되니까. 그처럼 나는 네가 내게 '도서관에 자주 오는 사람' 그렇게 남을 줄 알았지, 다른 뜻으로 내게 남을 줄은 몰랐다.


 언제부턴가 너의 모습이 내게 뚜렷해졌고, 나는 도서관 안에서 보이는 너의 움직임이 반가웠다. 어느 날엔 책을 꽂으러 북트럭을 끌고 가다 서가에 서있는 너를 보곤 속으로 놀란 적이 있었다. 어. 언제 왔지? 그렇게 생각하며 괜스레 들뜬 마음도 느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나와는 다르게 너는 띄엄띄엄 찾아왔지만, 내겐 그 또한 반가웠다. 아마도 그게 사랑의 감정이었으리라- 나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좋았으니까.


 그렇게 지나가던 요일 중 어느 날엔 갑작스레 이용자들이 늘어나 정신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용자가 찾는 책을 찾아주고, 없는 책을 알아봐주고, 대출/반납을 쉼 없이 찍어주고.. 한참이나  반복된 움직임이었다. 뒤늦게서야 한산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자리에 앉아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내 앞으로 반납할게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였다. 정신없는 와중에 만난 네가 반가웠지만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네, 반납 처리했습니다. 우두커니 서 있던 너는 내 말에 혹시 연체됐어요? 라고 물었고 나는 곧바로 아니요, 연체 안됐어요. 라고 대답했다.


 내가 봤던 너는 평소 같았음 바로 서가에 들어 가 빌려 갈 책을 골랐을 텐데, 그 날은 지체 없이 데스크 옆 책상에 앉아 빌려뒀던 다른 책을 읽는 듯했다. 너는 그냥 그 자리가 비어 앉았을 테지만, 나는 괜한 긴장감이  온몸을 에워쌌다. 분명 너는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나는 괜히 내 뒷모습이 신경 쓰여 일하는 도중 몇 번이나 작은 숨을 내쉬었다. 한편으론 차라리 네가 가길 바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억지로 책을 보며 나 홀로 복잡한 감정에 뒤섞여 있을  때쯤,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나는 너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당연하게 바코드를 찍기 위해 리더기를 들었는데 이상하게 화면에 인식 표시가 뜨질 않았다. 혹시 필름이 떨어졌나 싶어 책을 들여다보는데, 바코드 부분엔 도서관 표시가 아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저기요.



 메모를 확인하고 고개를 드는 날 보며 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면 전화번호 좀 주세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들려오는 너의 말에 나는 설렘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순간 이게 진짜인가 싶어 너를 가만 쳐다볼 때에도 너는 웃으며 손짓으로 포스트잇을 가리켰다. 그리곤 막 내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의 인기척을 느끼곤 대출해주세요. 라고 얘길 하며 손으론 전화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쩌면 너의 반응을 기다려왔던 나였기에 짧은 고민을 뒤로 포스트잇에다 번호를 썼다. 그리곤 대출한 책을 너에게 건네며 12월 6일 까집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너는 네. 라고 대답을 하며 도서관을 벗어났고, 나는 멍한 기분을 느끼며 앉아 있는데 책상 위로 작은 진동이 울렸다. 화면 위로 낯선 번호가 뜨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너로 보이는 문자가 와 있었다.



 언제 퇴근하세요?



 거침없는 너의 물음을 보며 나는 6시에 퇴근해요. 라고 답장을 보내고는 다시금 멍해졌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 이 상황을 돌이켜보던 내 손 위에서 다시금 작은 진동이 울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수신자는 너였다.



 퇴근하고 약속 있으세요? 없으시면 저랑 같이 저녁 어떠세요?



 그제야 온몸으로 느껴지는 설렘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런 너의 물음에 좋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 얼굴을 혹시나 누가 볼까 싶어,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는 말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이 좋을까 몇 번이나 메시지를 쓰고 지우던 나는 연이어 썼던 그 길던 말들을 뒤로 한 채, 간결한 대답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네, 좋아요. 방금 보낸 내 대답을 단숨에 읽었는지 그럼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라는 너의 대답으로 우리의 대화는  사그라들었다.


 그로부터 퇴근시간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시작된 나의 분주함은 누가 봐도 어제와는 다른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점점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오면 어떡하나 했던 6시가 오고야 말았다.


 퇴근하자. 라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나는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입구로 내려가는 내내 밀려오는 초조함에 한 겨울에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먼저 갈게요- 입구에 도착하자 곳곳으로 흩어지는 선생님들 사이로 우두커니 서 있는 네가 보였다. 조용하던 공간으로 여러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본 너는 나를 발견하곤 맑게 웃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걸음에 나는 마른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혹시나 차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생각 못한 너의 목소리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고, 너는 그런 나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다시금 맑게 웃으며 얘길 했다.



우리, 걸어가면서 통성명할까요? 아직 이름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뭐 좋아하냐고 물으면 실례인 거 같아서요.



 그렇게 우리는 색다른 방향으로 인사를 나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말을 앞둔 12월 어느 날, 내게도 설렘으로 가득 한 순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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