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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03. 2016

사랑은 몰래 온 손님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퇴근했냐고 물어오는 준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회사 건물을 벗어나던 주원은 나 이제 퇴근해 라고 대답하며 건물 유리로 비춰진 저를 가다듬었다.



 " 야! 그럼 회사 앞에 있어! 지금 데리러 갈게! "

 " 왜 이래, 너 목동이야? "

 " 어. 금방 가, 십분이면 돼. 추우니까 건물 안에서 기다려. "



 서둘러 끊긴 전화를 보며 주원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의심스러운건 3월임에도 살을 에는 이 추위였다. 서둘러 말해도, 막상 만나면 쓸데없는 부탁임이 틀림없을거라 확신하며 준우를 기다리던 주원은 10분하고도 5분이 더 지나서야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건물 밖으로 나섰다.



 " 십분은 무, "

 " 너 오늘 약속 없지? "

 " 어? "

 " 있어, 없어. "

 " 없어, 왜. "

 " 그럼 나랑 어디 좀 가자. "

 " 어디? "

 " 계모임. 가서 나랑 한시간만 있다 오자. "

 " 야, 니 모임에 내가 왜 가! "

 " 밥 살게. "

 " 이게 밥으로 될 일이야? "

 " 고기, 고기 사줄게. "

 " 어디로 가는데? "

 " 고등학교 애들 계모임. 이번엔 다들 짝지랑 같이 나오기로 했는데 아, 나 완전 까먹고 있다가 아까 연락받고 알았어."

 " 짝지면, 여자친구? "

 " 응. "

 " 야, 장준우 어쩌다 이렇게 됐냐. "

 " 측은하면 군말말고 따라 가주라. "

 " 그래, 안그래도 배고팠는데 가서 밥이나 왕창 먹어야지. "



 10년 넘게 주원과 가까이 지내오며 많은 걸 알고 있던 준우였다. 다짜고짜 회사 앞으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을 때도 머릿속으로 든 생각은 단 하나, 제발 약속만 없어라! 였다. 이런 제 요구를 듣고 질색팔색 하면서도 고기라는 한마디에 당연하게 오케이를 할 주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 야, 그럴거면 미리 말해주지. "

 " 왜? "

 " 화장이라도 좀 고치고 있게. 하루종일 회사에서 쩐 얼굴로 가려니까 내가 다 부끄럽다. "

 " 됐어, 신경 안써도 돼. "

 " 그건 니 입장이고, 내 입장은 또 그렇지가 않아요. "

 " 니 입장은 뭔데? "

 " 가면 남자 수만큼 여자들도 있을텐데, 그 사이에서 대박은 못쳐도 중박은 쳐야겠다. 뭐 그런? "

 " 뭘로 중박치게, 성격으로? "

 " 미쳤냐? "

 " 설마 얼굴은 아니지? "



 능숙하게 달리는 차안에서 화장을 고치던 주원은 왜 아니야? 라고 당차게 대답하며 브로우 뚜껑을 닫았다. 수정 화장이라 해봤자 뜬 얼굴 잡아주고, 지워진 눈썹 채워주고, 맹해진 입술 발라주는 게 다였지만.



 주차장으로 진입하며 다왔다고 얘길하는 준우의 말에 주원은 별안간 떨려옴을 느꼈다. 나 왜 떨려? 저조차도 몰라 어이가 없다는 듯 물어오는 목소리에 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가자,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시끌한 테이블 속에서 준우의 이름이 들려왔다. 저를 반기는 친구들을 보며 인사를 건네던 준우는 제 뒤를 따라 걸어오던 주원의 손을 낚아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리 가까이에서 늦어 미안하다는 준우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섯 친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주원을 향했고, 저마다 다른 인사를 건네며 반가워했다.



 어색하지만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식사가 시작되었고, 다들 어떻게 지냈냐는 말로 대화는 흘러가고 있었다. 철없던 십대에 만나 이십대 후반에 접어 든 지금. 모두가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단 채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다들 철은 들지 않은 듯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들의 관심사는 한결같이 피규어였고, 그런 모습들을 보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던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주원은 별다른 반응없이 묵묵히 음식을 먹으며 허기 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전과는 다른 여자친구, 전에는 없던 여자친구,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모인 자리에서 여섯명의 남자들은 서로가 잘 아는 서로의 비밀을 감추려 애쓰는 중 이였다. 혹시나 저들 중, 누가 말 한마디 잘못 했을 경우엔 이 자리에서 모두가 전멸인 쉽게 말해 사랑과 전쟁이 베이스인 모임이였다.



 서로에게 과하지 않은, 듣기좋은 말들이 오가고 시끌시끌한 사이에서도 다른 말 없이 얘기만 듣고 웃고 있는 준우와 주원의 앞으로 조금은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원씨, 준우랑은 어떻게 만난거에요? 얘가 연애를 해도, 안해도 통 티를 안내서 저희가 이런 자릴 만든거거든요. 벌금이랍시고 삼십만원이나 내걸고. "



 그제서야 퇴근 길에 걸려 온 준우의 전화가 이해되던 주원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저에게 구구절절 부탁하던 목소리가 이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차, 앉아있던 의자 등받이 뒤로 준우의 손이 느껴졌다.



 " 너네한테 소개 시켜주면 온종일 예쁘다는 말만 할 거 같아서 숨긴거야, 이것들아. "

 " 하여튼 말은 잘해. "

 " 어떻게 만났어요, 주원씨? "

 " 뭘 물어, 예쁘잖아. 내가 밥 먹듯이 쫓아 다녔어. "



 솔직한 준우의 말에 여자들은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고, 다른 말 대신 입을 벌린 채 하나같이 저만 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준우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만 물어, 애 체하겠다.



 조금은 짓궃은 말들과 그만큼 유쾌한 말들이 오가고, 이미 늦어버린 시간을 더 보낼 수 없어 다음 만남을 기약하던 서로의 얼굴엔 아쉬움이 한껏 묻어 있었다. 하나 둘씩 자리를 벗어나고, 춥다며 먼저 들어 가 있으라던 준우의 말에 차에 올라 탄 주원은, 유리 너머로 친구들을 배웅하는 준우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혔다.



 " 너무 늦었지? 얼른 데려다 줄게. "

 " 됐어, 천천히 가. "

 " 애들 귀엽지? "

 " 응. 어쩜 성격들이 다 똑같아. "

 " 근데 너 괜찮아? "

 " 왜? "

 " 애들이 짓궃게도 굴었잖아, 혹시 너 기분 나빴을까봐. "

 " 별로? 괜찮았어. "

 " 김주원 어른 다 됐네. "



 오랜시간 알아지내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연애엔 깊게 터치하지 않았다. 개입한다한들 삐진 연인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남자의 입장을 들어보는게 다였으니까. 오랜시간 알아오면서도 저는 몰라야 당연한 준우의 모습들을 오늘 주원은 여러번 느꼈고 부탁으로 함께했던 자리를 다녀 온 이후, 주원은 한번도 궁금해 해본 적 없었던 준우의 다른 모습들이 하나 둘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진짜 여자친구를 한번도 안 보여 준 거야? "

 " 음, 어. 정확히 스물 네살 이후로는? "

 " 왜? 전만해도 잘 만나던 사람 있었잖아? "

 " 그냥. 그 때 연애 이후로 주변 사람들한테 소개 시켜주는 게 조금 부담스럽더라고. "

 " 왜? "

 " 서로 엮이면 헤어져도 헤어진 게 아니니까. 아무리 소개라지만, 한 두번 만나보면 너도 나도 가까워 질 텐데. "

 " 그렇게도 생각을 하는 구나. "

 " 난 또 연애를 오래하는 타입이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랑 가까워지는 건 시간 문제더라고. 뭐 물론 서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데, 헤어지고 나니까 그 친함이 사람을 참 피곤하게 만들더라. "

 " 그러네, 듣고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

 " 어쩌면 내가 너무 앞서가는 거겠지. 근데 나는 그 이후로 연애 성향이 그렇게 바껴 버려서. "

 " 그럼 여자친구가 서운해 안해? 친구들 소개 안 시켜준다고? "

 " 물어오긴 했는데, 서운해 하진 않더라. 다들 회사 다니니까 바쁜 것도 있고, 그 때문에 모임도 몇 번 미뤄졌고해서. "



 진심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주원은 제가 몰랐던 준우의 작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며 드러나는 개인의 성향에 있어 누가 맞다, 틀렸다 잣대를 들 수 있을까. 다만, 이 사람과 나는 다르구나 하는 마음으로 수긍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이 순간, 주원은 짧고도 깊게 느꼈다.



 " 아까 친구들이 그랬잖아, 너랑 연애하는 여자는 복 받은 거라고. "

 " 설탕 발린 말이야. 너 들으라고, 듣고 좋으라고. "

 " 근데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더라. "

 " 응? "

 " 너 연애 할 때 보면 매력적이야. 배려심도 깊고, 애정도 깊고. 가끔은 여자친구가 듣고 싶어하는 낯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알고. "

 " 그치? 오빠가 좀 그래. "

 " 전에 내가 그랬잖아, 너 홍대 다니던 그 여자 애 만날 때, 뭐 그런 말을 전화로 하냐고. "

 " 응. "

 " 그게 친구 입장에서 보면 되게 재수 없는데, 여자 친구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좋은 남자거든. "

 " 뭐냐 우리 주원이? 오늘 오빠한테 반하는 날이냐? "

 " 너 듣기 좋으라고 말해주는거야. 연애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 "

 " 알았어, 새겨 들을게. "



 어쩔 수 없이 일어 난 상황에 없는 여자친구를 대신해 데려 간 자리였지만, 준우는 마치 여자친구를 대하듯 주원에게 조심스러웠다. 친구로써도 깊었던 배려는 여자친구를 대할때도 같았고, 주원은 준우에게서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여러 번 받게 되었다.



 " 주원 씨, 준우가 잘해주죠? 저 놈 저거 연애할 때 보면 되게 예쁜짓만 골라하는데. "

 " 네? 네, 예쁘죠. "

 " 뭐야. 너무 대놓고 예뻐하니까 부끄럽네. 그럼 나도 대놓고 화장실이라도 가야되나. "

 " 눈치챘으면 샐러드 좀 잔뜩 퍼오든가. "



 태중의 눈치에 준우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믿지만 그만큼 의심스러운 친구들을 살펴보던 준우는 주원의 어깨를 살짝치며 입만 웃어 보였다.



 " 사실 좀 걱정했어요, 준우가 연애에 겁먹은 거 같아서. 근데 주원씨 보니까 그런 모습은 안보여서 다행인 거 같아요. "

 " ... . "

 " 쟤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중에 마음 하나는 제일 예쁜 놈 이거든요. 잘해주세요, 사랑도 많이 많이 주시고. "

 " 네. "

 " 제가 다 고맙네요. 앞으로 자주봐요? 그런 의미에서 짠. "



 저에게도 좋은사람이듯 주변 친구들에게도 준우는 좋은사람, 예쁜사람이였다. 금세 조용해진 저를 눈치보듯 보고있던 준우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주원은 다른 말 대신 방금 전의 상황들을 정확히 곱씹었다. 그리곤 제 시야로 익숙해진 거리를 보고서야 자세를 고쳐 앉은 주원은 그제서야 제게 뭘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어오는 준우의 목소리에 시선을 맞췄다.



 " 좋은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건설적인 생각? "

 " 왜 갑자기? "

 " 그러게, 갑자기 그걸 배웠네. 덕분에 오늘 저녁 잘 먹었다. "

 " 너 왜 그래? 무섭게. "

 " 간다. "

 " 야! 김주원! "



 차에서 내려 저를 부르는 준우를 보며 해맑게 손을 흔들던 주원은 금세 집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밤, 두 남녀의 마음 속으론 각기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평소와는 다른 여자의 모습에 쟤가 왜 저러지? 라는 궁금증을 품은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의 마음으론 한껏 자책만이 맴돌았다. 새삼스레 정신없이 뛰어오는 제 마음을 느끼며 내가 왜 이러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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