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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05. 2016

친구와 연인 그 사이

아슬함 속 간지러움

 연인과 헤어지며 참았던 눈물을 이제야 다 쏟아내는 듯 했다. 벌써 한시간 째, 아무 말도 없이 울고만 있는 예주를 보며 윤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말릴수도, 다독일수도 있는 상황이였지만 앞서 윤재는 그런 행동 대신 펑펑 우는 예주를 내버려 두었다. 물 사다줘? 어느덧 진정한 울음소리에 넌지시 묻던 윤재는 고개를 끄덕이는 예주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신 잘 차리고 있어.



 공원에서 마트까지는 오분거리였지만 늦은 밤, 벤치에서 울고 있는 여자는 누가봐도 위험했다. 걸어가면서도 문득 문득 뒤돌아 확인하던 윤재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비어있던 두 손엔 어느새 물과 사탕이 쥐어져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말 없이 물을 따 손에 쥐어주자, 금세 반을 비워내던 예주는 목이 탔는지 다시 또 물통을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러게 적당히 좋아하라니까. 사 온 막대사탕을 까며 예주의 눈치를 살피던 윤재는, 그게 내 맘대로 되냐며 다시 또 울컥하는 얼굴을 보며 잽싸게 막대사탕을 물렸다.



 " 걔 여자 생겼나봐. "

 " 그렇겠지. "

 " 그렇겠지라니? "

 " 그러니까 이렇게 매너없이, 미련없이 헤어지자 했겠지. "

 " 씨. "

 " 가서 깽판칠래?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고 하면서 얼굴에 물도 붓고? "

 " 재밌냐? "

 " 조금? "

 " 너무 지고지순 했나봐. "

 " 그렇긴 했지. "

 " 그래서 질렸나봐. "

 " 그 말이 충격요법으론 최고지, 끙끙되지말고 잊어. "

 " 그랬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다 잊혀졌으면 좋겠어. "

 " 그건 좀 현실성이 없긴 하다. "

 " 놀리냐? "

 " 조금? "



 굳이 깊게 예주의 상황을 터치하려 달려들지 않던 윤재의 생각은 그저 담백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열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 울었으면 가자, 너 통금 삼십 분 전이야. 자리에서 일어 난 윤재는 예주의 가방을 매며 먼저 걸음을 떼었다. 곳곳에 켜진 가로등 불빛이 어둔 길을 밝혀주었고, 조용한 도로위론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가 번져 올 뿐 이였다.



 앞서 걷던 윤재는 제 뒤를 밟으며 걸어오는 예주의 발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무리였다. 뻔한 위로도, 작은 웃음도 예주에겐 닿지 않을 것 이였다. 괜시리 저 또한 복잡해진 마음을 느끼며 걷던 윤재의 뒤로 예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배고파- 하는 어린 목소리가.



 " 편의점 가? "

 " 응. 삼각김밥이랑 라면 먹을거야. "

 " 밤 열두시에 참 야무지다. "

 " 한입만 달라 하지 마. "

 " 안 해, 나도 먹을거야. "



 얼마 걷지않아 아파트 초입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 선 둘은 이미 손이 모자랄 지경이였다. 테이블 한가득 놓인 건 라면과 삼각김밥 말고도 맥주와 치즈, 과자도 함께였다. 꼭 다 먹어라. 으름장을 놓던 얘기하던 윤재는 방금 전, 음료 코너에서 소주를 집던 작은 손을 막으며 말했다. 너 취해서 업고가면 내가 혼나, 내가 너 그렇게 먹인 줄 알고.



 봄이라기엔 여전한 일교차는 크게 보였다. 제가 입고있던 자켓을 여미는 예주를 보니 저걸론 추위는 택도 없다 싶었던 윤재는 당연하게 제가 입고있던 잠바를 벗어 건넸다.



 " 안 추워. "

 " 입어. "

 " 너 춥잖아, 감기 걸려. "

 " 너 이거 줬다고 나 감기 안 걸려. 빨리 받아, 라면 분다. "



 예주의 품으로 잠바가 떨어지자 기다렸단 듯 라면 뚜껑을 열던 윤재는 먹자며 젓가락을 들었다. 한동안 말없이 먹던 두 사람 사이론 다른 말은 오가지 않았고, 그저 맛있게 먹는 소리만 들려 올 뿐이였다.



 더 좋은 남자 만나서 후회하게 만들거야. 맥주 캔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입을 꾹 깨무는 예주를 보며 윤재는 웃음진 얼굴로 박수를 쳤다. 예주에겐 하소연인 이별 이야기 또한 윤재의 눈엔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 이였다.



 " 내가 어쩌다 그런 놈을 만나가지고. "

 " 어제만해도 좋았을건데? "

 " 그건 그렇지만. "

 " 그냥 헤어졌구나 하고 말아, 너 매일 그렇게 생각하면 후회밖에 안남는다. 연애할 때 좋았던 그 감정은 모두 뒷전 되어버리고. "



 진중한 윤재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보이던 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 라며.



 부른 배와 적당한 취기가 다시금 예주를 흔들고 있었지만, 순간 순간 잊어버릴뻔한 자존심을 윤재가 지켜주고 있었다. 나란히 막대사탕을 문 채, 각자의 생각으로 걷던 거리 위론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 너 근데 왜 연애 안해? "

 " 나 연애하면 너 서운 할 걸. "

 " 서운해? 뭔 소리야? "

 " 나 연애하면 니가 불러도 이렇게 못 나오지, 내가 이 시간에 가만 집에 있을리가 없는데. "

 " 아- "

 " 아? "

 " 맞는 말 이네. "

 " 뭘 또 맞는 말 이야. "



 예주의 이마를 밀며 메고있던 가방을 건넨 윤재는 얼른 들어가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마웠다고 얘기하는 얼굴을 보며 윤재는 이상하게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너 왜 자꾸 웃어? 이상하단 듯 물어오는 얼굴을 가만보던 윤재는 별안간 고개를 숙여 예주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가져다댔다.



 " 너 눈 좀 감아봐. "

 " 어? "

 " 얼른 감아 봐. "



 윤재의 독촉아닌 독촉에 예주는 눈을 감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예주의 마음이 점점 떨리고 있다는 걸 심장 소리가 아닌 곱게 내려진 속눈썹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까이 마주 한 두 얼굴 사이로 두 사람의 숨소리가 가까워 지던 차, 예주는 제 시야를 지고있던 그늘이 금세 개어졌음을 느꼈다.



 " 눈 떠도 돼. "

 " …. "

 " 아니 눈 밑에 뭐가 묻었길래 뭔가 했는데 속눈썹이였네. "

 " …. "

 " 들어 가, 춥다. "

 " …응, 오늘 고마워. "

 " 고마우면 얼른 잊어라. "

 " 어? "

 " 그래야 나랑 놀 때 딴 생각을 안하지. "

 " 그래, 알겠어. "



 손을 흔들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던 예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야 윤재는 걸음을 떼었다. 혼잣말로 느즈막히 예주의 대답을 따라하던 윤재의 얼굴위로 막을 수 없는 웃음이 번져가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친구여서 좋은건지, 친구 이상이여서 좋은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건 윤재는 그저 예주가 좋다는 거였다. 어느 날엔 아슬아슬한 이 사이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의 실수로 인해 사이가 틀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벅찬 마음은 늘 곱게 접어지곤 했다. 오늘 하루, 예주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윤재는 몇번이나 그 남자가 부러웠고, 헤어진 얘길하며 금세 약해진 얼굴을 보이는 예주를 보며 몇번이나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



 웃던 얼굴, 울던 얼굴, 울음을 참던 얼굴, 그 많은 얼굴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지만, 방금 전 제게 보인 떨려오던 그 두 눈은, 긴장감에 사로잡힌 그 얼굴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새 걸음은 집 앞을 찾아왔지만, 어지러워진 마음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숨을 내쉬던 윤재의 눈 위로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 옆에도, 그 옆에도 다른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윤재의 눈엔 그 별만 하나만 들어 서 있었다.



 마치 저를 보며 윙크하듯, 반짝이는 별을 보며 윤재는 넌지시 예주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시 또 한 번 두 번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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