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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08. 2015

Be

너와 나를 이어준 비

 무슨 비가 그렇게도 오는지 영화를 보고 나온 난 입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분명 영화를 보러 들어 갈 때만 해도 하늘 가득 구름으로 반짝이는 해로 가득했는데 고작 두 시간 만에 장대비라니, 괜스레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제일 가까운 멀티숍이 40분 거리인 이 곳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미아가 된 기분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둘씩 짝지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상황인  듯했다. 화난  것처럼 무섭게 내리는 비가 물러서길 바라며 벤치에 앉아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혼자였던 난 이상하게 주변이 의식되어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인터넷을 켜 뉴스를 클릭하자 기사란 가득 갑작스런 장대비를 알리는 소식들 뿐 이였다. 아니 이게 뭔.. 똑똑히 뉴스를 보고 있으면서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나는 순간 멍해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하필이면 소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온 오늘, 근처엔 그 흔한 카페도 멀티숍도 없는 오늘, 하필 내 옆엔 아무도 없는 오늘 장대비라니.


 비가 길어지겠네요. 뒤에서 들려오는 프로그래머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렸고,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다들 하염없이 날씨 탓만 하고 있을 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있다간 저녁도 못 먹겠다, 얼른 뛰어가서 차 빼올게. 기다리고 있어. 남자의 말에 여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넘어지지  마.라고 얘길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있던 한 남자는 프로그래머에게 혹시 남는 우산이 있냐 물었고 프로그래머는 제 것 하나 있다고 미안하다고 얘길 했다. 이러다 하염없이 기다리겠다, 콜택시 불러서 가자. 한 커플이 간 걸  아쉬워할 틈 없이 십 분도 안되어 남아있던 한 커플 조차 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고, 등 뒤에 앉아있는 프로그래머가 괜스레 신경 쓰였다. 그가 날 보고 있는지 아닌지 알 턱이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왠지 모르게 처량해진 느낌. 이러다 종일 있겠다 싶어 나 또한 콜택시를 부르려 핸드폰을 꺼내던 차, 등 뒤로 프로그래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쓰고 가세요.




 뒤를 돌자 그는 우산을 내게 건네며 웃고 있었다. 분명 아까만 해도 우산이 하나라고 얘길 했었는데 내게 우산을 건네는 그를 보며 나는 괜찮아요, 택시 부르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비가 더 오는 거 같아요. 골목까지 택시 안 들어올 거 같은데.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지만 내 눈엔 이 비가 그 비고, 그 비가 이 비 같았다. 괜찮다는 말로 대답한 나는 콜택시를 불렀지만 세 번 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쯤되니 오늘 하루는 그냥 집에서만 있어야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몰려오는 민망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내게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우산 하나 더 있어요, 이거 쓰고 가셔도 돼요.




 다시금 권하는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우산을 받아 든 나는 작게 물었다. 아까는 왜 없다고.. 내 말에 그는 입가에 조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우산이 철저히 일인용이라서요.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살짝 눈을 찌푸렸고, 그는 나를 보며 진짠데, 펴 보세요. 라고 얘길 했다.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서. 영화가 끝난지 30분이 지난 후에야 극장을 나갈 수 있게 된 나는 그제야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영화 보러 오실 때 돌려주세요. 만약에 저 없으면 여기 우산 꽂이에 넣어두고 가시면 돼요.




 네, 그럴게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극장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인해 나는 방금 전 그와의 대화를 곱씹을 수 없었다. 씩씩하게 비바람을 맞으며 집에 도착해서도 난 그와의 대화를  곱씹긴커녕 씻기 바빴고,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서야 오늘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학교랑 가까우니까 내일 수업 끝나고 갖다 줘야겠다. 그 생각으로 별스럽지 않게 잠에 들었고, 목요일은 오전 수업만 두개인지라 한시도 안되어 오늘 스케줄이 끝났다. 4학년 마지막 학기라 학교엔 남은 친구들도 적었던 탓에 더 있을 이유도 없어 곧장 극장으로 향했다. 빌릴 때와 다르지 않게 바짝 마른 우산을 가방에서 꺼내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목소리에 따라 인사를 하니 그가 나를 보며 어? 하곤 웃었다.




 금방 안  가져다주셔도 되는데.
 아, 저 학교가 근처라서요.
 아 진짜요?
네. 여기 우산이요, 덕분에 어제 잘 갔어요.
 잘 쓰셨으면 됐죠. 오늘도 영화 보세요?
 네.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는 날이라 한편 보고 가려고요.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곤 나는 영화 한편을 골라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장의 특성상 인디 영화가  위주였고, 관은 하나였으며, 크기는 딱 소극장 무대였다. 내가 입장한 뒤로 다섯 명 넘짓한 사람들이 들어왔고, 영화 시작 전 핸드폰은 꺼달라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사 기계 또한 프로그래머의 몫인 곳 이였기에 그는 그 안에서 매표와 작은 매점, 그리고 영사실 또한  맡아하고 있었다.


 영화는 참 좋았다. 예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레옹이 리마스터링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오늘이었다.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다운하여 몇 번을 보았었지만, 큰 스크린으로 보는 레옹은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은 여운을 뗄 수 없어 자리에 앉아있던 난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장마도 아니고 무슨 비가 이렇게 자주 와?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가방을 챙겨 급하게 밖으로 나왔고, 다시 또 멍해진 나를 보며 그는 웃음 진 얼굴을 보였다. 그리곤 어제완 다르게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든 사람들은 금세 극장을 벗어났고, 괜한 민망함이 몰려와 나는 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재킷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택시 부르지 말고.




 그의 말에 나는 아니예요, 괜찮아요. 라고 얘길 하며 웃었고 그는 내 손에 우산을 쥐어주며 말했다.




쓰고 가요. 그리고 내일 또 영화 보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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