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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7. 2016

all U need is love

 무작정 더웠던 여름이 숨을 죽이고, 차가운 바람과 잦은 비가 내리며 가을이 온 걸 알리던 시월. 중앙 도서관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내 앞으로 친구를 보며 웃던 네가 지나갔고, 나는 거짓말처럼 너에게 첫 눈에 반했다. 너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내 시야로 친구들이 들어서며 그 빛은 단숨에 깨졌지만, 해맑게 웃던 너는 그 날 이후로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무런 정보도 알지 못하는 탓에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날도 늦은 점심을 먹던 중, 뭘 그렇게 생각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나는 눈치를 보다 살며시 얘기를 꺼냈다. " 나 아까 도서관 앞에서 진짜 예쁜 여자 봤는데. "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어디? 누군데? 진짜 예뻐? 라고 손살같이 물어오는 셋을 보며 나는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혼자 입을 닫아도 셋이 입을 닫지 않으니 대화는 끊길 리 만무했다. 밥을 먹는 내내 들려오는 헛소리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지나갈 사람으로 남기엔 너무 아쉽다고.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인 이유는 곧 있을 기말고사 탓이였다. 전쟁을 앞둔 도서관은 매일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날도 한발 늦은 우리는 쿨하게 늦음을 인정하곤 부른 배를 꺼진답시고 당구장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내기 당구를 치면서는 즐거웠지만 끝나고보니 시간은 어느덧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제서야 급하게 가방을 들고서 나서는 등 뒤로 너 그냥 포기해! 라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그럴 순 없어 빠른 걸음으로 카페를 향해 걸었다. 이미 늦은 탓에 도서관은 택도 없을거며 가면 자고 볼 집은 더더욱 아니였다. 평소 자주 가던 카페도 지금은 시간적으로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얼마쯤 걸었을까, 반대편 거리로 작은 카페가 보였고 나는 단숨에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으로 울리는 점원의 인사를 들으며 캐셔기 앞으로 다가섰다. 수 많은 메뉴들 사이에서 내가 마셨던 커피라곤 아메리카노와 카페모카 그리고 꼰빠냐가 다였다. 주문하시겠어요? 물어오는 점원의 목소리에 시선을 맞춘 나는 그 자리에서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그 날 오전 내 눈에 묻었던, 그로 인해 매일이 궁금했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서 있었다.



 "  주문하시겠어요? "

 " ‥네. 콘파냐 하나 주세요. "

 " 삼천 오백 원입니다. 다른 건 더 필요하신거 없으세요? "



 웃음 진 얼굴로 물어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하루 종일 생각났었는데, 스치듯 보냈던 사람을 이렇게 낯선 카페에서 만나다니‥. 남들이 들으면 끼워 맞추기라 할 법한 이 상황이 내게는 행운이었고 또 행운이었다.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긴커녕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난 진동벨이 울리자마자 다시금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 드시고 가시는 거 맞죠? "

 " 네? 네. "

 " 가방을 메고 계셔서 오해했어요. 맛있게 드세요. "

 " 네. 고맙습니다. "



  왜인지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와 한마디를 더 나눴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자리에 앉아 공부할 책을 펼쳐놓고도 한동안 집중을 하지 못한 채로 있던 나는 문득 벽에 걸린 시계가 8시가 넘어가는 걸 보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가게 안에 있는 손님은 둘이었고, 조용한 분위기에 쉽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매번 내게 골칫거리였던 회화의 이해 문제 풀이에 한창이던 중, 코 끝으로 달콤한 향이 묻어났다. 금세 고소함과 달콤한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고, 카운터를 보니 직접 베이커리를 만들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순간 참 별스럽다 싶었다. 길 곳곳에 차려진 개인 카페 안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고 그들에겐 당연한 일상 중 하나인데, 이 모든 일에 그녀가 덮어지니 일순간 내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게 아름다웠고, 황홀해져 버렸다.



 " 방금 구운 마들렌인데 하나 드셔 보세요. "

 " 고맙습니다. 근데 이거 공짜로 받아도 되는 거예요? "

 " 뭐 마음에 걸리시면 자주 오셔서 커피 드시고 가세요. "

 " ‥그럴게요. "



 그 후로 자꾸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나만을 위한 그녀의 배려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저 몇 마디 나눈 대화들이 좋아 내내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봐도 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지겨움이 몰려와 당연하게 내 시선은 시계로 향했다. 어느덧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을 보곤 너무 오래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 펼쳐놓은 책들을 하나씩 가방에 넣었다. 다 마신 커피잔과, 귀여운 마들렌이 놓여있던 보울을 들고 카운터로 향하자 그녀는 기다렸단 듯 트레이를 받아 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 고맙습니다. "

 "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

 " 마들렌 괜찮았어요? "

 " 네. 맛있었어요. "

 " 다행이네요. 요 며칠 못 만들어서 사장님한테 혼나고 그랬는데. "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마들렌의 맛을 곱씹어 봤지만 쉽게 생각나질 않았다. 어떤 맛이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걸로 봐선 카페에 있는 순간 내 모든 감은 그녀를 향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입구로 발을 떼기 전,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 저, 여기서 매일 일하세요? "

 " 아니요. 왜요? "



 내 물음에 그녀는 놀라 하는 눈치였지만 이왕 이렇게 던져진 거 내게 물러섬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나는 내게 일어났던 그 날을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 날 오전에 도서관 앞에서 본 이야기부터 오늘 우연히 이 카페로 오게 된 계기까지‥. 쉼 없이 그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서야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말이 그녀에게 자극적으로 들렸을까 자책 아닌 자책도 밀려 들어왔다. 한동안 아무런 대답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실수를 했구나 싶은 마음이 내게 묻어나던 차, 조용하던 둘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이렇게 삼일 일해요. 오후 네시부터 열 시까지. "

 " …. "

 " 모레 오세요. 그 날 레몬 브라우니 굽는 날인데 오시면 몰래 하나드릴게요. "

 " 그래도 돼요? "

 " 안되니까 몰래 드리는 거죠. "

 " …. "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와 가까워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몰래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으로 대답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녀 또한 웃음으로 대답하며 인사를 건넸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내내 부끄러움과 간지러운 마음이 뒤섞여 자꾸만 얼굴에 티를 내려 안달을 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하루였지만, 오늘은 이 하루 속에서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한 영화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사랑은 어디에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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