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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30. 2016

고백

 집으로 들어와 냉장고로 향하던 제훈은 맥주캔을 따 단숨에 반을 비워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쇼파에 앉아 지켜보던 태민과 준호의 얼굴로 재미가 번져갔다. 뭔데? 여유롭게 물어오는 태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쇼파 한켠에 앉은 제훈의 입술엔 불만과 심술 그리고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로 잔뜩 불어 있었다. 너 입술 이만큼 불었어. 엄지 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접어 저를 보며 웃는 준호를 보며 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 재은이가 묻더라. 우리 결혼 언제하냐고. "

 " 요즘 결혼이 철인가? 오늘 준호도 그 말 듣고 왔다던데. "

 " 진짜야 이준호? "

 " 어. 너무 당연하게 물어와서 순간 민망하더라. 꼭 내가 그런 생각도 안하고 사는 놈으로 보여진 거 같아서. "

 " 내 말이. 물론 나도 결혼 하고 싶지, 왜 안하고 싶겠어. 근데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하니까. 이왕 하는 거 좋은데에서 예쁘게, 이왕 사는 거 좋은데에서 예쁘게 살고 싶은데…. "

 " 너는 돈이냐. 준호는 틈이던데. "

 " 틈? "

 " 자기 모든 걸 까기 싫단다. 예주 앞에선 언제나 든든한 사람이고 싶다나 뭐라나. "

 " 야. "

 " ? "

 " 틈이 뭐가 문제야. 니가 틈을 보여줬다해서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깨진 그 부분이 더 단단하게 채워져 있을거다. "

 " 채워져? "

 " 어. 사랑으로. "

 " 야. 연애하더니 철들었네 이제훈. "

 " 너도 그 틈만 지나면 나랑 같은 고민 할 거다. 얘가 좋은것만 밝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내가 이만큼하면 이만큼으로 만족하고 웃을 여자라는 걸 아니까. 그래서 안되는거야 내가. 괜한 내 자존심에. "



 제훈의 말로 짐짓 진지해진 분위기 속에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하필이면 세명 다 같은 핸드폰을 쓰고 있었고, 알림 또한 전국민이 다쓰는 기본음이였기에 셋 다 확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먼저 핸드폰을 꺼내 든 태민은 자긴 아니라는 듯 도로 핸드폰을 쇼파에 두었고, 아예 핸드폰을 꺼내지 않은 준호는 제훈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 훈이네. 무슨 연락인데? "

 " 재은이. "

 " 뭐라냐? "

 " 오늘 자기가 한 말에 부담 갖지 말라고. 집에와서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오바한 거 같다고. …이러니 내가 그러는 거 아니야. 얘가 진짜 좋은 여자라는 걸 아니까, 뭘해줘도 좋은것만 해주고 싶어서. "

 " 아- 하나여도 지랄 같은데 양쪽에서 지랄을 해대니 짜증이 난다. "

 " 그래도 난 니가 부럽다. "

 " 놀리냐? "

 " 그렇다고 훈이를 부러워 할 순 없잖아. 쟨 나보다 더한데. "

 " 하여튼 재수없는 새끼들이야. "



 쇼파 헤드에 머리를 기댄 채 대화를 나누던 두 남자의 시선은 자리에서 일어 난 제훈에게로 향했다. 한 손엔 맥주를 또 다른 손엔 핸드폰을 든 채 베란다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두 남자는 마치 짠듯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밝은 달 곁으로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는 밤 이였다. 사랑으로 물든 두 남자의 마음엔 같은 고민이 맴돌고 있었고, 다른 한 남자의 마음엔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맴돌고 있었다.



 카페로 출근해 각자의 위치에 선 세 남자는 오픈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베이커리 룸으로 들어선 제훈은 재료를 모아놓곤 오늘의 메뉴에 적혀있던 샌드위치를 지우곤 애플 시나몬 롤을 적었다. 니가 생각이 많긴 많나보다. 갓 내린 커피를 제훈에게 가져다주던 태민의 얼굴엔 재미가 가득했다.



 " 어제 얘기 잘했냐? "

 " 얘기야 잘했지. 오늘 이 반죽들을 내 자존심이라 생각하고 다 밀어 버릴거야. "

 " 얼씨구. "

 " 쫙쫙 다 펴버리고, 저녁에 재은이 만나서 말할거야. 결혼하자고. "

 " 아‥. 이 감정의 변화로 봐서는 홧김이라는 게 딱 느껴지는데. "

 " 너 돈 좀 모아둔 거 있지? "

 " 왜, 너 결혼할 때 빌려 달라고? "

 " 역시 리치보이. "

 " 안 줘, 새끼야. "



 새침하게 베이커리 룸을 나서던 태민의 눈엔 웃음이 가득했고, 제 앞에 재료가 가득 놓여있던 탓에 말을 할 수 없었던 제훈은 통 유리를 치며 태민을 부르고 있었다. 쟤 왜 저래? 때 마침 원두를 받아 온 준호의 얼굴엔 궁금증보단 드디어 미친건가 하는 의심이 가득했다.



 " 오늘 메뉴 샌드위치로 정해놓고 다 준비해놨으면서 별안간 메뉴를 바꾸더라. 오늘 밀가루 반죽이 자기 자존심이라 생각하고 다 펴버릴거래, 그리고 저녁에 프로포즈 하러 간다는데? "

 " 아니 쟤는 가끔보면 너무 무서워. "

 " 그래도 난 훈이가 부럽다. "

 " 어느 대목에서? "

 " 자기 감정 앞에서 지나치게 순수하니까. 연애를 하든 뭘하든, 나는 안 그렇잖아. "

" 그래, 넌 좀 그래. 그러니까 너도 이거 잡고 로스팅하면서 자기 성찰이나 해. "

" 말은. "



 가져 온 원두를 한켠에 쌓아놓고 몇 안되는 테이블을 둘러보던 준호는 현관으로 가 팻말을 돌렸다. 아침 아홉 시, 그들의 공간은 활짝 열렸고 금세 가게안은 원두향과 베이커리 향으로 번져갔다. 늘 그랬듯 바쁜 오전을 보내고 맞은 점심은 꿀맛이였다. 분명 태민이 들고 온 프라이팬 안은 치즈가 잔뜩 뿌려진 김치볶음밥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순식간에 비워 진 안엔 수저 세개만이 달랑 놓여져 있었다.



 " 맞다. 야, 너 오늘 프로포즈 한다매? "

 " 어. 할거야. "

 " 근데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왔냐? "

 " 놓칠 거 같아서. "

 " 응? "

 " 지금 아니면 얘를 놓칠 거 같아서. 오롯이 나만 이해 해주는것도, 내 말 듣고 혼자서 이해 하는것도 한계가 있을건데 왠지 내 느낌엔 지금 안잡으면 놓칠 거 같아서. "

" 우리 훈이 언제 이렇게 컸지? "



 제훈의 머리를 쓰다듬던 태민의 얼굴로 웃음이 맴돌았다. 짧았던 점심시간이 끝이나고, 테이블을 정리하던 제훈의 뒤로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아, 너 이제 다섯시간 남았다.



 오전만큼이나 정신없는 오후였다. 늘 그랬듯 바쁜 세시가 지나고야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롤을 만든탓에 오븐은 쉼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집중한 제훈을 보며 준호는 안으로 들어섰다.



 " 훈아, 그만하고 집에가서 준비해. "

 " 어? 몇신데? "

 " 네시. "

 " 벌써? "

 " 야‥. 롤이 몇개야. 이거 언제 다 팔고 집에 가? "

 " 남은 건 집에 가져가서 너 다 먹어라. "

 " 어디서 멋진, 저건 뭐냐? "

 " 재은이 줄 밀푀유. "

 " 너 진짜야? "

 " 그럼. "

 " 너 설마 뻔하게 저 안에다 반지 넣고 그런 건 아니지? "

 " 아니지. 대신 넘치는 사랑과 정성을 넣었지. "



 뻔뻔한 제훈의 말에 준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밖으로 나섰다. 이제훈, 너 안가? 프론트에서 들려오는 태민의 목소리에 제훈은 밀푀유가 담긴 박스를 들고 나섰다. 간다. 긴 말 대신 한마디로 가게를 벗어난 제훈의 온 몸엔 웃음만큼 긴장이 묻어나 있었다. 약속시간까지 남은 두시간동안 평소와는 다르게 제 자신을 단장하던 제훈은 이런 제 모습이 어색해 웃다가도 금세 긴장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느꼈다. 5년을 만나오며 이만큼이나 긴장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재은을 기다리던 제훈의 앞으로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다. 언제나 그랬듯 밝게 웃는 얼굴로 제 앞에 앉은 재은의 모습을 보며 제훈은 따라 웃었다.



 " 많이 기다렸어? "

 " 차가 안 막혀서 일찍왔어. 일 잘했어? "

 " 응. 하루종일 모니터만 봤더니 눈 아파. "



 애교스런 목소리를 들으며 제훈은 재은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곤 늘 그랬듯 그녀의 하루를 전해들으며 제게 함께하지 못했던 그녀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어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말 없이 잘 먹는 재은을 보며 제훈은 별안간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얼마 전 만해도 몰랐던 감정이였다. 그저 맛있게 밥을 먹는 얼굴을 보면 잘 먹어서 좋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지나 온 많은 날들과는 다르게 익숙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디저트로 나 온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재은의 앞으로 작은 상자가 놓여졌다. 이게 뭐냐고 물어오는 눈빛을 보며 제훈은 다른 말 대신 상자를 열어 밀푀유를 꺼내 주었다. 그리곤 늘 그랬듯 제가 만든 빵을 보며 반가워하는 그 얼굴에 새삼 고마움이 잔뜩 번져갔다.



 " 나 밀푀유 먹고 싶었던 거 어떻게 알고? "

 " 거짓말. "



 장난스레 의심하는 제훈의 눈빛을 보며 밀푀유를 한입 베어먹은 재은의 얼굴로 웃음이 번졌다. 사실 거창한건 아니였지만, 제훈이 만들어 온 이 밀푀유는 지극히 재은의 입 맛으로 맞춰져 있었다.



 " 너한텐 좋은것만 보여주고 싶어서, 기다리는 너는 생각도 않고 그저 내 자존심만 챙기느라 지금까지 온 거 같아. "

 " .. . "

 " 꼭 좋은 곳, 좋은 것 아니여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좋은것만 해주고 싶은 내 자존심을 버리려니까 잘 안되더라. 그래서 오늘 하루 밀가루 반죽이 내 자존심이라 생각하면서 다 펴버렸어. 봐, 여기 자국도 났어. "



 다른 말 대신 제훈이 보여주는 손을 끌어다 맞잡은 재은의 얼굴은 진지해져 있었다.



 " 어쩌면 친구들한테 부러움을 느끼기도 할거야, 그리고 그 상황에 너도 모르게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을거고. 지금처럼 연애 할 때는 네가 내 앞에서 감정 하나씩 숨겨도 모른 척 해줄 수 있는데, 결혼하면 그건 못해 줄 거 같아. 너 혼자서 속상해 하는 얼굴 난 모른 척 못해. 눈치없다 생각 할 정도로 물을거니까 이건 알고 있어. "

 " ... . "

 " ...너한테 묻어나는 내가 좋아. "

 " ... . "

 " 네가 많이 많이 좋아 재은아. "

 " ... . "

 " 우리 결혼하자. "



 가만 제훈의 진심을 듣고 있던 재은의 얼굴 위로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제 입장에선 하염없이 기다려왔던 말이였지만, 제훈의 마음을 듣고나니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난 용기가 필요했을지 덤덤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미안함도 함께 몰려왔다. 우는 저를 재촉없이 가만 보는 제훈의 입술 위로 재은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 난 일에 주변을 살피는 제훈과는 다르게 재은은 울던 얼굴로 맑게 웃어보였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일이, 둘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닐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제 모든 걸 보여줌으로써 고백을 끝낸 제훈은 마음 속으로 불어 든 이 알 수없 는 감정 속에 섞인 바람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모든 게 하나가 아닌 둘로 시작 될 것이였다.



 결혼을 두고 생긴 많은 이유 중에 제훈의 마음을 간지럽힌 건, 다름 아닌 데이트때마다 시간을 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 듣던 일이 이젠 서로만의 공간에서 매일 있을 일이라 생각하니 대뜸 결혼이 반가워졌다. 현실만 보고 결혼을 판단했던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소소로운 장점을 생각해내지 못했는데, 갇혀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멀리 보게 된 지금 제훈의 눈엔 결혼이 마냥 어렵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둘이여서 혼자 있을 때 보다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정말이지 뻔한 말 중에 기쁨도 슬픔도 나눠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지껏 살아오며 기쁨은 나눴어도 슬픔은 나누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재은이라면 기쁨만큼 슬픔도 부담없이 내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니…. 별안간 제훈은 이렇게 변해버린 제 모습에 웃음만 났다.



 " ...너한테 묻어나는 내가 좋아. "

 " ... . "

 " 네가 많이 많이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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