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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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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눈 뜨고 일어나니 어제 밤이 또렷해졌다. 출근을 재촉하는 알람은 계속해서 울렸지만 세원은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마도 어제, 꿈결같이 아니 손살같이 지나갔던 용국과의 시간이 제 눈 앞에서 지워지지 않은 탓 인듯 했다.


 로비에 들어서도 엘리베이터에 타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아니 어떤 눈으로 봐야할지 고민만 늘어가던 차 22층을 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세원은 애써 침착한 얼굴로 팀실에 들어섰다. 늘 그랬듯 팀실 한가운데에서 열리는 아침식사는 오늘도 열렸고, 이제 막 출근을 하는 세원을 보며 인사를 건네던 팀원들 사이엔 용국 또한 있었다. 어제 아침에도 그랬듯 오늘도 저를 보며 오셨어요 선배. 라고-


 선배! 방금 만든 샌드위치예요! 꺾임없이 제 방으로 들어서는 세원을 보며 소리치던 준현은 이따가- 라고 대답하며 자취를 감 춘 세원의 목소리에 당연하게 샌드위치 하나를 빼 놓았다.


 간밤에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이어지던 아침식사 자리가 순간 후끈해졌다. 어제 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던 윤호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이어졌고, 저와 같은 상황인 윤호를 보며 다른 말 대신 어깨를 두드리던 용국은 시선을 옮겨 저희를, 아니 저를 지켜보고 있는 세원에게 맞췄다. 이미 바깥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절대 말하지마! 라며 또박또박 한글자 한글자 얘기하던 얼굴을 보며 용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뻐근해진 목을 푸는 것 처럼.


ㅡ 컴퓨터를 너무 오래봤나봐, 눈이 똑 하고 떨어 질 거 같애.
ㅡ 이제 한시간 봐놓고 뭘. 커피 타줘?
ㅡ 라떼 만들어 줄 거야?
ㅡ 만들어 주면 다 마실거야?
ㅡ 그럴거야.


 입사 이후로 한시도 제 옆에서 떨어 진 적이 없던 재혁의 어리광을 맞받아치던 용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우유가 있으려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안쪽으로 들어서던 용국은 저를 보며 놀라하는 세원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ㅡ 놀랐잖아!
ㅡ 그건 저도 마찬가진데, 지금 빈 속에 커피 드시는거에요?
ㅡ 별로 입 맛이 없어서.
ㅡ 왜요? 저는 오늘 밥 두그릇이나 먹고 출근했는데.
ㅡ 말해 뭐해. 왜 들어왔어?
ㅡ 재혁이가 커피 타 달라고 애교부려서 커피 타러 왔습니다.
ㅡ 애교?
ㅡ 네, 혁이가 한 애교 하거든요. 매일 오늘은 안 넘어가야지 다짐해놓고, 오늘도 넘어가서 이러고 있습니다.


 왜인지 전보다 자연스러운 용국을 보며, 세원은 저 혼자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다보니 없던 심술도 생기고, 괜한 짜증도 밀려오고 있었다. 다른 말 없이 커피를 만드는 용국을 보던 얼굴은 이미 적나라하게 제 마음 속 상황을 들춰내고 있었다.


ㅡ 먼저 나가, 선배. 화나셨어요?
ㅡ 아니? 나 화 안났어.
ㅡ 아니라면서 입술은 왜 이만큼 나와 있습니까? 설마 여기서 뽀뽀 해달라,
ㅡ 야-! 미쳤어?


 그러며 잽싸게 주변을 확인하는 세원을 보며 용국은 상관없단 듯 웃음만 지었다.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게 있다면 아마도 둘 사이의 관계겠지만,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용국과는 달리 세원은 이러나 저러나 긴장만 하고 있었다.


ㅡ 뭘 그렇게 긴장해요, 들킬 일도 없는데.
ㅡ 들킬 일이 왜 없어? 눈만 돌리면 다 들킬 일인데.
ㅡ 저는 싫은데 선배가 원한다니까 하겠습니다.
ㅡ 뭘?
ㅡ 비밀 연애요. 마음 같아선 이대로 둘이 손잡고 나가고 싶은데, 그러면 이대로 죽을 거 같아서.
ㅡ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ㅡ 그래서 안할겁니다. 이제부턴 업무 핑계로 선배 쫓아다니지도 않을거구요.
ㅡ ?
ㅡ 회사안에선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모른 척 할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선배가 원하는 비밀 연애가 나한텐 이런거니까.
ㅡ 야. 그게 무슨,
ㅡ 남몰래 숨어서 연애하는 거 저랑 안맞습니다. 자고로 연애란, 얘는 내꺼다 라는 걸 동네방네 알려야 한다는 주의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아쉬움 하나 없는 얼굴로 먼저 나서는 용국을 보며 세원은 다시 또 어지럽혀지는 마음을 느꼈다. 용국이 나가고 얼마 안가 뒤따라 나온 세원은 너무도 편안한 얼굴로 여자 팀원들과 장난을 주고 받는 용국의 모습을 보며 밀려오는 질투심을 느꼈다. 분명, 어제만해도 그런 그의 모습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오전처럼 별 탈 없는 오후가 지나갔다. 퇴근 전, 짧은 회의로 내일을 준비하던 팀원들 사이로 퇴근하고 양꼬치집 어때요? 라고 묻는 지윤의 목소리에 하나 둘 동요를 했다. 서로 재촉하는 사이로 용국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세원에게로 향했다. 갈까요, 말까요. 눈으로 묻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라고 얘길하는 세원을 보며 용국은 조금 더 짙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세원은 일부러 용국의 시선을 놓치며 일이 밀렸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뒤따라 기다렸단 듯 용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일이 밀려서, 맛있게들 먹어요.


 퇴근하는 팀원들을 따라 먼저 주차장에 내려 온 용국은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차를보며 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왜인지 반가움은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용국이였다.


ㅡ 다들 갔습니다, 내려 오세요.
ㅡ 먼저 가, 나 진짜 일이 밀렸어.
ㅡ 이번 달 마감은 새벽 두시로 끝난 거 제가 다 봤는데.
ㅡ 새벽,


 그제서야 며칠 전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 세원은 터무니없이 드러 난 제 거짓말에 부끄러움이 잔뜩 밀려왔다. 안 내려오시면 저 이대로 양꼬치집으로 가서 고백합니다. 아쉬움 하나 없는 간결한 목소리를 들으며 행동부터 빨라 진 세원은 금방 내려가 금방. 이라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고, 그런 행동을 굳이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한 상황에 용국은 웃으며 열선 버튼을 눌렀다.


 10분도 안되어 내려 온 세원의 얼굴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심술 아닌 심술이 붙어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 노골적으로 저를 향한 시선을 보며 세원은 미간을 찌푸렸고, 그 모습이 익숙해진 용국은 긴 손을 뻗어 미간을 꾹 눌렀다.


ㅡ 선배 이거 습관이네요, 그것도 나만보면.
ㅡ ... .
ㅡ 고치시죠, 웃는 얼굴로.
ㅡ 안 고칠거야.
ㅡ 진짜 나한테 화났어요?
ㅡ 아니.
ㅡ 그러면서 이 입은 왜 자꾸 나와있어요, 나 오해하게.
ㅡ 나 원래 이래, 입술이 두꺼워서.
ㅡ 전혀 설득력 없는 핑계지만 말하기 싫어 하는 거 같으니 넘어 갈게요. 저녁 뭐 먹을까요?
ㅡ ... .
ㅡ 파스타 어떠세요? 제가 끝내주는 집 아는데. 음식은 뭐 말할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 집이 프라이빗 합니다.
ㅡ 프라이빗?
ㅡ 네.


 이미 주차장을 빠져 나와있던 차는 세원의 대답과 동시에 다시금 달렸고, 멀어? 라고 묻는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젓던 용국은 이십분 뒤에 도착해요. 라고 대답했다.


 용국이 당당하게 말했던 프라이빗한 맛집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이였다.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 벨트를 풀던 용국은 저를 보던 시선 위로 다시금 구겨진 미간을 보며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먹고 또 해달라고 하지마요. 그러며 제 손으로 세원의 벨트 버클을 풀던 용국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들어서면서도 우물쭈물하는 세원의 손을 잡아 끈 용국은 쇼파에 앉히고야 됐다는 듯 웃어 보였다.


ㅡ 이 말을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ㅡ ... .
ㅡ 안 잡아 먹습니다 선배, 그러니까 긴장 풀어요.
ㅡ 긴장 안했거든.
ㅡ 안했다기엔 티가 너무 많이 나는데.


 그 말에 받아치려는 듯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세원의 입은 닫혔다. 금방 만들게요-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쇼파에 기대 앉은 세원은 금세 편해짐을 느끼곤 헤드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게 십분 쯤 지났을까, 아무 말 없이 티비 앞으로 다가 선 용국은 리모컨으로 뭘 찾아 누르더니 영화를 띄어놓곤 다시금 부엌으로 몸을 옮겼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예요, 보고 있어요. 그의 말에 자연스레 티비로 시선을 옮긴 세원의 앞으로 잔잔한 노래가 흘러 나왔고, 곧이어 화면엔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로 가득찼다.


 영화에 집중해있던 세원의 앞으로 파스타가 담긴 볼그릇이 놓여졌다. 이미 영화에 빠진 얼굴을 보며 방해 한 것 같아 조심스럽던 용국은 와인이 담긴 잔을 세원의 앞에 놓으며 자리에 앉던 순간, 그제서야 테이블을 확인한 세원은 놀란 얼굴을 한 채 용국을 제지했다.


ㅡ 야, 와인은 왜.
ㅡ 파스타랑 어울리는 와인이라서요. 근데 뭘 그렇게 놀라요?
ㅡ 내가 뭘 놀라. 아니야!
ㅡ 선배도 여자네요.
ㅡ 뭐?
ㅡ 귀여워서요. 내가 남자로 보이긴 하나봐요, 둘만 있으면 이렇게나 긴장을 하고.
ㅡ ... .
ㅡ 오늘은 줘도 안마십니다, 아직 마지막 스케줄이 남아서.
ㅡ 마지막 스케줄?
ㅡ 여자친구 귀가 시켜 줘야 합니다, 집에 갈 때 쯤이면 밤이 깊어 있을 거 같아서.


 능청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던 용국은 저를 빤히 보는 세원을 보며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얼른 먹으라고 재촉하는 용국의 말에 다시금 볼 그릇을 집어 든 세원은 금세 영화에 집중하며 한그릇을 비워냈다.


ㅡ 저는 저 장면이 좋아요, 달빛 아래에서 키스하는 거.
ㅡ 저거 엄연히 무단침입 아니야?
ㅡ 거 참 무드없게, 영화를 영화로 안보고.


 장난스레 눈을 찌푸리던 용국은 제 말에 멋쩍어하는 얼굴을 보며 하마터면 얼굴을 감쌀 뻔 했다. 내가 그랬나? 입술을 삐죽이며 웃던 세원은 티비로 시선을 옮겼고, 그런 세원을 몰래 쳐다보던 용국은 온 몸으로 번져오는 간지러움을 참아내야만 했다.


ㅡ 오늘 회사에서 서운했어요?
ㅡ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ㅡ 꼭 그런 거 같았는데. 눈도, 입도 한참이나 삐져 있었잖아요.
ㅡ ...그러게. 비밀연애는 내가 하자고 해놓고, 네가 모른 척 하니까 그게 그렇게 서운했나봐.
ㅡ 둘만 있으면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할 줄 알았는데 안 그랬으니까?
ㅡ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
ㅡ 그럼 지금은 어때요? 둘만 있는데.


 그러며 가까이 다가오는 용국의 행동에 세원은 절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래봤자 끝은 벽이라는 걸 알고 있던 용국의 얼굴 위로 웃음이 가득 번졌다.


ㅡ 이래서 다들 연애타령 하나봐요.
ㅡ ?
ㅡ 평소에는 못보던 얼굴을 다 보여주니까, 이런 얼굴이 있는지는 또 몰랐네.
ㅡ ... .
ㅡ 갑시다, 열시 넘었네요.
ㅡ 응.
ㅡ 마음 같아선 모른 척 앉아 있고 싶은데.
ㅡ ?
ㅡ 그러면 안되니까.


 세원의 콧망울을 살짝 누르며 먼저 일어 난 용국은 방으로 들어가 후드를 입고 나왔다. 안 가요? 현관을 가르키며 묻는 얼굴을 보며 순간 멍해져 있던 세원은 자리에서 일어 나 현관으로 향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제 오늘 세원에게 일어 난 가장 큰 변화는 하루 아침에 용국이 남자로 보인다는 것 이였다. 차에 올라 타 운전하는 용국을 보며, 몇번이고 들썩이던 입은 저 조차도 무슨 말이 나올 지 몰라 꾹 닫아야만 했다.


ㅡ 거 입술 좀 풀지, 뽀뽀 안 할 건데.


 신호를 받은 틈을 타 세원의 입술을 손으로 살짝치던 용국은 절대 모를 일 이였다. 지금 세원의 마음 속에선 전쟁 아닌 전쟁이 거하게 치뤄지고 있다는 걸.


ㅡ 내일 저녁에 영화 볼까요? 선배 좋아하는 맷 데이먼 신작 나왔던데.
ㅡ 진짜?
ㅡ 네. 아까 회사에서 혁이가 예고편 보여주더라구요, 재밌겠다면서.
ㅡ 아!
ㅡ 응?
ㅡ 아까 재혁이한테 만들어 주던 커피, 어떻게 만드는 거야?
ㅡ 응?
ㅡ 아니 우유 넣고 하길래 맛있어 보여서.
ㅡ 아- 그거 아무한테나 만들어 주는 거 아닌데.
ㅡ ?
ㅡ 원하면 혁이처럼 애교스럽게 얘기해요. 혁이 하는 거 봤죠?
ㅡ 그게 뭐야.
ㅡ 보면 혁이랑 막내동생이랑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뭐 또 걔가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ㅡ 재혁이가? 일할때는 곧잘해서 몰랐는데.
ㅡ 저만 알죠, 마치 애인 인 것 처럼.


 툴툴거리며 얘기하던 용국의 얼굴엔 다정함이 한껏 번져있었다. 말은 그러면서도 평소 행실을 보면 사내에서 여직원들의 관심을 한껏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용국이였다. 여직원들끼리 티타임을 가질 때 마다 곧잘 올라오는 이름도, 곧잘 관심받는 사람도.


ㅡ 영화 예매한다?


 어느새 세원의 몸은 용국을 향해 틀어져 있었다. 제게 물어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리던 용국은 세원의 모습을 단숨에 캐치했지만 말하는 대신 웃음을 보였다. 지금을 짚었다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뻣뻣하게 앉아 버릴 세원을 잘 아니까.


ㅡ 자리는 알죠?
ㅡ 맨 뒷자리 외진 곳은 다 찼는데?
ㅡ 거봐요, 다들 같은 맘인 거지.
ㅡ 맨 뒷자리 통로 쪽은 있다!
ㅡ 그럼 거기로 해요.


 용국의 대답에 재빠르게 결제를 마친 세원은 재밌겠다며 웃어보였고, 영화 한편에 마냥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용국의 얼굴에도 웃음이 맴돌았다.


 깊은 밤이 묻은 거리 위론 가로등 불빛만이 다였다. 한참을 달리던 차안에선 노래가 수다를 대신했고, 강가를 보며 좋아하던 세원은 문득 이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할 용국을 생각하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ㅡ 나 내일부터 차 타고 다닐게.
ㅡ 왜요?
ㅡ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일인 거 같아서, 너도 피곤한데.
ㅡ 괜찮아요.
ㅡ 뭐가 괜찮아, 오고 가고 두시간인데.
ㅡ 아까도 말했지만 참 무드 없어요. 이게 다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예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당연한걸 왜 모르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삐죽거리던 용국은 세원의 왼손을 꽉 잡았다. 놀라하는 세원과는 상관없이 운전하던 용국은 앉아있던 자세가 불편했던지 작게 뒤척이더니 이내 마치 누운듯한 자세로 핸들을 잡았다.


ㅡ 너 위험해.
ㅡ 별게 다 위험하대, 진짜 위험한게 뭔지도 모르고.
ㅡ ?
ㅡ 이 노래 가사 좀 잘 들어봐요.


 다시금 용국이 리플레이 한 노래는 다름아닌 파파야의 사랑만들기 노래였다. 뭘 잘들어 보라는 건지 의아해하던 세원은 노래가 익숙해 질 쯤 그 뜻을 알게 되었다.


 < 원한다면 난 얌전히 여자다운 숙녀처럼 너와 나의 짜릿한 그 밤엔 영화속의 그녀처럼 - 우울할땐 니 친구로, 실수할땐 누나처럼, 특별한 날 섹시한 애인이, 때론 어린 아이처럼 >


ㅡ 제 스타일입니다, 가사에 나오는 여자.
ㅡ 말은.
ㅡ 참고 부탁 드릴게요.


 제가 말하고도 웃겼는지 슬쩍 세원을 쳐다보던 용국은 얼굴 가득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익숙해진 세원의 집 앞 거리로 들어서던 차는 정확히 입구에 세워졌다. 조심히 들어가요. 제 눈을 마주하며 얘기하는 용국을 보며 세원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ㅡ 고마워.
ㅡ 고맙다는말 말고 뭐 다른 거 없어요? 데려다 줄 때마다 고맙다는 말 들으면 꼭 기사 된 거 같은데.
ㅡ ?
ㅡ 예를 들어 뽀뽀라던가, 아니면 입맞춤이라던가?
ㅡ 야.


 부러 무서운 얼굴을 보이던 입술 위로 용국의 입술이 닿았고 금세 떼어졌다. 놀라 멍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는 세원이 용국은 그저 귀엽기만 했다. 잡고있는 손을 흔들며 얼른 들어가라고 얘길하니 세원은 그제서야 벨트를 푸르며 가방을 챙겼다.


 방금 전만해도 부끄러움이 밀려와 서둘러 내리려했지만, 금세 다시금 돌아 온 이성에 세원은 내리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났는지 몸을 돌려 용국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ㅡ 너 훅 들어오지 좀 마.
ㅡ ... .
ㅡ 그럴 때 마다 심장 떨려 죽겠어.


 그리고는 서둘러 차에서 내린 세원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집으로 뛰어 들어갔고, 순식간에 일어 난 이 귀여운 상황에 용국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 온 길을 다시금 돌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마냥 좋았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작게 진동을 보이고,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도착한 메세지를 확인하던 얼굴 위로 웃음이 가득 번져갔다.


 [ 운전 조심하고, 조심히 가. ]


 적혀있는 말이라곤 조심하라는 말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좋았다. 세원이 옆에 타 있을 땐 임의적으로 느리게 가야했던 시간은 이제 끝이났고, 지금부턴 막힘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용국의 임무였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와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곤 샤워를 하러 들어 간 용국의 핸드폰 위로 다정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얼른 자, 오늘도 고마웠어. 라고.


 마치 어제와 같은 상황이 오늘도 그려지고 있던 팀실 안은 팀원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그렇게들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파이팅이 넘치는 모습들을 보면 세원은 그게 또 그렇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출근하는 저를 보며 저마다 반갑게 건네는 인사를 받던 세원은 그 속에 있던 용국의 인사 또한 받았다. 같은 인삿말 대신 저를 향한 윙크로. 팀장님. 30분 뒤에 팀 회의 있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쩌렁쩌렁 외치는 창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던 세원은 재혁이 가져 온 결제 서류를 받아들었다.


ㅡ 팀장님, 요즘 더 예뻐지셨어요.
ㅡ 늘 예뻤지.
ㅡ 그건 또 그런데, 아무튼 더 예뻐지셨어요.
ㅡ 여자친구랑은 잘 만나고 있어?
ㅡ 그럼요! 좋아하는만큼 싸우고 그러고 있어요.
ㅡ 소문듣자하니 혁이 니가 더 좋아한다던데?
ㅡ 그러니까 문제예요, 아- 조금만 덜 좋아했어도 될 건데 제가 너무 좋아해서.


 푸념하듯 늘어놓는 재혁의 말이 귀여워 웃던 세원의 시야로 용국이 들어섰다. 팀원인 예지와 중요한 얘기를 나누는지 짐짓 진지해진 얼굴은 세원이 늘 보던 얼굴 중에서도 오랜만인지라 반갑기도 했다.


 결재한 서류를 재혁에게 넘기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탕비실로 향하던 세원은 금세 용국의 시선에 걸려 들었다. 매일 아침이면 출근과 동시에 커피를 마시는 세원의 습관을 팀원들이 모를 리 없었다. 캡슐을 넣고 전원 버튼을 누르던 손 위로 다른 손이 나타났고, 고개를 돌리던 세원의 얼굴 앞으로 용국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ㅡ 어제 말한 커피 만들어 줄게요.
ㅡ ... .
ㅡ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어요.
ㅡ 예지랑 중요한 얘기 하는 거 같아서.
ㅡ 아.
ㅡ ?
ㅡ 알고보니 예지랑 고등학교 동창이랑 소개팅을 했더라구요. 친구 취향 궁금하다고 묻길래 가르쳐 줬습니다.

ㅡ 취향?
ㅡ 네, 어떤 스타일 좋아하냐고 물어서 곧이 곧대로 다 말해주느라.
ㅡ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 말해준 건 아니고?
ㅡ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제 가르쳐 드렸는데? 어떤 노래 하나에 다 담겨 있어서.


 렌지에서 컵을 꺼낸 용국은 씌여뒀던 랩을 벗겨내곤 수저로 커피를 저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히 마셔요. 티코스터와 함께 머그컵을 건네는 용국을 보며 세원은 어젯 밤,차 안에서 들었던 노래를 곱씹었다.



ㅡ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ㅡ 응? 아니.
ㅡ 빤히 보길래 왜 그러나 했지, 나갑시다.


 쓴 물품을 정리하며 문을 가르키던 용국의 입술 위로 세원의 입술이 짧게 닿고 떨어졌다. 놀라면서도 금세 얼굴 가득 번지던 용국의 웃음은 충분히 세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잘 마실게. 서둘러 인사를 하며 탕비실을 나선 세원은 제 방에 들어와서야 지금 제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걸 인지하였다.


 팀장님, 회의요! 문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얘기하던 창민의 뒤로 용국이 보였다. 재규와 재혁의 사이에서 얘기를 나누던 시선이 제게로 닿았고, 그런 저를 보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세원은 부끄러움과 간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방 안에 작게 틀어져있던 라디오에선 다음주면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을거라고 얘기했다. 이미 곁으로 봄이 다가 온 세원에겐 그 말이 들리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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