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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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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점심 후, 카페에서 진우와 함께 나서던 용국은 외근 후 사옥으로 들어서던 세원을 보며 인사를 건네려다 말고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김세원! "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는 모두의 이목을 끌었고, 그 중에서도 당사자인 세원을 단번에 놀라게 만들었다. " 야! 너 뭐야? " 예상치 못한 등장에 여전히 놀라하던 세원의 어깨위로 자연스레 남자의 손이 둘러졌다.


 ㅡ 오빠 오늘로 한국 컴백! 나 보고 싶었지?
 ㅡ ...그럼 우리 팀에 새로 들어 온다던 치프가 너야?
 ㅡ 나야.


 세원의 어깨를 끌어 품에 안다시피 한 남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꽤나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를 부정않는 세원을 보며 용국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두 사람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보는 용국의 볼을 살짝 찌르며 엘리베이터를 가르킨 진우는 먼저 걸음을 떼었다.


 " 너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뉴 치프, 인사해. "
 " 반갑습니다, 뉴 치프 김지웅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


 유쾌한 지웅의 인사에 팀실 가득 박수 소리로 요란했다. 며칠 전 까지만해도 팀내에 새로운 치프가 올 거라는 소식에 너도 나도 한껏 들 떠 있었다. 여사원들은 당연히 남자를 원했고, 반대로 남사원들은 당연히 여자를 원했던 나날들이 지나 오늘이 된 지금은 완벽하게도 여사원들의 승리였다.


 간단한 팀원들 소개 후, 제 방으로 들어서는 세원을 따라 들어서던 지웅의 목소리가 팀실을 울렸다. 나 짐 들어오려면 이틀 걸린대. 오늘 내일 같이 일해. 담백한 지웅의 말에 세원은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모습을 보며 용국은 새어 나오는 질투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야 용국의 시선을 알아 챈 세원은 제가 너무도 늦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인지하고 말았다.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제 옆에 무리하게 붙어 앉은 지웅과 30분을 보낸 이후에야.


 그제서야 지금이 점심 이후 용국과의 첫 대면인 걸 알았다. 다음 달 잡지에 실릴 최종본을 지웅에게 넘기고,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든 세원은 [ 잠깐 나 좀 봐. ] 라는 문자를 용국에게 보내며 탕비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5분 쯤 지났을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용국이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엔 여전히 못 마땅 하다는 표정을 묻힌 채로. 처음 보는 얼굴로 제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는 용국을 보며, 세원은 방금 전 까지 들었던 초조함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자꾸 웃음만 새어 나왔다.


 ㅡ 웃는다고 될 일 아닌데.
 ㅡ 대학 다닐 때 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 온 동기야. 나도 얘도 너무 허물 없었지?
 ㅡ 그러게요.
 ㅡ 질투 하는거야?
 ㅡ 이럴땐 질투하냐고 묻는게 아니라 화났냐고 물어야 맞죠.
 ㅡ ..화났어?
 ㅡ 방금 전 까지는요.
 ㅡ ?
 ㅡ 근데 지금은 얼굴 보니까 그냥 좋아서, 아- 남자가 이렇게 줏대 없어도 되나.


 그리고는 빤히 시선을 맞추던 용국은 덧붙힘 대신 문을 열고 나섰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세원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전 제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용국이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상하게도 온 몸이 간지러워왔다.


 제 자리로 돌아 온 용국은 재혁이 건네는 팜플랫을 받아들며 앉았다. 뭐야? 제 물음에 얼른 보라는 듯 턱짓으로 가르키던 팜플랫엔 레이첼 맥아담스의 영화 신작 홍보로 가득했다.


 ㅡ 아! 이거 다음 주 개봉이지?
 ㅡ 어. 아까 영화관 지나가다가 가져왔지. 이번에 맡은 역할이랑 레이첼 맥아담스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냐?
 ㅡ 말해 뭐해. 아, 이거 꼭 보러 가야겠다.
 ㅡ 누구랑 가게?
 ㅡ 누구,랑 안가고 혼자 갈 거야. 혼자가서 이 예쁜 얼굴 집중해서 보고 올 거야.
 ㅡ 변태냐?
 ㅡ 야.
 ㅡ 자료 찾으러 가자. 우리 오늘 이거 다 못하면 퇴근 못해.
 ㅡ 아, 맞다.


 재혁의 손에 들린 파일을 보며 부정하듯 고개를 젓던 용국은 뒤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때 마침 방을 나서던 세원의 소리에 고개를 돌린 용국은 어디가냐고 물어오는 눈을 보며 크게 대답했다.


 ㅡ 저랑 혁이는 자료 조사 차 사내 도서관 좀 다녀오겠습니다.


 왜인지 조심스러워진 세원의 눈빛을 보며 눈짓으로 얘기하던 용국은 이내 웃음을 보이며 재혁의 어깨를 손을 둘렀다. 커피는 니가 사라? 하며.


 온갖 자료를 찾아 테이블에 쌓아둔 채 집중으로 시간을 보내던 차, 작게 울리는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든 용국은 [ 저녁 같이 먹어. ] 라는 세원의 문자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어느덧 세시간이나 지난 시간을 보며 옆에 앉은 재혁에게 가자고 얘길하며 테이블을 정리하던 용국의 손 위로 책이 수북하게 쌓여졌다.


 ㅡ 영화가 좋아서 들어 온 건데 이럴때면 너무 버거운거지.
 ㅡ 새은이는 어때?
 ㅡ 좋아. 애가지고 나니까 한없이 부드러워져서 좋은데 또 까칠할땐 한없이 까칠해져서. 아, 그러고 보니 이쪽도 버겁네.
 ㅡ 그러네, 버거움 투성이네?
 ㅡ 너도 그렇다는 걸로 들린다?
 ㅡ 너 있잖냐, 너.


 재혁의 이마를 밀며 먼저 팀실 안으로 들어 선 용국은 제 자리에 놓인 꽃바구니를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거 제꺼예요? 용국의 목소리에 저마다 시선을 맞춘 팀원들은 밝게 웃어보였고, 용국씨 여자친구 생겼어? 라고 묻는 팀원들 사이로 세원이 들어섰다. 저조차도 알리 없는 꽃바구니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던 용국은 꽃 사이에 꽂힌 작은 편지를 집어 들었다.


 [ schatz. ]


 간결하게 적힌 메세지를 보며 상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 챈 용국은 제 자리 밑 휴지통으로 편지를 떨어트렸다.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여자친구냐며 물었고, 아니라고 대답하던 얼굴 위로 금세 피곤함이 몰려왔다.


 일이 더 남아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현준과 예지를 뒤로 팀원들은 자리를 벗어났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직 나오지 않는 세원을 기다리던 용국은 가까워지는 지웅의 목소리에 절로 귀를 기울였다.


 ㅡ 너 나한테 웰컴 디너 안사냐?
 ㅡ 살게. 사는데, 오늘은 안돼.
 ㅡ 얘 봐라? 야. 오늘 왔는데 오늘 사야지.
 ㅡ 나 오늘 약속 있어.
 ㅡ 약속? 누구랑, 남자랑?
 ㅡ 어, 남자랑.


 코너를 돌던 세원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용국을 보며 새삼 놀랐다. 분명 저의 인기척을 느꼈을텐데 아무런 반응을 않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세원은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섰다.


 ㅡ 너 남자친구 생겼냐?


 셋만이 탄 엘리베이터에선 유독 지웅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적나라한 그의 물음에 세원은 한발짝 앞서있는 용국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놀라하는 지웅의 목소리는 세원의 심기를 정확히 건들였고, 야! 누구야, 몇살이야, 잘생겼어? 라고 쉼없이 물어오는 목소리에 용국은 하마터면 뒤돌아 그 남자친구가 자신이라고 말할 뻔 했다.


 ㅡ 너 안가?
 ㅡ 간다, 가! 기지배야.
 ㅡ 내일 밥 살게, 너 좋아하는 연어 집 가자.
 ㅡ 남자친구도 같이 데려와.
 ㅡ 남자친구는 왜?
 ㅡ 내가 봐야 할 거 아냐, 어떤 사람인지.


 당연하단 듯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세원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배웅하듯 서서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지웅의 차를 보고서야 용국의 차로 올라탄 세원은 공간 가득 따듯한 열기를 느끼며 활짝 웃었다.


 ㅡ 저녁 뭐 먹을까?
 ㅡ 나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하마터면 뒤돌아 볼 뻔 했어요.
 ㅡ 왜?
 ㅡ 남자친구 라는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해서.
 ㅡ 돌아봤으면 지웅이 당황했겠다.
 ㅡ 왜요?
 ㅡ 이렇게 가까이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할텐데.
 ㅡ 그래서 나 내일 데리고 갈 거에요?
 ㅡ 응?


 신호를 받음과 동시에 차의 속력을 줄이던 용국의 시선이 세원에게로 닿았다. 다른 말 대신 저를 가만히 보고있는 눈빛을 보며 용국은 아직이구나 싶은 마음을 받았고, 쉽게 떨어지지 않는 세원의 입술을 보며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다. 부드러운 핸들링으로 교차로를 벗어나며 뭐 먹지? 라고 얘기하던 용국은 여전히 조용한 세원의 눈 앞에 제 손을 갖다대었다.


 ㅡ 장난이에요, 나도 그냥 물어 본 거야.
 ㅡ ... .
 ㅡ 조금 더 만나보고 소개해야지, 당장은 무리인 거 맞아요. 그러니까 이 고민 말고, 저녁 뭐 먹을지나 고민해요.


 덤덤한 용국의 말이 고마웠지만 반대로 미안함도 느낀 세원은 말없이 운전하는 용국을 보았고,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며 차선을 바꾸던 용국은 저를 보고 있는 세원을 보며 옅게 웃었다.


 ㅡ 이젠 눈 안피하네요?
 ㅡ 그야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ㅡ 오-
 ㅡ 자동차 극장가서 영화볼까? 스시 포장해서?
 ㅡ 영화?
 ㅡ 응. 너 레이첼 맥아담스 좋아한다며, 영화 나왔던데.
 ㅡ 어? 어떻게 알았어요?
 ㅡ 아까 얘기 다 들었어. 니 자리에 있던 예쁜 꽃바구니도 봤고.
 ㅡ ?


 모를거라 생각했던 말에 용국의 얼굴론 긴장이 번져갔다. 누구냐는 물음 대신 아무말도 않는 얼굴을 보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어떻게 이해를 시켜줘야할지 고민하던 얼굴을 보며 세원은 고개를 저었다.


 ㅡ 나 물어봐도 되는거지?
 ㅡ 그럼요. 내가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ㅡ 그럼 물어볼게.
 ㅡ 응?
 ㅡ 그 여자는 누구고, 그 꽃은 뭐야?
 ㅡ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요. 한국 들어왔나봐요.
 ㅡ 귀국?
 ㅡ 네. 회사 발령으로 해외에 있었거든요.
 ㅡ 오래 만났어?
 ㅡ 어.. 3년?
 ㅡ 오래 만났네.
 ㅡ 적은 시간은 아니죠.


 얘기를 듣고 마음이 불편해진 세원과는 다르게 용국은 너무나도 덤덤했다. 제가 물어놓고 마음이 상했다는 걸 티낼수도 없어 굳어있던 세원의 볼 위로 가느다란 손이 닿았다 떨어졌고, 그 모습에 화났어요? 라고 묻던 용국은 이내 재밌어진 얼굴을 보며 웃어보였다.


 ㅡ 별 별 생각 다하고 있는 얼굴이네. 3년이면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여자한테 다시 돌아간다하면 어떡하지. 나랑 그 여자랑 비교하면? 아- 내가 그 여자보다,
 ㅡ 말은.
 ㅡ 내가 상처받기전에 미리 헤어지자 해야하나.
 ㅡ 아니거든.
 ㅡ 상황상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건 괜찮은데, 아닌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요.
 ㅡ ... .
 ㅡ 난 아니예요. 뭘로 물어도 난 절대 아니니까, 이 시간 이후로 되짚어 묻지마요.
 ㅡ ... .
 ㅡ 그 사람한테 미련 남았으면 선배한테 그렇게 다가가지도 않았어요.
 ㅡ ... .
 ㅡ 매일 사랑한다고만 말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ㅡ ... .
 ㅡ 저녁 뭐 먹을까요?


 단호하게 얘길하는 용국의 말에 세원은 넘어 오려는 말들을 꾹 눌렀다. 사실 듣고 싶은 말은 한순간 다 들은 셈이니 굳이 그를 재촉 할 필요는 없었다. 사랑한다고만 말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유난히 낮아진 목소리로 얘길하던 말이 세원의 귓가에 울리고 또 울렸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어제와 같이 세원의 옆에서 떨어 질 줄을 모르던 지웅은 탕비실에서 갓 내린 커피 두잔을 들고서 방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창을 치고, 유리 가득 빗방울이 묻어 흘렀다.


 ㅡ 비 참 잘 온다.
 ㅡ 그러게, 종일 와도 좋을 거 같다.
 ㅡ 저녁 뭐 사줄거냐.
 ㅡ 너 뭐 먹고 싶은데?
 ㅡ 말하면 다 사주냐?
 ㅡ 들어보고.
 ㅡ 아! 너 남자친구 꼭 불러.
 ㅡ 부르는 건 문제없는데, 보고 놀라지나 마.
 ㅡ 왜? 내가 아는 사람이야?
 ㅡ 어쨌거나 놀라지마라고.
 ㅡ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비밀이 참 많아.
 ㅡ 여자는 그래야 매력적이거든.
 ㅡ 굳이 나한테까지 매력적일 이유있냐?


 지웅의 말에 세원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며 밖을 보던 시선은 용국과 맞닿았고, 팀원들 몰래 핸드폰을 들어보이는 모습을 보며 세원은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


 [ 나 샘나요. ]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를 보고있는 용국을 보며 세원은 번지는 웃음을 자제하듯 입술을 꾹 깨물었고, 마침 들려오는 지웅의 목소리에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었다.


 ㅡ 한국 잡지사 현, 너 뭐가 그렇게 좋아?
 ㅡ 어?
 ㅡ 뭘 보고 그렇게 웃냐고.
 ㅡ 아무것도 아니야.
 ㅡ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데.


 자리에서 일어나 제 쪽으로 가까워져오는 지웅을 보며 세원은 얼른 핸드폰의 홀드 버튼을 눌렀다.


 ㅡ 남자친구?
 ㅡ 응.
 ㅡ 얼마나 만난거야? 야. 그러고보니 자세한 얘기를 못 들었네, 이참에 좀 듣자.
 ㅡ 얘는 치프가 되가지고. 직원들은 다 일하는데 넌 노냐?
 ㅡ 애들이 일을 가져와야 내 일이 생기지. 야, 됐고 얼른 얘기나 해봐.


 간이 의자를 끌어다 제 앞에 놓곤 앉은채로 묻는 지웅을 보며 세원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어수선한 감정을 느꼈다.


 책상 한켠에 무자비하게 쌓여있던 자료들이 점점 줄어들수록 용국의 얼굴 위론 피곤함이 쌓여갔다. 한시간 남은 퇴근 시간을 보며 당연하게 야근을 생각해야 하는 꼴이 싫었지만, 지금으로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모니터 옆으론 어느샌 네개로 쌓여버린 페이퍼컵을 시작으로 아무렇게나 던져진 비타민이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는 쭉 정리되지 않은 책상을 알리듯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가득 놓여있었다.


 ㅡ 국아, 나 죽을 거 같아.
 ㅡ 나도.


 의자헤드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꼭 감던 용국은 뻐근해진 시야를 느끼며 안약을 찾던 중, 책상 위에서 작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환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였는데 그래도 마음이 시리네. 잘 지냈지 용국씨? ]


 어째서인지 저를 탓하고 있는 문자를 보니 피곤함이 더 밀려왔다. 미련없이 메세지를 삭제함으로써 제 마음을 확고히 드러낸 용국은 뭐 좀 먹자. 라며 일어서는 재혁을 뒤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나 쌀국수 먹고 싶은데.


 사옥 내 식당에서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다시금 카페를 찾았다. 하루도 안되서 다섯잔이라니- 뜬금없이 걱정 된 건강을 생각하며 안 먹을래. 하던 용국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멀쩡하게 보낼거라 장담할 수 없어 다시금 캐셔기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곤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바닐라라떼에 샷 추가해주세요-


 팀실로 돌아오니 기다렸단듯 어질러진 본인들의 자리를 보며 용국과 재혁은 동시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필 이번 프로젝트가 둘로만 이루어진 탓에, 지금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다른 팀원들에겐 와닿지 않을 일이였다. 우리 먼저 갈게요, 용국씨 재혁씨 수고해요, 너들 수고해라! 저마다 다른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비우는 팀원들을 보며 표정없는 얼굴로 인사하던 용국과 재혁의 앞으로 퇴근하는 세원과 지웅이 가까워졌다.


어? 퇴근 안해요? 의아해하는 지웅을 보며 재혁은 프로젝트 자료를 가르키며 웃었다. 못해도 이번주까진 완성해야 해서요. 재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세원은 시선을 옮겨 용국에게 닿았다. 저녁은요? 다시금 물어오는 지웅의 목소리에 방금 먹고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던 용국은 세원을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ㅡ 수고가 많네요, 고생하시고 내일 봅시다.
 ㅡ 네, 수고하셨습니다.
 ㅡ 저.. 용국씨 잠깐 나 좀 봐요.
 ㅡ ?
 ㅡ 탕비실로.


 주차장에서 기다리라는 세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팀실을 나서던 지웅은 다시금 돌아와 제 지갑에서 카드를 하나 빼 재혁의 앞에 놓았다.


 ㅡ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영화제라 두 사람으로는 모자랄텐데 군말없이 잘해줘서 고마워요. 이거는 미안하니까 주는 선물. 이따 퇴근하고 비싼걸로 배채우고, 목축이고들 가요. 내일 봅시다!


 경쾌하게 팀실을 나서는 지웅을 보며 재혁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활짝 웃었다.


 ㅡ 오늘 야근한단 말 없었잖아?
 ㅡ 그러게요, 제 시간에 퇴근하고 싶었는데. 근데 치프랑 어디가요?
 ㅡ 어제 못 사준 밥 사러.
 ㅡ 아.
 ㅡ 같이가자 할랬는데.
 ㅡ ?
 ㅡ 왜 웅이가 그랬잖아, 남자친구 꼭 데려오라고.
 ㅡ 아.


 그제서야 아쉬워하는 세원의 표정을 이해 한 용국의 얼굴 위로 간지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러니까 나랑 못가서 아쉽다 이거죠? 굳이 되묻는 용국의 말에 세원은 대답대신 코를 찡그렸고, 그런 모습을 보며 용국은 한달음에 세원을 제 품에 안았다.


 ㅡ 아, 일을 팽겨 칠 수도 없고.
 ㅡ ... .
 ㅡ 같이 가자고 하는거 못가는것도 속상한데, 이 얼굴로 빤히 보면 나는 어떡하나.
 ㅡ 됐어.
 ㅡ 그냥 갈까요?
 ㅡ 그냥 가면, 재혁이는 어떡하고?
 ㅡ 혁이한테 말하면 되죠. 우리 그냥 일 접고 나란히 집으로 가자고.
 ㅡ 쉽게 못 놓을 일 인거 다 알아. 가자, 너 어서 가서 일해.
 ㅡ 그럼 뽀뽀 한번하고,
 ㅡ 야.
 ㅡ 아무도 없는데 뭐 어떻습니까, 짧고 굵게 뽀뽀 한번만 해주면 군말없이 일할게요.


 용국의 말에 세원은 지금 제 위치가 상사와 여자친구 그 사이 라는 걸 명확하게 느끼고 말았다. 전혀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얼굴로 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용국을 보며 쉽게 다가서지 못하던 세원의 입술 위로 용국의 입술이 먼저 닿았다. 그리고 떨어지며 얘길하던 그의 말에 세원은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자코 기다리기엔 너무 달아서.


 지웅의 입맛을 고려해 찾은 연어집에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남자친구 안와? 라고 묻는 얼굴을 보며 세원은 아쉬운 얼굴로 대답했다.


 ㅡ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 할 수 밖에 없대.
 ㅡ 왜 하필 오늘이야.
 ㅡ 워낙 잘나야지.
 ㅡ 뭐야, 너 지금 자랑하냐?
 ㅡ 할 게 자랑 뿐 이라.
 ㅡ 말이나 못하면.


그래서 넌 민지랑 정말 안녕한거야? 연어가 올려진 초밥을 한입에 먹으며 묻던 세원은 제 앞에서 아쉬움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웅을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ㅡ 난 너 결혼 할 줄 알았는데.
 ㅡ 서로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그게 마음처럼, 생각처럼 되지만은 않더라.
 ㅡ 아쉬워하는 얼굴이다?
 ㅡ 아쉽지. 아쉬운데, 아닌 건 아니더라. 성격이 잘 맞는만큼 안 맞을때는 너무 안 맞아서 나도 겁 나더라고. 연애도 이런데, 결혼하면 여러번 큰일 나겠다 싶어서.
 ㅡ 그것도 참 그렇겠다, 결혼 앞두고 보면 장점만큼 단점도 확연히 눈에 들어오니까.
 ㅡ 너는.
 ㅡ 어?
 ㅡ 넌 어떠냐고. 그 사람이랑 결혼 할 마음 있어?


 결혼이라고 물어오는 지웅을 보며 세원은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을 마음 속으로 받아 들였다. 아직이네. 아무런 대답없는 표정을보며 알겠다는 듯 웃던 지웅을 보며 세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모르겠어. 그리고 그 대답을 내뱉음과 동시에 가방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딸랑 소리를 내며 울렸다.


 [ 맛있게 먹고 있어요? 난 이제 퇴근해요. ]
 [ 늦었네, 고생많았어. ]
 [ 아, 진짜 피곤해서 집에가면 씻지도 않고 잘 거 같아요. ]
 [ 운전은, 괜찮겠어? ]
 [ 당연히 안 괜찮죠. 뭐 옆에 당신이라도 있음 모를까. ]


 용국의 문자에 세원은 번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핸드폰을 들고 일어섰다. 통화 좀 하고 올게. 사랑이 번진 세원의 말에 지웅은 코를 찡그리며 대답했다. 오빠가 큰맘먹고 이십분 준다! 라고.


 어느덧 차가워진 바람에 입고있던 자켓을 여미며 통화 버튼을 꾹 누른 세원은 단번에 들려오는 용국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ㅡ 집에가요?
 ㅡ 아니, 잠깐 통화하러 나왔어.
 ㅡ 맛있게 먹었어요?
 ㅡ 응. 저녁은 먹었어?
 ㅡ 아까 혁이랑 국수 먹었어요. 아, 통화하니까 힘난다.


 아이처럼 맑게 웃는 목소리에 세원은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굳이 제가 묻지 않아도 제가 없는 시간동안 제게 일어 난 일들을 하나씩 얘기하던 용국은 끝난 얘기를 뒤로 물어왔다.


 ㅡ 치프가 당신 많이 아끼는 거 같던데, 맞죠.
 ㅡ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산전수전을 지웅이가 다봤거든, 그래서 그런 거 같아. 뭐 나도 그런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ㅡ 지금 남자친구한테 남자인 친구 자랑하는 거에요?
 ㅡ 자랑하면 듣기는 해?
 ㅡ 듣죠, 따지고보면 치프랑 나랑 카데고리 자체가 다른데.


 어쩌면 삐뚤게 들을 수 있는 제 말을 오롯이 이해한 용국이 세원은 새삼 고마웠다. 다정하게 이어지는 지금을, 따듯한 이 통화를 계속해서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세원은 용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ㅡ 근데 우리 이렇게 통화해도 돼요? 치프 혼자 계시잖아.
 ㅡ 안그래도 지금 들어 가 보려고. 어디 쯤 이야, 집에 다 와가?
 ㅡ 다와가요, 얼른 들어 가 봐요.
 ㅡ 응. 집에 갈 때 연락할게.
 ㅡ 기다릴게요.


 아쉽게 끊긴 전화를 보며 다시금 가게 들어선 세원은 저를 발견하곤 소주를 비워내는 지웅을 보며 웃었다.


 ㅡ 이십분 안 지났지?
 ㅡ 야.
 ㅡ 어?
 ㅡ 너 좋아 보인다.
 ㅡ ... .
 ㅡ 이 얼굴 되게 오랜만이네. 너 진짜 행복해보여, 나 방금 확 느꼈어.
 ㅡ ... .
 ㅡ 누군지 궁금하다. 니 얼굴 특성상 이런 얼굴은 보기 힘든데.
 ㅡ 이런 얼굴이 뭔데?
 ㅡ 뭐긴 뭐야,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예쁜 얼굴이지.


 소주가 든 잔을 세원의 잔에 부딪히며 단숨에 비워 낸 지웅은 옆에 벗어 둔 자켓을 챙기며 일어섰다. 벌써 가? 의아해하는 세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리던 지웅은 새침한 목소리를 남기며 먼저 테이블을 벗어났다. 야, 니 남자친구가 질투하기 딱 좋은 시간이야.


 굳이 저의 집과 가까운 가게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던 지웅의 배려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였다. 가게 앞에서 택시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던 세원은 금세 저만큼 멀어지는 택시를 확인하고서야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ㅡ 잤어?
 ㅡ 아뇨, 막 씻고 나왔어요. 어디에요? 데리러 갈게요.
 ㅡ 아니야, 집 가까이서 저녁 먹었어.
 ㅡ 회사 근처가 아니라?
 ㅡ 김지웅의 배려라고나 할까. 퇴근하고 저녁 먹으면 시간 늦어질 거 아니까, 일부러 집 근처로 가자 하더라고.
 ㅡ 아.
 ㅡ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김지웅 매력이야.
 ㅡ 짓궃다.
 ㅡ 응?
 ㅡ 아까는 카테고리가 정확해서 질투가 안났는데, 지금은 좀 나요. 그러니까 치프 그만 칭찬해요.


 어쩐지 꼭 옆에 있는 것 처럼 확연히 들려오는 용국의 목소리에 세원은 핸드폰을 귀로 더 가까이 갖다댔다. 그런다고 지금 듣는 이 목소리가 더 잘 들릴 일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ㅡ 벚꽃 펴.
 ㅡ 벌써? 아, 맞아. 아까 집에오면서 보니까 곳곳에는 폈던데 거기도 폈구나.
 ㅡ ...국아.
 ㅡ 네.
 ㅡ 아까 지웅이가 나보더니 너 좋아보인다 그러더라.
 ㅡ 어떤 의미로?
 ㅡ 사랑하고 있다는게 내 얼굴로 다 보인대.
 ㅡ 나였네, 이유가 나였어.
 ㅡ ..그러게, 나한테 너라는 이유가 많아지네.
 ㅡ ... .
 ㅡ 점점 더 많아지겠지?
 ㅡ 그럼요.
 ㅡ 점점 더 니가 좋아질거고.
 ㅡ ... .


 어째서인지 걸을수록 자꾸만 올라오는 술기운에, 눈을 두는 곳마다 보이는 아름다움에, 세원은 평소라면 절대로 못했을 말들을 전화너머 연거푸 쏟아냈다.



 분명, 내일 아침이면 또렷하게 기억 날 지금을 당장에는 기억하지 못한 채, 그간 마음 속으로 숨겨놨던 그 모든 말들을 달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쯤 걸었을까, 벚꽃나무 밑을 걸어가던 세원의 머리 위로 먼저 핀 꽃잎 하나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점점 더 니가 - 옅은 바람과 함께, 옅게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이어지는 여자의 취중고백은, 늦은 밤 나른해진 남자의 마음을 쉼없이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좋아해. 사랑해. 굳이 그 말들을 꺼내지 않아도 그만큼의 마음이 전해지는 애정의 말들이, 달콤한 그 말들이, 떨어져있는 그와 그녀의 사이를 봄바람과 함께 싱그러움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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