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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28. 2016

남과 여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던 4월이였다. 남들은 둘이여서 좋다는 이 춘사월에, 어째서인지 수연의 얼굴 위론 잔뜩 화가 번져갔다. 하필이면 이 아름다운 달, 이 아름다운 날에.


 ㅡ 회사 후배는 너만 있어?


 퇴근 후, 동네 치킨 집에서 지호와 만난 수연은 여전히 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화가 난데엔 명확한 이유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남자친구에게 묻은 낯선 여자라는 것 이였다.


 ㅡ 내가 잘못했어 근데, 정말 집에 데려다 주기만 했다니까?
 ㅡ 내가 알게 뭐야. 니가 집엘 데려다 줬는지, 집엘 데려갔는지 내가 알게 뭐냐고!
 ㅡ 마음에도 없는 말 해라.
 ㅡ 뭐가 마음에 없는데? 너무 마음에 있는 말인데.
 ㅡ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우면 승훈이한테 전화해봐, 후배 데려다주러 걔도 같이 갔어.


 후드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조금 신경질 난 손길로 테이블 위로 놓은 수연은 제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곤 단숨에 반을 비워냈다.


 ㅡ 그럼 말이라도 말고 숨기던가. 세상에 어느 여자가, 자기 남자친구가 새벽 한시에 외간여자를 데려다준다는데 이해를 하냐고. 어?
 ㅡ 언제는 숨기지 마라며, 죄다 표현하자며.
 ㅡ 그러니까 너 되게 내 말 잘 듣는 거 같다?
 ㅡ 너 오해하게 한 건 미안해. 근데, 정말 아무일도 없었고, 아무짓도 안했고, 아무것도 안했어.
 ㅡ 나는 그 상황이 싫은거야. 니가 아니여도 데려다 줄 사람은 있을거고, 없다한들 알아서 잘가겠지 뭐!


 사건의 발달은 이러했다. 얼마 전 있었던 회사 회식에서 만취한 여자 후배를 모른 척 할 수 없어 챙겨 데려다줬던 지호의 배려가 수연을 머리 끝까지 화나게 만든 거였다.


 ㅡ 알았어, 다음부터는 모른 척 할게. 미안해.


 억지로 제 감정을 누르며 얘기하는 지호의 얼굴엔 답답함이 가득 번져있었다. 마음 같아선, 니가 후배의 입장이 되었는데 모두가 나몰라라하면 좋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곧 석유인 셈이였다. 지금은 이러나 저러나 제 입에서 나올 말은 묵인도 아닌 잘못을 인정하는 것 이였다.


 맥주를 두 잔째 비워낸 수연과는 달리 빠르게 닭을 비워내던 지호는 따가운 눈총을 느꼈지만 고개를 둘 순 없었고, 들리진 않았지만 수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지금 닭이 넘어가냐? ' 라고 앙칼지게 묻는 목소리가.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평소 같았으면 쉽게 잡았을 수연의 손을, 오늘은 쉽게 잡을 수 없어 머뭇거리던 지호는 어색한 사이를 지우려는 듯 헛기침을 뱉으며 옆으로 붙어섰다. 평소와는 조금 떨어 진 거리로.


 이 또한 그랬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바빴을 그녀의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적막속에서 얼마 쯤 걸었을까, 도저히 이대로는 집으로 보낼 수 없어 아파트 옆 편의점으로 말없이 들어선 지호는 평소 수연이 좋아하는 쭈쭈바 두개를 손에 쥔 채 나타났다.


 ㅡ 너 열받으면 이거 꼭 먹어야 하잖아.
 ㅡ ... .
 ㅡ 가자.


 여느때와는 조금 다른 귀갓길이였다. 손도 허전할 뿐더러 마음도 허전하고, 귓가로 소음만 들려오는 것 또한 허전했다. 한걸음 먼저 앞서 걷던 지호는 뒤에서 일정하게 들려오는 수연의 발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유지했고, 어색하고 허전한 순간 순간을 느끼며 걷던 지호는 어느 덧 다다른 수연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ㅡ 들어 가.
 ㅡ ..응, 잘 가.
 ㅡ 내일은 화 풀고 만나자.
 ㅡ ..몰라.
 ㅡ 전화할게.
 ㅡ ... .


 어제와는 다른 인사로 집을 향해 걸어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보며 지호는 번져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걸음을 돌려 20분 거리인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방금 전 까지 일어 난 너무나도 명확한 서로의 생각 차이에 깊은 깨달음을 느끼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승훈의 이름을 꾹 눌렀다.


 ㅡ 왜.
 ㅡ 나 수연이랑 한바탕 했다.
 ㅡ 왜.
 ㅡ 새벽에 혜윤이 데려다 준 걸로.
 ㅡ 그걸로 한바탕 할 게 뭐 있어? 그럼, 술에 취한 후배를 나몰라라 두고 가는게 선배냐?
 ㅡ 그건 우리 입장이고.
 ㅡ 그럼 수연이 입장은?
 ㅡ 욕 나오는 입장이지. 아니다, 욕을해도 시원찮은 입장이다.
 ㅡ 오늘 욕 좀 들었겠네?
 ㅡ 욕이라면 욕이겠지만 사실 좀 좋더라.
 ㅡ 욕을 들었는데 좋다고? 변태냐?
 ㅡ 그만큼 수연이가 나를 좋아한다는게 느껴져서.
 ㅡ 뭐?
 ㅡ 사실 우리가 연애도 오래했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데도, 나에대한 상대방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는 잘 모르잖아,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ㅡ 어.
 ㅡ 근데 아까 치킨집에서 날 보면서 눈도 입도 이따만큼 커져서 화내는걸 보는데 이상하게 좋더라. 아, 아직 이 여자가 나에 대한 마음이 크구나- 싶어서.


 진지한 지호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그제서야 이게 자랑이란걸 깨달은 승훈의 얼굴위로 짜증이 번져갔다. 너 지금 사랑을 빙자한 자랑을 나한테 던지는거냐?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 나 지금 좀 언짢다. ' 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지호는 호탕하게 웃었다.


 ㅡ 말이 또 그렇게 되네.
 ㅡ 왜 이 밤에 솔로인 나한테 전화를 해대서 사랑을 자랑하냐, 자랑하길.
 ㅡ 시작은 푸념이였는데 말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랑이 됐네. 사과할게.
 ㅡ 사과는 염병하네. 야, 끊어!


 무자비하게 끊어 진 전화를 보며 웃던 지호의 시선으로, 핸드폰 화면 속에서 맑게 웃는 수연이 들어섰다. 오늘 하루 어쩌면 제일 보고 싶었던 이 얼굴을, 실제론 마주하지 못했지만 사진으로나마 보게 되어 따라 웃게 되던 순간 화면위로 수연의 이름이 뜨며 메세지가 도착했다.


 [ 너 못 믿어서 화낸 거 아니야. 그냥 니가 나 아닌 다른 여자한테 다정했던게 심술나서 그랬어. ]


 주체 할 수 없이 올라가던 입꼬리는 연이어 도착한 문자 한통에 쏟아지고 말았다.


 [ 나 화났다고 쭈쭈바 사다주는 거, 남들은 모르는건데 너는 알잖아. 사실 너만큼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는데. ]


 방금 전, 제가 화난 수연의 목소리에서 사랑을 느꼈듯 수연 또한 제가 건넨 쭈쭈바에서 사랑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였다.


 답장대신 통화목록에서 수연의 이름을 꾹 누른 지호는 입가로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걸음을 걸었다. 얼마 못가 응- 이라고 대답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뭐하고 있어? 라고 묻던 지호의 어깨 위로 쏟아지던 벚꽃잎 몇장이 자리를 잡은 채 묻어 있었다. 분홍 빛 달콤한 꽃잎들이 하나둘씩 모여 마치, 사랑에 빠진 그를 보며 웃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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