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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30. 2016

끌림

can't take my eyes off U

 비어있던 진열장 위로 손수 만든 캔들이 하나씩 올려지고, 열이 오른 오븐 안에선 레몬이 올려진 브라우니가 알맞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어느새 창을 흠뻑 적셨고, 가게 안으론 내리는 비 냄새와 커피 향이 섞여 알싸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무던하게도 그녀의 하루는 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손님이 왔다는 걸 알리는 작은 종이 울리고, 그릇을 마른 수건으로 닦던 효주의 고개가 들려졌다. 어서오세요- 담백한 인삿말에 들어서던 남자는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처음 공방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아해 했듯 남자의 얼굴에도 그 표정이 그려져있었다. 한 쪽 벽에는 여러 종류의 캔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정면으로 보이는 앞 쪽으로는 메뉴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모던한 몇글자가 적혀있었다.



 아메리카노 / 캐모마일 / 라벤다

 빵은 매일 아침 가게에서 직접 굽습니다. < 오늘의 메뉴 : 레몬 브라우니 >

 캔들과 디퓨저 시향 원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 …아메리카노 따듯한 거 한잔이랑요. "

 " 네. "

 " 캔들 하나만 추천해 주시겠어요? "



 남자의 말에 효주는 맑게 웃으며 카운터를 벗어났다. 평소 어떤 향을 좋아하냐고 묻는 효주의 말에 남자는 그런  걸 정해두고 살진 않는다는 얼굴을 보이며 멋쩍게 웃었다. 성격에 따라서 고를 수 있는 향이 많다고 얘길하며, 진열장 옆 협탁에서 작은 책자를 건네던 효주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 제 시선을 옮겼다.



 " 추천 좀 해주세요. 아는 향이라곤 라벤다 밖에 없어서. "

 " ‥실례가 안된다면 직업이 뭔지 물어도 될까요? "

 " 아, 저 영화 음악 감독이에요. "

 " 멋있네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알 거 같아요. "

 " …? "

 " 직업의 고충요. 새벽이 아침이고, 예민함이 친구고, 그쵸?  "



 무겁지 않은 효주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추천해주고 싶은 향은 여러개 였지만 여기서 여러 향을 추천했다간 오히려 남자에게 복잡함을 안겨 줄 뿐이였다. 간추리고 간추려 제 손바닥 위에 미니어쳐 세개를 두고 남자의 시선을 살피던 효주는 짐짓 진지해진 얼굴을 보며 잠자코 기다렸다.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임을 인지하며.



 " 그럼 이걸로 할게요. "

 " 용량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캔들을 처음 쓰시는 분들에겐 작은 사이즈를 추천드리는데, 이 정도예요. 괜찮으세요? "

 " 네. 다 쓰면 또 올게요. "



 카드를 받으며 웃던 효주는 결제가 되는 동안 페이퍼백에 물건들을 하나씩 담았다. 캔들라이터와 윅디퍼를 담는 모습을 보며 뭐냐고 묻는 얼굴을 보며 효주는 다시금 빼내어 설명을 곁들였다. 이거 하나사는데 이것도 주시는 거예요? 의아하단 듯 물어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효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또 오신다고 하셨으니까 드리는거에요. "

 " 고맙습니다. "

 " 향이 잘 맞았음 좋겠어요, 편히 쓰세요. "

 " 네, 수고하세요. "



 다시금 딸랑- 거리는 소리가 가게안을 울리고, 다 구워진채 저를 기다리고 있던 브라우니를 꺼내어 그릇에 하나씩 담던 효주의 앞으로 다시금 종소리가 울렸다. 들고있던 트레이를 내려놓으며 인사를 건네던 그녀 앞으로 맞은편 가게에서 과일 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가까워져왔다.



 " 감기는 다 나았어? "

 " 아주머니 덕분에 말끔히 나았어요. 차 한잔 드릴까요? "

 " 그럼 좋지. "

 " 아침은 드셨어요? "

 " 응. 효주 아가씨는? "

 " 저도 먹었죠.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방금 구운 레몬 브라우니인데 크게 달지 않아서 괜찮으실거에요. "



 준비한 차와 브라우니가 담긴 그릇을 내어놓는 효주를 보며 마냥 예쁘다는 듯 웃던 아주머니는 오늘도 그 말을 뱉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휴, 내가 아들만 있었으면 효주 아가씨한테 내 며느리 해달라 하는건데! 라며.



 작은 동네에 위치한 작은 공방이다보니 이웃간의 교류가 어쩌면 당연한 듯 했다. 지금처럼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자주 드나드시는 것 처럼, 가게 옆으로 쭉 이어지는 세탁소며 식당이며 화장품가게 등등‥. 다들 거리를 지나가며 잠시라도 들러 인사를 건네는게 이 동네만의 맛이였다.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던 효주의 시선으로 손님이 들어서고 때 마침 차를 비워 낸 아주머니는 이따 과일먹으러 와. 라는 말을 건네며 공방을 벗어났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저녁까지 내리고 있었고, 퇴근 후 공방으로 놀러 온 지예가 사 온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그간 못한 말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소개팅 한 남자는 어때? 효주의 말에 지예는 단박에 고개를 젓는걸로 아니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 알고보니 오래만나던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홧김에 나온거더라고. "

 " 대박. 진짜야? "

 " 진짜- 아, 잠시나마 좋아했던 내가 어찌나 부끄러워지던지. "

 " 열 좀 받았겠네 민지예. "

 " 조금만 받았을까. 너는, 너는 요즘 연락하는 사람없어? "

 "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있을리가. "

 " 종일 공방에만 있지 말라니까. 이러다가 결혼도 멀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



 늘 그랬듯 들려오는 지예의 잔소리를 들으며 웃던 효주는 별일없는 제 일상을 돌아보며 밀려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긴, 내가봐도 재미없게 살긴 해. 인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지예는 내리는 비를보며 외롭다고 소리를 치며 웃었다.



 " 어릴 땐 스물 아홉살 생각하면 마냥 어른 같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마냥 어른은 아닌 거 같고. "

 "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고.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라는 게 서럽고? "

 " 그래. 그 소개팅은 좀 그렇다. "

 " 야-! "



 찌푸려진 지예를 눈을보며 웃던 효주는 가게 안으로 번진 떡볶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테이블에 놓인 캔들을 켰다. 빠른 손으로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하나 남겨 둔 레몬 브라우니와 커피를 곁들이며 공방 마감을 준비했다. 내일은 뭘 구울거냐는 지예의 말에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릴거라던 효주는 대답과 동시에 생각난 머핀을 얘기하며 메모지 위에 재료들을 써내려갔다.



 혼자 사는 두 여자의 공적인 장보기와 사적인 장보기가 끝나고, 휴일에 다시 만나 맥주 한잔 하자는 말로 인사를 하며 지예와 헤어진 효주는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위한 베이커리 반죽을 준비했다. 늘 직접 베이킹을 한다는 점에 있어 수량은 스무개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계량을 잘못한 탓에 스무개가 훌쩍 넘을 듯 했다. 큰 손을 탓하며 열심히 반죽을 하고, 사 온 재료들을 통안에 알맞게 채워놓고서야 오늘 하루가 끝이 난 효주는 잘 준비를 하며 침대에 올랐다. 여전히 창 밖으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가게로 출근해 오픈을 준비하던 효주는 어젯 밤 반죽으로만 끝냈던 머핀들을 만들기 위해 분주해졌다. 사뒀던 초콜렛과, 아몬드를 올리며 베이킹에 한참이던 공간으로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고개를 들며 인사를 건네던 효주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보며 환히 웃었다.



 " 잘 지내셨어요? "

 " 그럼요. 효주씨도 잘 지냈죠? "

 " 그럼요. 한동안 안오셔서 많이 바쁘셨구나 했어요. "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공방 근처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선생님이였다. 매번 방문할때면 캔들과 디퓨저를 한아름 사가고는 했는데 오늘 또한 다른 날과 같았다. 캔들이 유한 향이라 아이들도 부담없어 한다며 맑게 웃던 그녀는 막 구워지고있는 머핀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효주씨 머핀도 만드는거야? "

 " 생각보다 쉬워요, 다음에 공방오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

 " 사람이 이렇게 순해도 되나 몰라. "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공방을 맴돌고, 다섯개의 캔들과 다섯개의 디퓨저를 꼼꼼히 포장하던 효주는 페이퍼팩을 건네며 갓 내린 커피 또한 함께 건넸다.



 " 다음엔 여유있게 오셔서 더 얘기해요. "

 " 안그래도 나 효주씨한테 궁금한 거 많아, 수업 느슨 할 때 내려올게. "

 " 네, 캔들 편히 쓰시구요. "



 가게를 벗어나는 그녀를 향해 맑게 인사하던 효주는 금세 비워진 진열장을 보며 간이  서랍에서 캔들과 디퓨저를 꺼내 올려두었다. 오늘은 퇴근하면 베이킹보다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물들던 차, 다시금 종소리가 울려왔다.



 " 어서오, 어? 안녕하세요. "

 " 네, 안녕하세요. "



 단걸음에 카운터로 들어 온 효주는 저를 보곤 캔들이 놓여진 진열장을 보는 얼굴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 작업실에 놓고 쓰다보니까 작은 사이즈는 금방 줄어들어서 큰 용량으로 살려구요. "

 " 아, 네. 향은 어떠셨어요? 괜찮으셨어요? "

 " 네, 좋았어요. "



 좋았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진열장으로 향한 효주는 그 때보다 조금은 덜한 부담감으로 향을 고를 수 있었다. 신중하게 고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그는 두개 골라주세요. 라고 얘길하며 웃어보였다.



 " 번갈아가면서 태우면 덜 질릴거에요. 두개 다 용량이커서 하나로만 사용하면 질릴수도 있어서. "

 " 그렇게 할게요. "

 " 계산, 아. 잠시만요- "



 계산을 하려다말고 뒤돌아 커피 기계 앞으로 다가 선 효주는 금세 따듯한 커피 한잔을 내렸다.



 " 공방에선 캔들 두개 사시면 커피 한잔 드리고 있어요. "

 "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



 받은 카드로 결제를 마치고 영수증과 함께 건네던 효주의 앞으로 그린색 봉투가 놓여졌다. 분명 그의 손에서 나왔을 봉투였기에 다른 말 대신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묻던 효주는 저를 보며 웃는 얼굴에 귀를 기울였다.



 " 이번에 작업한 영화가 내일 시사회 거든요. 멜로 영화 좋아하시면 가서 보셨으면 해서. "

 " 제가 받아도 되는 거에요? "

 " 네. 저는 내일도 작업이 있어서. "

 " 고맙습니다, 잘 볼게요. "

 " 네. 수고하세요- "



 서툰 행동으로 가게를 나서는 그가 일순간 효주의 눈엔 귀엽게만 보였다. 받은 봉투를 열어 티켓을 꺼내던 효주는 제 앞으로 툭 하고 떨어지는 작은 메모에 시선을 옮겼다. 그 작은 메모에는 그의 전화번호와 함께 정갈한 몇마디가 붙어있었다.



 [ 당장 영화가 어땠는지 물으러 갈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요. 보시고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



 살랑거림이 잠시 효주의 마음에 붙었다 이내 사라졌다. 티켓과 메모를 다시금 봉투안에 넣고, 방금 전을 가만히 되돌아보던 효주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때 마침 도착한 지예의 연락에 답장버튼을 누르던 그녀의 손길은 조금 빨라졌다.



 왠일로 영화를 다 보자는 거냐고 묻는 지예에게 시사회에 당첨됐다고 어물쩡 넘어가던 효주는 자리에 앉아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영화 음악 감독이 직업이라던 그의 말이 다시금 귓가로 일렁이고, 한동안 어수선했던 극장 안은 영화 상영이 가까워지며 조용해졌다.



 멜로라고 얘기했던 그의 말대로 영화의 흐름은 뭉클함과 아쉬움 그리고 진한 사랑이 여러번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용을 넓혀주듯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효주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재밌다고 얘길하는 지예의 목소리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웃던 효주는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못가 음악감독 옆으로 적힌 이름 세 글자를 확인하며 웃던 효주는 핸드폰을 꺼내어 비어있던 채로 저장돼있던 번호에 이름을 채워넣었다.



 재밌는 영화를 보여줘서 고맙다던 지예에게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그의 메모가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 든 효주는 연락처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 메세지 버튼을 눌렀다.



 [ 덕분에 영화 잘 봤어요:-) ]

 [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

 [ 네. 두시간동안 음악듣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

 [ 다행이네요. 효주씨가 재밌었다니까. ]

 [ 좋았어요. 다만 메모에 본인 이름은 안적어주고, 전화번호만 달랑 적어줘서 엔딩크레딧 올라 갈 때 엄청 집중해서 봤어요, 현중 씨. ]



 그제서야 현중은 메모를 쓰며 급한 마음에 번호만 적어 넣었던 제가 생각났다. 작은 탄식으로 제 실수를 아쉬워 하던 차, 정신없는 엔딩크레딧 속에서 제 이름을 찾았다는 효주의 문자가 다시금 눈을 밝히고, 그 말에 단순하게도 현중의 얼굴 가득 웃음이 번져갔다.



 [ 제가 너무 서둘렀나봐요. ]

 [ 아니예요. 덕분에 놓칠 뻔 했던 에필로그 영상도 보고, 두 번 봐도 좋을 영화 같아요. ]



 제가 작업한 영화에 대해 칭찬만 늘어놓는 효주의 말이 마냥 고마운 현중이였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하나- 고민하던 얼굴 위로 그제서야 그 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 봐도 좋을 영화 같아요.



 그럼 저랑 한번 더 보실래요? 라는 말을 썼다 지웠다 쉼없이 반복하던 손은 이내 지쳐선 화면 위에 멍하니 올려져있었다. 혹시나 이런 제 말이 그녀에게 실례가 될까 머릿속으로 온갖 고민을하던 현중은 그럼 저랑 이라고 까지 써 있는 문자를 보며 용기내어 다시금 꾹꾹 눌러썼다.



 [ 그럼 저랑 한번 더 보실래요? ]

 [ 그래도 돼요? 한동안 바쁘시다면서. ]

 [ 바쁜 일 바쁘게 끝내면 되죠, 효주씨만 괜찮다면. ]



 제가 보내고도 조금은 과감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으로 후회 아닌 후회를 하던 현중의 휴대폰은 방금 전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답장없는 메세지함을 보며 너무 앞서갔구나 하던 생각을 멈추지 못하던 차,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핸드폰이 작은 진동을 알리며 현중의 시선을 끌었다.



 [ 그럼 바쁜 일 바쁘게 끝내고 보러가요. ]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끌려갔다. 그가 보낸 끌림에 그녀가, 그녀가 보낸 끌림에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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