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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07. 2016

비눗방울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을 보며 밤새 머물러있던 집 안의 적적함을 내보내듯 문을 활짝연다. 봄과 여름 그 사이의 바람이 살랑거리며 머리를 스치고, 윤지는 그 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마음을 안은채로.



 조용하던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방으로 항했다. 쉼없이 도착하는 친구들의 메세지를 보며 한번에 읽기는 무리인 거 같아 천천히 한글자씩 읽어가는데, 한 친구의 말 속에서 낯익은 이름이 쓰여져 나왔다.



 [ 어제 회사동기 소개팅 했었는데 알고보나 상대가 유현준이였어. 대박이지? 야, 이지은! 보고있어? ]



 금세 대화창으로 오르는 이름은 세달 전 나와 헤어졌던 그 사람의 이름이였다. 친구의 말을 읽고도 달리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아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던 내 손위로 다시금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 근데 회사 동기는 별로였대. 한눈에 남자다움이 보여서 좋았는데 너무 과묵하더래. 얘는 좀 시끌시끌한 사람 좋아하거든. ]



 그 문자를 보며 윤지는 쉼 없이 흔들리고 마는 마음을 느꼈다. 자신이 좋아했던 그의 부분을 다른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윤지의 마음을 쿵쿵거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다시 제게  올 건 아니란걸 잘 알면서도.



 연이어 차오르는 메세지들을 보며 윤지는 출근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가방속으로 핸드폰을 넣었다. 지금은 무슨말도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말은 모두 제게 독이 될 것만 같았다.



 가게에 도착해 오픈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난데없이 서점을 운영하겠다는 내 말에 부모님은 말문이 턱 막히셨는지 아무말도 못하셨고, 윤지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그간 준비해왔던 모든 일을 쉼없이 설명드렸다. 정말 한치의 쉼도 없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렇게 저렇게해서 밥벌이 해 볼게요! 라고.



 어제 밤,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아침에야 정리를 끝냈다. 부산에서 사시는 부모님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불안한 듯, 늘상 밥은 먹었냐고 물으신다. 그럴 때 마다 매끼를 너무 잘 먹어 문제라지만 부모님은 절대 믿질 않으신다. 정말로 서점을 운영하고부터 살이 5kg나 쪘는데.



 16평으로 이루어진 내 공간은 그저 아담했다. 한 쪽 벽면 가득 채워진 책 말고는 딱히 시선을 끌만한 건 없었다. 뭐 당연히 서점이니 책만 있으면 됐지만. 오픈과 함께 긴 시간 닫혀있던 입구의 문을 열었다. 이내 시원한 바람이 볕을 타고 들어와 책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밤 들어 온 신간들을 소개하는 작은 칠판까지 가게 앞으로 내어 놓고보니, 비로소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무난하게 흐르길 바라는 마음이 슬몃 생겨났다. 누나 안녀엉! 골목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는 유치원 봉고차를 향해 뛰어가면서, 늘 제게 인사 하는 걸 잊지 않는 다섯살 유준이의 오늘도 어제처럼 시작되었다.



 가방에 넣어 온 도시락을 꺼내며 딸려나온 핸드폰 속으론 여전히 쉼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선명해진 화면위론 부재중 전화 두통이 찍혀있었다. 메세지 보면 당장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남은 그녀는 오늘 아침 내게 옛사랑의 소식을 전해 준 바로 그녀였다.



 ㅡ 응.

 ㅡ 너 문자 다 읽었어?

 ㅡ 아니, 방금 오픈 준비 끝났어. 그리고 걔 얘기는 왜 꺼내, 민망하게.

 ㅡ 민망하기는, 반가우면서.

 ㅡ ... .

 ㅡ 이번에도 회사에서 한건했대, 그 덕으로 승진한다던데? 여전히 잘났다 유현준.

 ㅡ ..그러네.

 ㅡ 억지로 나온 티가 다분했다던데 알게 뭐야. 됐고, 너도 얼른 새 사람 만나.

 ㅡ 알았어.

 ㅡ 소개팅 주선해주면 빼지말고 나오고. 어?

 ㅡ 아휴- 아침부터 잔소리, 알았어 끊어.



 서둘러 정연의 전화를 끊은 윤지는 이내 어지럽혀진 마음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잠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일렁거리며, 많은 걸 윤지의 앞으로 쏟아내었다. 까먹고 지냈던 추억과, 잊으려 했던 기억들을.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 이였고, 간간히 관광객들이 찾아오곤 했다. 가게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일반서점과는 다른 독립 서점의 분위기에 동네 어르신들은 어색해하기도 하셨지만, 이제는 익숙해지셨는지 지나가면서도 가볍게 들어오곤 하셨다. 그리고 항상 할아버지 손을 꼭 잡은 치 가게로 들어와 카봇을 찾던 어린 아이도 이제는 할아버지 없이 혼자 곧잘 오곤 했다. 어느새 자란 키를 뽐내며 씩씩하게.



 점심을 먹기 전, 인터넷으로 들어 온 주문을 정리하던 눈 앞으로 낯익은 이름이 들어왔다. 괜시리, 애꿏게 넘쳐나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던 차 이름 옆으로 쓰여진 주소가 그의 집이 아니란 걸 깨닫고서야 윤지는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게 복잡하기만 했다.



 별스럽지 않은 오전과 오후는 늘 상 있는 일이였다. 사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장사가 더 잘되는 것도 늘 상 있는 일이였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하루 또한 다름 없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들에게 짧은 카드와 함께 손수 만든 책갈피를 넣어 포장을 마친 윤지는 한산한 시간을 이용해 책을 실어 우체국으로 향했다. 다시금 꼼꼼히 주문자를 확인하고 나오던 길, 맑은 하늘 위로 구름이 가득 번져 있었다.



 아침부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던 그 날 이후로 정확히 일주일이 흘렀고, 오늘은 그녀들과 저녁 약속이 있는 날 이였다. 뭘 그렇게들 벼르고 나오는건지, 내일이 없다는 듯 마시고 볼 거라는 한 친구의 말에 몇명을 동요를 했고, 몇명은 질색을 했다. 물론 나도 후자에 속해 동요하는 그녀들을 향해 질색과 팔색을 동시에 흩날렸다.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온라인으로 들어 온 주문은 이틀에 한번씩 모두 모아 택배로 나가곤 했다. 오늘도 주문 들어 온 리스트를 뽑아 하나씩 확인하던 윤지의 손이 종이를 넘기다 말고 멈춰섰다. 잘 없는 일 중 하나라 이럴때면 더욱이 유심히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주문자의 메모칸이였다. 그 작은 공간은 서점 담당자에게 남길 말이나 배송메모를 위해 마련 된 칸이였는데 매번 비워져 있던 그 곳이, 방금 전 스무장을 넘기면서도 비워져 있던 그 곳이, 마지막 손님의 주문서에는 채워져 있었다.



 [ 책 좀 추천해주세요. 헤어진 여자와 다시 만날 수 있는 30가지 방법, 뭐 그런 건 없나요? ]



 생각지도 못한 메모를 보며 윤지는 눈만 깜빡일 뿐이였다. 그리고 다시금 읽게 된 주문서에 적힌 이름은 그의 이름과 같았지만, 그 옆으로 쓰여진 주소는 그의 집 주소가 아니였다. 멍해진 윤지는 한참뒤에야 엉뚱한 메모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다른 서점이면 넘쳐나는 연애서적이 이 서점에 만큼은 넘쳐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메세지를 가만보다 서랍을 열어 작은 카드를 꺼낸 윤지는 손수 메세지를 써내려갔다.



 [ 아쉽게도 저희 서점엔 연애서적이 없어요:) 그리고 시중에 나와있는 책 중엔 헤어진 여자와 다시 만날 수 있는 30가지 방법의 책은 없는걸로 아는데.. 아니면 그런 책이 나왔는데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알려주세요. 구입에 힘 써볼게요. ]



 책과 카드를 넣은 봉투를 봉하면서도 웃음이 절로 새었다. 3년동안 일하며 이런 메모는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진 웃음은 한동안 윤지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저녁 약속도 있고, 택배도 보내야 하는 이유로 평소보다 한시간 일찍 서점 문을 닫은 윤지의 양 손엔 책들로 가득했다. 익숙하게 택배들을 보내고, 약속시간보다 먼저 장소에 도착한 윤지는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항했다. 그렇게 10분 쯤 지났을까,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튀며 서로가 왔다는 걸 알렸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자 일곱이 모인 자리는 금방이라도 테이블이 부서질 듯 했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시간동안 서로에게 일어 난 일들로 룸 안은 벌써 세시간 째 시끄러움으로 가득했다.


 평소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 윤지는 늘 그랬듯 오늘도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얘기에 집중하다말고 정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마주침을 조용히 넘어갈리 없는 그녀는 우렁찬 목소리로 윤지를 가르키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주변에 괜찮은 남자없어? 윤지 좀 소개시켜줘! 정연의 말에 그녀들의 시선은 일제히 윤지에게로 몰려 들었다. 진짜해줘? 받을거야? 쉼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윤지는 다른 말 대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대답을 대신하며 그렇게.


 몇번이고 같았던 대화들이 오가고, 열두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 난 그녀들은 그제서야 출근을 걱정하며 가게를 벗어났다. 늘 그랬듯 같은 방향인 친구들끼리 모여 가는 길, 윤지는 유주와 함께 도로변으로 향하며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ㅡ 정연이 말대로 언제든 말해, 우리가 멋진남자 찾아다 네 옆에 세워놀라니까.
 ㅡ 진짜 이정연 입김은 알아줘야 돼.
 ㅡ 요즘 어때. 별 일 없어?
 ㅡ 없어, 종일 서점에만 있는데 뭐. 넌?
 ㅡ 나도 뭐 다를 것 없지. 아니다, 다를 거 있네.
 ㅡ ?
 ㅡ 난 연애 하잖아.
 ㅡ 야!


 미움없는 눈으로 유주를 쳐다보던 윤지는 멀리서 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소소한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윤지의 집 앞에 멈춘 택시로 인해 그녀들의 대화도 멈추었다. 연락하자는 말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서던 윤지는 며칠 전 제가 느낀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왜 자꾸 마음이 젖는 느낌을 받는건지- 저 또한 답답 할 뿐이였다.


 피곤함과 숙취가 번진 아침은 정말이지 곤욕이였다. 따듯한 이불속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하던 윤지는 점점 가까워지는 오픈시간을 확인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출근을 준비했다. 뭘 어떻게해도 어제보단 덜 예쁜 얼굴이였지만.



 오후엔 얼마 전, 연락 온 동네 중학교 아이들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교내 신문부에서 우리동네 자랑거리로 서점을 선택했는데, 혹시 인터뷰 가능하냐고 물어오는 아이들의 물음을 쉽게 내칠 수 없었던 이유가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어떻게 독립서점을 차리게 되었냐는 질문부터 시작해, 뻔하지만 아이들의 시점으로 물어오는 질문들을 들으며 진중하게 대답을 건네던 윤지는 한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나고서야 편히 웃었다. 중학생이라해도 인터뷰어는 인터뷰어였으니 편할리가.


 서점을 나서기 전,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뭐라도 주고싶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윤지는 얼마 전 들어 온 에코백을 발견하곤 세장을 건넸다. 오늘 고마웠다는 윤지의 말에 자기들이 더 고마웠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딱 아이들이였다. 가만히있어도 귀여움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퇴근 전, 온라인으로 들어 온 주문을 확인하던 윤지의 눈으로 그의 이름이 들어섰다. 새로 들어 온 시집을 주문한 그는 메모창에 대답을 남긴 듯 했다.


 [ 사실 없는 책이죠. 혹시 제가 그런 책 써내면 서점에서 판매 가능할까요? 전 자신있는데. 열심히, 예쁘게 여심 공략으로다 써 볼게요. ]


 텍스트 가득 느껴지는 그의 뻔뻔함에 윤지는 웃음이 났다. 작가인가? 직업이 뭘까?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의 직업을 유추하던 윤지는 메모와 펜을 들고 답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자신있다고 하시니 책 기다릴게요. 헤어진 여자와 다시 만날 수 있는 30가지 방법. 열심히, 예쁘게 여심 공략으로다 써 주세요. ]


 봉투안에 책과 메모를 함께 넣어 끈으로 묶곤 주소를 적어 택배 박스에 담던 윤지의 얼굴 위로 다시금 웃음이 번졌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끝나가는구나- 새삼 어두워진 밖을보며 생각하던 윤지는 시간을 확인하곤 서둘러 마감을 시작했다.


 택배를 보냈던 그 날 이후로 이주 째, 온라인 속에선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일말의 장난이였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준비하던 윤지는 평소보다 많은 주문건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마 전, 중학교 친구들과 인터뷰를 한 이후로 10대 친구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듯 했다.


 드문드문 열리는 문에 밝게 인사를 건네고, 책을 포장해 건네고, 손님이 가면 다시 또 주문받은 책을 포장하며- 어느덧 저녁이 되었지만 손은 여전히 일을 놓지 못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서점의 문이 열렸고, 묶고있던 끈에서 시선을 들어 인사를 건네던 윤지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구두소리, 익숙한 실루엣, 그리고 저를보며 슬며시 웃어보이는 얼굴.


 ㅡ 니가 기다린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예쁘게 써봤는데.
 ㅡ ... .
 ㅡ 봐봐, 여기서 판매 할 수 있는지.


 현준의 말에 수첩을 열어보던 윤지는 노트 한장 한장마다 적혀있는 제 이름을 보며 어수선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얼굴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1. 염치없이 묻는다.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냈어. 회사도 잘 다니고 밥도 잘 먹고. 여기 몇번이고 찾아오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될 거 같아서, 근데 자꾸 생각이 나서-

 2. 염치없이 묻는다.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되게 보고 싶었어. 헤어지자고 얘기하고 가는 그 얼굴 마저도 되게 보고 싶었어.

 3. 염치없이 묻는다. 아픈덴 없어? 환절기라 잔병치레 할 거 같아서- 나는 아픈데 없어, 건강한 거 알잖아.


 염치없이 묻는다는 말 뒤로 그의 진심이 드러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숫자와 그의 편지는 윤지의 손을 점점 느리게 만들었다. 점점 숫자 30과 가까워질 수록 윤지는 시원하게 종이를 넘길 수 없었다. 26, 27, -


 28. 진심으로 말한다. 미안해. 네가 헤어지자고 할 때 왜 그러냐고 한번은 더 물었어야 했는데 입 다물고 있었던 거, 울면서 걸어가는 너 붙잡지 않은 거, 얼른 용기내지 못한 거, 모두 다 미안해.


 29. 진심으로 말한다. 네가 너무 보고싶었어 윤지야.


 30. 윤지야.


 꼭 저를 부르는 듯한 그의 글씨를 보며 윤지는 이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을 다른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얼굴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솟구치던 현준은 이내 가까이 다가가 윤지를 품에 꼭 안았다. 하고 싶은 많은 말을 감춰둔 채, 일정한 손길로 윤지의 등을 토닥이며.


 한참을 울던 윤지는 이내 진정 된 모습을 보이며 현준의 품에서 떨어졌다. 연애를 했던 시간과, 헤어져 지냈던 시간이 뒤섞여 마치 비눗방울처럼 두 사람 사이를 떠다니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른 말 없이 제 옆에 서서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의 발 끝을 가만보던 윤지는 제게 일어 난 지금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가 말했던 것 처럼 저 또한 그를 많이 그리워했고, 보고싶어 했으니까.



 집 앞에 도착해 쉽게 들어가지 못하던 윤지의 손 위로 현준의 손이 겹쳐졌다. 그동안 제가 윤지에게 남겼던 미안함을 지우려는 듯 손을 매만지던 그는 잡은 손을 한번 꼭 잡곤 이내 놓아주었다.



 ㅡ 피곤하겠다, 얼른 들어 가.

 ㅡ ... .

 ㅡ 그리고 오늘 고맙고.

 ㅡ ... .

 ㅡ 윤지야.

 ㅡ ... .

 ㅡ 전화할게.



 제 이름을 부르는 것 으로 끝나있던 30번의 빈칸이 채워진 듯 했다. 진중한 현준의 목소리에 부은 눈으로 시선을 맞추던 윤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ㅡ 내일 전화할게.

 ㅡ ... .



 늦은 시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애써 떼어내며 뒤로 걷던 현준의 등 뒤로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헤어지고 떨어져 지냈던 서로의 시간을 애써 지워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웃는 저를 보며 따라 웃는 윤지를 보니, 모든게 점점 괜찮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왔다.



 깊어가는 밤 속에서 드러난 그의 진심은 하늘 위 별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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