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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07. 2016

twinkle, twinkle!

 하루 내내 너를 만날 생각에 종일 들떠있던 나를 너는 모르겠지. 오늘 하루 나보다 너에게 더 신경을 썼었다고 얘길하면 너는 날 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난 그저 네가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욱이는 어디가고 니가 편집해? 현석의 말에 철중은 웃으며 간이 쇼파를 가르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이미 꿈나라인듯 얼굴 가득 잠에 빠진 진욱의 얼굴을 보며 현석은 혀를 끌끌찼다.



 " 아니 국장님은 쟤 안 짜르고 뭐하시나 몰라, 라디오보다 술이랑 더 친한놈을. "

 " 그건 선배도 마찬, "

 " 야! 그래도 난 후배한텐 편집 안 시킨다. "

 " 차라리 그걸 시키는게 낫지. "



 현석의 목소리에 잠이 깼는지 곧장 대화를 받아치는 진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방송 끝났으면 집으로 가라고, 나한테와서 마누라 노릇 하지말고. 누운 몸을 일으키며 얘길하던 진욱은 여전히 뭉쳐있는 어깨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 밥 먹자. "

 " 밥도 좀 집에가서 먹고, 요즘보면 너 꼭 나랑 결혼 한 거 같아. "

 " 그래, 그랬어도 난 나쁘지 않았을거야. "

 " 선배. "

 " 미친놈. "



 포기한듯한 현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욱과 철중은 동시에 한탄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며칠 전 까지 오전 라디오를 맡고 있었던 현석은 방송 사고로 시말서를 써 낸 채 강제 휴식을 지내는 중 이였다. 그간의 실수로도 모자라 이틀 전 한번의 실수를 더 더함으로써 트리플 크라운을 만들어 낸 탓에.



 " 이번엔 시말서 말고, 반성문을 써 들고 국장실로 가보지. "

 " 안그래도 여기오기전에 국장님한테 갔는데 단번에 킬 당했어. 애교 부릴거면 그대로 돌아나가라해서 말 듣고 그대로 돌아나왔지, 여기로. "

 " 안됐다. "

 " 그래, 니 동정은 밥으로 받을게. 우거지 갈비탕 먹으러 가자. "

 " 목적이 그거였냐? "

 " 아마도. "



 뻔뻔하다 못해 웃기기까지한 현석의 태도에 진욱은 고개를 저었고, 마치 만담이라도 나누는 듯 거침없는 두 남자의 대화에 철중은 눈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뿐이였다. 밥 먹고 하자. 제 어깨를 다독이는 진욱을 따라 일어 선 철중은 본능적으로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오늘은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시간적으로.



 두런히 앉은 세 남자의 앞으로 뚝배기 가득 담긴 우거지 갈비탕이 놓여졌다. 저마다 잘먹겠다는 인사로 수저를 들기가 바쁘게 대화는 줄어들었고, 들려오는 소리라곤 뜨거움에 후후 부는 소리 뿐 이였다.



 " 맞다, 야. "

 " ? "

 " 너 토요일에 소개팅 나가. "

 " 나도 모르는 내 스케줄을 니가 알아? "

 " 알지, 내가 잡았으니까. 너 일 핑계대고 까기만 까, 진짜 까버릴거니까. "

 " 나 그 날, "

 " 너 뭐 없는 거 내가 일주일 전에 이미 확인했거든요. "

 " 이러니까 시말서를 시도때도 없이 쓰지, 제발 공적인 일에나 이렇게 성실하라고. "

 " 됐고, 토요일 7시 에비뉴. 나이는 동갑, 직업은 신경과 의사. "

 " 야- "

 " 보이냐? 철중이 입에서 나오는 부러움? "

 " 뭘 갑자기 소개팅이야. "

 " 갑자기 해줘야 나갈 거 같아서, 얼굴도 예쁜데 마음은 더 예쁘대. "

 " 뻥치시네, 얼굴 예쁜것만 알면서. "

 " 그러게. 예진이가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쁘다고 꼭 강조하라 했는데, 여보 미안해. "



 다시 또 능청스러운 현석의 행동에 진욱과 철중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그릇 담아져있던 갈비탕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금세 불러진 배에 연신 배불러- 라는 말만 하던 현석은 젖힌 고개를 다시 일으키며 진욱과 눈을 마주쳤다. 이번 주 토요일이다, 일곱시 에비뉴. 단호한 현석의 목소리에 진욱은 다른 말 대신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지금 이런 제 행동에 노발대발 할 현석을 알아채며.



 스튜디오로 돌아와 방송을 준비하던 진욱의 앞으로 따듯한 라떼가 놓여졌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진욱은 후배인 혜빈을 확인하며 웃었다.



 " 고오맙다. "

 " 선배 토요일에 소개팅 나가신다면서요? "

 " 현석이 만났냐? "

 " 네, 라디오국에 소문 좀 내래요. 선배 좋아하는 후배들 귀에 다 들어 가게끔. "

 " 진상이네, 그치? "

 "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사실이죠? 커피 맛있게 드세요. "



 인사와 함께 나서는 혜빈을 보며 손을 흔들던 진욱은 생방송 15분을 남겨두고서야 헐레벌떡 뛰어오는 준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우리 디제이 성실함은 맨날 자랑해도 모자라. "

 " 과찬이십니다. 벽보고 손들고 있을까요? "

 " 그랬다간 니 팬들한테 오늘로 죽지싶다, 대본 확인이나 해. "



 진욱의 말에 베시시 웃던 준수는 곧장 자리에 앉아 대본을 손에 쥐었다. 생방송을 앞두고 모두가 숙연해진 시간, 스튜디오 밖에서 다섯 손가락을 천천히 접는 철중을 보며 진욱은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 열두시. 라디오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진욱의 손길에 오늘자 오프닝 멘트를 읽던 준수의 얼굴 위론 금세 편안함이 번져 흘렀다.



 밀려오는 문자를 하나씩 소개하던 준수는 저 이번 주말에 결혼해요! 라고 얘길하는 문자를 소개하며 한껏 부러움을 표했고, 뒤이어 형, 저 오늘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라고 얘길하는 문자를 소개하며 한껏 아쉬움을 표했다.



 두시간동안 이어진 디제이와 청취자들의 수다는 각양각색으로 튀었다. 시끌벅적 하다가도 이내 진지해지고 그런 진지함으로 웃음짓던 시간은 어느새 마지막 인사를 건넬 쯤으로 다가 서 있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내일 또 만나요. 준수의 인사를 끝으로 끝곡이 흐르고 오늘도 무사히, 탈없이 방송을 마친데에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배, 쭈꾸미에 소주 한잔 할까요? 철중의 옆으로 붙어선 작가 재현의 말에 진욱은 관심있는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방송처럼 내일 방송도 무사히, 탈없이 지나 갈 거란게 두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였다. 그래, 가자! 진욱의 말에 철중과 재현은 신난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스튜디오 뒷정리에 들어갔고, 현석을 부르려 핸드폰을 든 진욱은 이내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그를 보며 부러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 너 촉 좋다. "
 " 왜. 어디 가냐? "
 " 어. 애들이 쭈꾸미에 소주 한잔 하자고해서. "
 " 야- 좋다, 딱 좋다. "
 " 너 집에 안 들어가냐? "
 " 예의지. "
 " ? "
 " 한동안 내가 꼴보기 싫을 마누라에 대한 예의. "


 진중한 얼굴로 진중하게 얘기하는 현석의 목소리에 세 남자 사이로 웃음이 돌았다. 새벽 한시에 가까워진 시간, 방송국 근처 쭈꾸미 집에서 열린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 아침 해가 떠도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제가 안녕했어요, 저랑은 미래를 안보려 하는 거 같아서. 얼마 전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다툼으로 헤어진 철중의 말에 세 남자 모두 아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둘이 예뻤는데. 잔에 든 소주를 비워내며 다시금 따르던 재현은 제 앞으로 쭉 비어진 잔들을 보며 소주를 채워 넣었다.


 " 진욱 선배. "
 " 어. "
 " 선배 뒤에 앉은 여자 되게 예뻐요. "
 " 뭐? "
 " 선배 바로 뒤에 앉은 여자, 되게 예쁘다구요. "
 " 그새 또 봤냐? "
 " 이 쪽으로 걸어오길래요. "
 " 하여튼 눈만 밝아. "
 " 저렇게 예쁘면 무슨 생각 들까요? "
 " 취했냐? "
 " 아직요. "


 마치 만담을 나누듯 이어지던 진욱과 재현의 대화를 들으며 헛웃음을 내뱉던 현석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신경을 않은 채, 오로지 술을 마시는 데에만 전념했다. 이모! 여기 소주 두병 더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할 것 없이 시끌시끌한 공간안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목소리 뿐 이였다. 이번엔 소개팅 한 재현의 이야기로 그들의 리그가 다시금 붉어지던 차, 진욱의 발 옆으로 떨어진 핸드폰이 미끄러져 왔다.


 떨어진 핸드폰을 확인하며 주운 진욱이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뒤 쪽에 앉아있던 여자 또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두 사람의 사이는 예고없이 가까워졌다.


 " 아, 죄송합니다. "
 " ..아닙니다, 여기요. "
 " 네, 고맙습니다. "


 먼저 일어나 진욱의 옆으로 선 여자는 고맙다고 얘길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런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인 진욱은 굳이 보지 않아도 제 주위에서 활짝 웃고있을 세 남자가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별 별 얘기가 다 오갔다. 안 나올 수 없는 지난날의 이야기와, 안 나오면 이상한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부풀려진 미래까지. 오늘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만의 리그는 새벽 다섯시가 넘어서야 끝이났고, 인사를 하는건지 선 채로 자는건지 비몽사몽인 세 남자를 한 택시에 태워 보낸 진욱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개는 안되서 다행이라고, 정신이 있어 다행이라고.


 헤어지고 7시간 뒤에 만난 네 남자의 몰골은 말해 뭐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나둘씩 스튜디오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간이 테이블에서 라면 네개에 물을 붓고 있던 재현은 현석과 진욱을 보며 인사와 동시에 다 된 라면을 가르켰다.


 " 아- 마누라가 술이 들어가냐고 그러던데. "
 " 난 꼭 우리 집 해피가 그렇게 말하는 거 같던데, 내 방 입구에 도도하게 앉아서. "
 " 아- 오늘은 해장을 해봤자네요. "


 나란히 이어진 현석과 철중 그리고 재현의 대화를 들으며 국물까지 싹 비워 낸 진욱은 절로 감겨오는 눈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퍼진데다 늘어진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숙취와 춘곤증에 정신을 잃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밤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돌아 온 라디오 생방을 앞두고 속속히 스튜디오로 들어서던 스텝들은 여전히 숙취에 고통받는 네 남자의 얼굴을 보며 저마다 혀를 끌끌찼다. 게다가 생방송이 시작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디제이인 준수는 스튜디오 안에 있는 동물이라곤 남자가 다인데, 이 네 남자에게서 머스크 향이 아닌 숙취의 향이 거하게 흐른다고 우스갯소리로 던지기까지 했으니. 딱히 실수가 난 방송은 아니라 시말서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았지만, 국장님을 향한 애정의 반성문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너 내일이다-! 주말 방송 녹음이 끝난 금요일 저녁,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신난 얼굴로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현석을 보며 진욱은 다른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엔 잘 되서 내년에 결혼해라. "
 " 너보면 결혼이 딱히 좋은 것 같진 않은데. "
 " 무슨 막말을 이리 사실적으로 해? "
 " 잘해라, 세진이한테. "
 " 야, 잘하진 못해도 못하진 않는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
 " 몰라, 나도 몰라. "


 집에나 가자며 밖을 가르키는 현석을 따라 스튜디오를 벗어 난 진욱은 뻐근했던지 목을 이리 저리 돌리며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


 " 내일 방송은 너 대신 내가 잘 할거야, 그러면 너는 뭘 잘해야 될까 욱아? "
 " 소개팅? "
 " 그렇지! "
 " 신났네, 신났어. "


 제 어깨를 밀며 먼저 내리는 진욱을 뒤 쫓아가던 현석은 왜인지 모르게 제가 더 들뜬 모습이였다. 내일 만나고 전화해-! 주차장 가득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던 진욱은 차에 올라 타 시동버튼을 누르며 피곤한 눈을 한번 꾹 눌렀다.


 소개팅 두시간 전에야 잠에서 깬 진욱은 가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저 태평 할 뿐이였다. 사내에서 사고를 쳤을 때 말고는 입을 일 없는 수트를 꺼내 입고, 사내에서 사고를 쳤을 때 말고는 단정할 일 없는 머리를 말끔히 끌어올리고 보니 거울 속 제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약속시간 15분 전, 먼저 가게에 도착한 진욱은 예약 된 자리로 걸음을 옮기며 긴장이 몰려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이 작은 진동을 내비치고, 현석의 이름으로 도착 한 메세지는 긴장한 진욱을 웃게 만들었다.


 [ 좋냐? ]
 [ 싫진 않다. ]


 간결하게 제 마음을 답장하고, 핸드폰을 수트 안 쪽 주머니로 넣던 진욱의 앞으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저- 작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 난 진욱은 제 이름을 얘기하는 여자를 보며 웃어보였다.


 " 안녕하세요, 한지윤입니다. "
 " 안녕하세요. 이진욱입니다. "


 수줍게 인사를 건네며 마주한 두 남녀의 시선은 이내 서로가 낯이 익다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 이런 말 너무 티나긴한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
 " 그러게요, 저도 진욱씨가 낯이 익는데.. . "
 " 어디서 봤죠, 우리. "


 그러며 짙어가던 두 남녀의 시선은 이내 서로를 알아보곤 동시에 웃으며 얘길했다. 아- 쭈꾸미 집!


 " 핸드폰, 맞죠? "
 " 네. 그 때 진욱씨가 주워줬죠. "

 " 와, 신기하다. 그쵸? "



 진욱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지윤은 그러네요- 라고 대답했다. 오늘의 만남이 처음이였지만, 그렇다고 마냥 처음은 아닌 두 사람의 두 눈이 웃음으로 반짝였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빛을 뿜어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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