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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1. 2016

walking through the night

 좋아하는 너를 눈 앞에 두고 나는 어쩌질 못해 망설였다. 마치 비가 올 것 같으나 다시 또 해가 뜰 것 처럼 얄밉게 구는 하늘처럼 나는 그랬다. 게다가 하필이면 약속 장소가 강남역 7번출구 일 건 뭔가 싶었다. 길 한복판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어색하게 나란히 걸은지 십분 쯤 지났을까, 잘 걷던 네가 내 쪽으로 휙 돌아서며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파스타 사서 공원 갈래요? 너의 그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내 눈으로 보인건 활짝 웃는 너의 얼굴 옆으로 바람에 묻은 머리칼이였다. 너는 종종 내게 묻는다. 내가 네게 반한 날을. 그렇지만 나는 쉽게 뱉어 질 그 말을 꽁꽁 숨긴 채 어깨를 으쓱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아니,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만남과 동시에 반했다고 얘길하나. 그것도 홀딱 반해 정신 못차렸다고.


 다른 회사 부장님들도 이럴까- 하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머리속을 지배했다. 네시간 하고도 반이 지난 시간을 보며 볼펜 끝을 깨무는걸로 불만을 표출하던 우진은 이내 마무리를 짓는 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 앞에 앉은 성열에게로 몸을 돌렸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와 같은 꼴로, 저와 같은 기운을 잔뜩 내뱉는 성열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 허무하게 날라가버린 내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나. 아, 가만히 앉아서 말만 들었는데도 피곤해 죽겠네. "
 " 볼펜 좀 그만 깨물어. "
 " 야. 이거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없었어봐. 분노 조절 못해서 나 당장 짤렸을지도 몰라. "
 " 말은 참 잘해. 바로 퇴근 할 거야? "
 " 그래야지. 내가 이럴 줄 알고 옷도 가방도 다 챙겨서 회의실로 간 거 아냐. "
 " 어찌나 현명하신지. 잠깐만 기다려, 가방 가지고 나올테니까. "


 팀실로 들어가는 성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우진은 넓은 유리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제겐 애증의 도시나 다름없는 이 곳을 가만 보다보니 예쁘게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예쁜 걸 혼자만 볼 수 있나 싶어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킨 우진은 제 한 손에 야경을 담아 메세지 목록에서 지원을 찾았다.


 [ 아침의 서울은 참 싫은데 밤의 서울은 참 좋다. ]
 [ 퇴근하니까? ]
 [ 퇴근하고 너 보니까. 밤도 좋은만큼 아침도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우리 언제 결혼해? ]
 [ 우리 결혼해? ]


 되려 제게 묻는 지원의 문자를 보며 우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망설임없이 통화버튼을 꾹 누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ㅡ 다시 한번 말해봐.
 ㅡ 뭘? 아. 우리 결혼하냐고?
 ㅡ 하란다고 또 한다. 야, 그럼 내가 너랑 결혼하지 누구랑 결혼해.
 ㅡ 나도 너랑 할 거야.
 ㅡ 뭐?
 ㅡ 너랑 할 거라고, 그러니까 화내지 말라고.
 ㅡ 나 지금 화내면 안되는 부분이야?
 ㅡ 화 낼게 뭐 있어, 내가 너랑 결혼 안하겠다고 한것도 아닌데.


 말하는 족족 맞는 말만 하는 지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진은 왠지 제가 진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침 팀실에서 나와 손짓하는 성열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우진은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지원의 웃음소리에 목소리를 삐죽거렸다.


 ㅡ 왜 웃어?
 ㅡ 귀여워서, 나 진료 끝났어. 어디서 볼까?
 ㅡ 내가 거기로 가야지.


 한껏 삐졌음에도 우진은 이런 순간이면 당연하게 지원을 배려하곤 했다. 알았어, 기다릴게. 오롯한 지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은 얼굴을 보며 놀리듯 성열은 웃었다.


 ㅡ 졌냐?
 ㅡ 워낙 틀린 말은 안하시니까.
 ㅡ 봐도 봐도 보기 드문 여자야. 얼굴 예뻐, 능력 좋아, 성격 좋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ㅡ 탐내지 마라.
 ㅡ 그래 볼게. 어디로 가냐?
 ㅡ 지원이 회사.
 ㅡ 보자, 앞으로 열두시간 동안은 놓아줄게.
 ㅡ ?
 ㅡ 내일 두시 미팅이라고. 프리랜서로 살고 싶다더니 막상 살아보니 적응이 안돼?
 ㅡ 좀?
 ㅡ 가, 내일 전화할게.
 ㅡ 응.


 큰 걸음으로 걸어가는 성열을 보며 걸음을 뗀 우진은 걸려오는 전화를 확인하며 냅다 받았다.


 ㅡ 어.
 ㅡ 걸어 올 거지? 나 지금 출발할게. 어디 있어?


 어디냐는 지원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우진은 강남역 7번출구! 라고 얘길하며 웃어보였다.


 ㅡ 연애하고 여기서 기다리는 건 또 처음이네.
 ㅡ 그럼 오늘 그거 한번 해보겠다.
 ㅡ 뭐?
 ㅡ 야. 타!


 신났네. 우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던 지원의 얼굴 위로 편한 웃음이 번져갔다. 조금만 기다려, 다와 가. 라고 얘길하는 목소리에 우진의 시선은 도로 위로 향했다. 저 하나만을 위해 달려오고 있을 지원의 차가 어서 빨리 제 시야에 들어서길 바랐다.


 평소 자주가는 한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의 얼굴엔 애써 만들지 않아도 될 표정들이 묻어있었다. 오늘어땠어? 라고 묻는 우진의 말에 지원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원의 표정을 보며 우진은 잘 구워진 고기 한점을 골라 밥 위에 올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당연하게 들려오는 지원의 하루를 들으며 웃었다가, 시선을 맞췄다가, 다시 또 고기를 올려주었다가, 제게 주는 쌈을 받아먹었다가- 반복되지만 지루하지않은 그녀의 순간 순간이 우진의 눈 앞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안 먹는다고 해놓곤 결국엔 소주 한병을 시원하게 마셔버린 지원을 태워 집으로 향하던 우진은 지금 제 옆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이 든 지원을 보다 슬몃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병이면 거뜬하지! 라고 얘기하던 방금 전 그녀가 생각나서.


 맑아도 너무 맑은 오늘은 따뜻한 햇살이 곳곳에 묻어나있었다. 오전 회진이 끝나고, 시원한 커피를 손에 쥔 채 옥상으로 올라 온 지원은 핸드폰을 꺼내 우진의 번호를 꾹 눌렀다.


 ㅡ 오늘 날씨 너어무 좋아.
 ㅡ 속은?
 ㅡ 왜?
 ㅡ 모른 척 하기엔 내가 어제의 너를 너무 잘 아는데.
 ㅡ 나 얼마나 마셨어?
 ㅡ 소주 한병.
 ㅡ 한병? 나 혼자?
 ㅡ 한병. 너 혼자.


 왠지 눈 앞에 우진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덤덤히 제게 얘길하는 그 목소리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딴데서 그렇게 먹으면 죽는다- 라고.


 성열의 전화를 받고 목동으로 향하던 우진의 전화가 다시금 요란스레 울렸다. 왜! 2분도 안되서 다시금 걸려 온 성열의 전화에 우진의 목소리는 앙탈로 가득했다.


 " 클라이언트가 미팅 깠어. "
 " 깠, 지가 오늘 보재놓고 까긴 왜 까! "
 "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다는데? "
 " 타이밍봐라, 나 지금 신호받고 꺾으면 끝인데. "
 " 뭐해, 이차선으로 깜빡이 안 넣고? "
 " 아. 그 집은 갑질을 해도 하루 걸러 하루 하니까 숨이 턱턱 막혀. "
 " 어쨌든 미팅 내일이야, 내일 두시. "
 " 알았어. "


 통화를 끊고 난 우진의 얼굴엔 짜증과 이유 모를 기쁨이 번져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띄어냈다. 세시에 가까워진 시간, 지금 시간이라면 지원 또한 병원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 이였다. 신호를 받은 틈을 타 전화 대신 메세지로 제 상황을 알린 우진은 어딜가야하나 고민하다 말고 유턴 신호를 받자마자 경쾌히 핸들을 꺾었다. 오랜만에 예쁜짓이나 해야겠다~ 라며.



 고작 이틀 휴가지만 지금 지원에게 있어 이틀은 20일과도 같았다. 선배-! 어디가세요-! 장난스레 제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을 보며 웃음진 얼굴로 손을 흔들던 지원은 실로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길 이였다. 차에 올라 타 우진에게 전화를 걸며 주차장을 벗어나던 지원은 왜인지 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가웃거렸다.


 ㅡ 무슨 일 있어?
 ㅡ 오랜만에 예쁜 짓 좀 하는 중이지. 저녁 안 먹었지? 기다려. 내가,
 ㅡ 나 퇴근해, 오늘부터 이틀 휴가야.
 ㅡ 어?
 ㅡ 뭘 그렇게 놀라? 나 집에가서 씻고 전화할게.
 ㅡ 안 그래도 돼.
 ㅡ 어?
 ㅡ 나 지금 자기 집이야.
 ㅡ 어? 집에서 뭐해?
 ㅡ 오랜만에 예쁜 짓 좀 하는 중이라고 두 번째 말하고 있지.
 ㅡ 아- 그게 그 뜻이였어?
 ㅡ 어. 근데 나 지금 바빠, 와서 봐. 끊어!


 서둘러 끊긴 우진의 전화를 보며 지금 그에게 일어나고 있을 일들을 유추해보던 지원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져갔다. 서툰 솜씨로 소불고기와 봉골레 파스타 두개를 요란스레 만들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은 곧잘 멈추질 못했다.


 " 왔어? "
 " 응. 아- 이래서 다들 결혼하는구나. 나 지금 기분 되게 이상해, 좋은데 부끄럽고 막 그래. "
 " 지금 내 기분은 정신없어. 일단, 가서 씻고 와. "


 두 음식을 한다는데있어 이렇게나 바쁠 일 인지, 혼자 정신없는 우진을 가만보던 지원의 얼굴 위론 다시금 웃음이 맴돌았다. 이렇게 귀여울 일이야? 사랑이 가득 묻은 목소리가 둘 사이에 맴돌고, 우진의 볼 위로 지원의 입술이 짧게 닿곤 떨어졌다.


 오랜만에 오붓하게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였다.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나니 나른해진 몸은 감출 수 없었다. 나란히 와인을 들고 서로에게 기대있는 지금이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보고있던 영화에서 시선을 떼어 우진에게로 향한 지원은 갑작스레 변한 오늘을 물었다.


 " 근데 왜 갑자기 시간이 난 거야? "
 " 약속시간 다 되서 클라이언트가 일 생겼다고 약속을 취소해버렸어. "
 " 열 좀 받았겠다. "
 " 나름 잘 풀었어, 이 입으로 다 들어 간 요리로. "


 그러며 제 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는 우진의 입술에 지원은 웃으며 어깨를 기대었다.


  " 오늘 수술한 환자 어머니가 날 붙잡고 그러시는거야. 의사선생님, 너무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 내가 죽어서도 이 은혜는 절대 안 잊을게. 죽어서도 꼭 갚을게. 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엉엉 우시는거야. 하나뿐인 우리 딸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


 제 어깨에 기댄 지원의 고개가 일정하게 흔들림을 느끼며 우진은 다른 말 대신 손을 꼭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잦지는 않은 이 상황을 마주 할 때면 지원은 언제나 우진을 찾았다. 거짓없이, 보탬없이, 오롯이 지금의 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부턴가 우진 하나면 되었다.



 " 분명 며칠전만해도 이렇게 살아서 뭐해- 라고 자기한테 한탄하고 그랬는데, 오늘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얘길하는 어머니 목소리 들으니까 내가 잘했구나 싶은거야. 요줌 스스로 많이 물었었거든. 의사라는 직업이 내게 맞는건지 하고- "
 " 그 일로 대답을 들었네. "
 " 응.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 좋은것도 아니고 싫은것도 아니고. 이 기분 뭔지 알지? "


 고개를 들어 저와 시선을 맞추는 지원을 보며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그 속에선 비슷한 일도 일어나지만 직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대부분이 다른 일이며, 그런 둘에게 다행인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안아 줄 수 있다는 거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말에 새로운 대답을 줄 수 있게 되니까.


 " 의사하길 잘했지? "


 우진의 말에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러나 저러나 제가 제일 자신 있는 순간은 의사라는 직업을 입었을 경우라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이였다.



 " 이래서 다들 연애하는구나. "

 " 왜? "

 " 진심으로 나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게 눈에 보여서. "

 " 내 눈이 그랬어? "

 " 그랬어. "



 눈 속에 비친 저를 확인하려는 듯 어디봐- 라고 얘기하며 지원의 두 볼을 감싼 우진의 두 눈엔 장난이 가득 묻어있었다.



 서로를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었다. 인연으로 번진 둘 사이에는 늘 웃음과 울음이 공존했고, 모든 건 사랑으로 감싸졌다. 영롱한 달빛이 찾아 온 그들의 방안으로 은은함이 번져갔다. 오늘도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따듯한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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