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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한량 Oct 15. 2020

(1) 난생처음 꽃순이가 되었다

2.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1)

보통 졸업식 같은 곳에서 축하 꽃다발을 건네주는 후배들을 지칭해서 꽃돌이, 꽃순이라고 불렀습니다(지금도 그런가요...?). 행사장에서의 꽃 전달 도우미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죠.

저는 학교 선배들과 친한 편이 아니었어서 졸업식에서 꽃순이를 한 경험은 없습니다만, 어느 행사장에서 난생처음 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1) 난생처음 꽃순이가 되었다


저는 대학 때부터 아마추어 만화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상에서 소개해주는 비영리 회사(라고 하기엔 너무 소규모였지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결국 이런 일들은 제가 훗날 커리어를 쌓는 데에 든든한 초석이 되었죠)


대표님과는 대학 졸업 후에도 간간이 연락을 이어가며 필요한 업무에 도움을 드리고 있었는데요, 2000년 초반, 그곳에서 아마추어 만화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을 Daum 만화와 함께 진행했고, 공모전의 마무리로 시상식이 남아있었습니다.


대표님이 일당백으로 행사 준비를 하셨지만, 큰 비용을 쓸 수 없는 행사였기 때문에 자원과 인력 모두 턱 없이 부족했고, 결국 시상식 준비 막바지에 저에게 작은 역할 하나를 부탁하셨어요. 

네, 바로 무대 위에서 수상자들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는 꽃순이 역할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대표님도 저에게 그 일을 부탁하면서 '단순히 상장과 꽃만 전달하면 되는 일'이니, 정장만 갖춰 입고 와달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시상식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대표님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시상식이 진행됐던 거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식은 다행히 별 탈 없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장수여식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저에게 대표님은 안도와 만족감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순서에 맞춰서 처리할 수가 있었어?!



시상식에서는 대부분 시상자가 첫 수여하는 상장만 내용의 전체를 읽어주고, 나머진 '내용은 같습니다' 식으로 시상 낭독을 갈음합니다. 시상의 맨 끝이 가장 큰 상이면, 그쯤에서 한번 더 읽어주긴 하죠. 


하지만 대표님이 예상했던 절차와는 달리, 시상을 하시는 초대 손님이 별다른 덧붙임 말없이 수상자의 이름과 수상명만 읽어주고 빠르게 상장과 꽃다발을 수여하시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분이 시상하시며 내용을 읽는 동안 제가 여유롭게 순서에 맞춰 상장과 꽃다발을 전달드리면 되는 거였지만, 실제로는 상장과 꽃다발이 놓여있던 무대 끝에서 중앙까지 거의 달리듯 움직여야 했습니다. 


게다가 상장은 모두 고급스러운 덮개가 덮여있던 상태로, 상장의 내용(수상 내용과 수상자의 이름)을 확인해서 시상자에게 전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이런 식의 덮개를 열어서 확인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장의 덮개가 덮여있었음에도 상장은 모두 제 주인에게 문제없이 전달되었고, 시상식은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그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궁금하셨던 거죠.


사실 제가 한 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중요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준비를 해두었던 덕이었죠. 

저는 시상식장에 도착한 후, 행사 진행 시 제가 어떻게 상장과 꽃다발을 전달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면서 필요한 대처를 미리 정리했었습니다.


- 무대 위에서 상장과 꽃다발을 책임지는 건 나 혼자다.

- 각 수상자에게 상장과 꽃다발은 한 번에 전달되어야 한다. 왔다 갔다 하기엔 동선이 멀다.

- 상장과 꽃다발을 한 번에 옮기기 위해서는 상장의 덮개가 닫힌 상태 그대로, 그 위에 꽃다발을 놓아서 옮겨야 한다.

- 그러면 상장의 덮개를 열어서 수상자의 이름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저기까지 생각하자, 상장과 꽃다발이 시상 순서대로 정리가 되어있는 편이 저에게 훨씬 수월하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미리 시상 순서에 맞춰서 상장을 쌓아두었고(보통 맨 하위 상부터 시상이 되니까 가장 높은 상의 상장이 맨 아래로 가도록), 꽃다발도 순서에 맞춰 나란히 놓아두었습니다.


그 덕에, 시상자의 빠른 시상에도 저는 당황하지 않고 순서만 맞춰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쉽고, 그런 경우 티가 많이 나는 오프라인에서는 특히나 시뮬레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한 마이크가 고장 났을 경우(생각보다 많이 발생합니다. 여분의 마이크를 꼭 준비하고 무선 마이크는 건전지 준비가 필수입니다), 연사가 늦을 경우(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동영상이라도), 야외 행사인데 비가 올 경우(우산까진 아니더라도 천 원짜리 우비가 있습니다) 등등,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해보고 그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완성도 있게 진행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온라인(디지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플랫폼을 기획한다거나, 심지어 아주 작은 캠페인 페이지 하나를 만들더라도,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인터페이스가 실제로 먹히는지, 사용성과 접근성이 좋은지, 거기서 경험하게 되는 사용자 경험은 문제가 없을지, 실제 구현 전에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뮬레이션해보는 겁니다.


제가 한 때 좋아했던 서비스가 있는데요, 파워포인트처럼 UI(User Interface)를 작업할 수 있고 이를 쉽게 Mock up 해서 UX(User Experirence)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플랫폼 오븐(Oven)입니다. 


https://ovenapp.io/

위 이미지는 제가 5년 전에 애플리케이션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서(창업하고 싶어서;) 작업해봤던 화면인데요, 따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지 않아도 각 버튼에 편리하게 링크를 걸어서 페이지의 변경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 사용자가 경험할 환경을 미리 테스트해보고 불필요한 루트를 제거한다거나 빠진 정보를 추가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런 툴이 없었던 시절에는 파워포인트 화면에 그러진 기획서를 출력 후 잘라서 종이놀이하듯이 시뮬레이션했던 적도 있습니다. (쿨럭;;)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좋은 툴과 방법들이 많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잘 활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시뮬레이션은 나중의 삽질을 제거해줍니다. 

가급적 미리미리 시뮬레이션해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세요!



저의 어설픈 시뮬레이션 경험을 끝내고, 다음엔 명사의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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