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2)
사실 제가 오프라인에서의 시뮬레이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느낀 건, 10년 전에 세스 고딘의 강연을 직접 들었을 때 느낀 점 때문입니다.
(2) 대가도 시뮬레이션하는데, 내가 뭐라고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로 글로벌한 마케팅 전도사로 명성을 날리던 세스 고진이 당시 제가 몸담고 있던 국제 NGO 연례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참석했습니다.
당연히 큰 기대를 했었죠. 그의 말(영어)을 제가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느냐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 접어두고, 실제 그를 만나서 육성으로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연 시간이 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작고 마른, (모두가 알다시피) 민머리를 반짝이는 세스 고딘이 무대에 경쾌하게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가 준비해온 발표자료(아마도 파워포인트였을... - 여기서 '아마도' 중요합니다)가 띄워졌죠.
밝은 미소와 함께 강연을 시작한 그는 똑떨어지는 말투로 활기차게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그가 그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강연이 진행되면서 저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다른 곳에 쏠렸거든요.
바로 그가 강연을 진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며 발표 자료를 확인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의 말에 딱딱 맞춰서 자료의 페이지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참석자들이 여기저기 돌아보며, 누군가 세스 고딘의 발표자료를 대신 넘겨주나 찾는 눈치였죠.
그러나 그런 보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분명 포인터로 보이는 작은 리모컨이 들려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가 넘기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한 번도 오류가 나지 않고 진행될 수가 있었던 걸까요?!)
너무도 부드럽게 페이지 변경이 진행되어서, 저는 그 발표자료가 혹시 '동영상'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에 '아마도 파워포인트'라고 쓴 거예요.)
요즘 많이 사용하는 무대 위 모니터를 생각하고 계신 분도 있겠죠? 단언컨데, 정말로 그것도 없었습니다.
세스 고딘은 자신의 뒤에 펼쳐지는 발표 자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자신의 말을 전달했습니다. 그건 마치 한 편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가 마지막 문장을 힘주어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을 때, 청중은 커다란 박수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그의 강연도 강연이지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으면 이 정도까지 모든 리듬과 시간을 맞춰서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의 연습은 모든 과정에서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이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는 '연습'이라기보다는, 같은 내용의 강연을 워낙 많은 곳에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혀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 모두가 시뮬레이션이고, 거기서 나온 오류에 대한 개선사항은 계속 반영되어 업그레이드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정말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한다는 걸, 후의 다른 경험들에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강연장에서 만난 구루들은 모두 쉬운 언어로, 정해진 시간에 맞게, 더듬거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발표를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저 요소들을 모두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바빠서 연습하거나 시뮬레이션할 시간이 없다고요?
당신이 과연 세스 고딘보다 바쁠까요?
+ 저도 그처럼 발표해보고 싶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습니다만, 정말 어렵습니다... 성공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대사 외워서 연기하시는 연기자 분들 존경합니다.)
(보너스) 대가도 칭찬은 좋아한다.
세스 고딘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냥 넘어갈 순 없었죠.
당연히 책을 가져가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보랏빛 소가 온다>였기 때문에 'Moo!'라고 적어준 세스 고딘의 사인.
실제 사인은 Seth의 필기체를 활용해서 정말 심플하게 쓰시더군요.
저 때 한국판 책은 처음 보셨던지, 책 앞쪽에 사진 자료(우리는 세스 고딘이 이야기한 미국 프랜차이즈들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한국 출판사에서 특별히 자료사진들을 넣어놨죠)를 보고 재미있어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저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일개 독자의 말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것 같지만, 제 경험으로는 대가들도 칭찬을 좋아합니다. 다른 나라 독자가 해주면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 연구가들에겐 약간의 애정공세를 퍼붓는 경향이 있는데요(그냥 제 맘을 표현하고 싶은 팬심이랄까;), 운이 좋게도 그런 식으로 그분들의 사인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경험이 좀 있습니다.
이건 <괴짜경제학>으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의 스티븐 레빗 교수님에게서 받은 사인북이에요.
사실 저는 <괴짜경제학>을 읽은 후, 공부(연구)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석사논문 맨 앞장의 '감사의 말'에 스티븐 레빗 교수님까지 언급한 덕후입니다.
그러다보니, 논문 인쇄까지 마쳤을 때, '당신 덕분에 이렇게 공부를 시작했고 마무리했다, 언젠가 당신에게 배우러 가고 싶다'고 연락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논문과 함께 <괴짜경제학> 한국 책, 그리고 작은 선물(아마 녹차 세트였던 듯)을 패키지로 해서 무작정 시카고 대학의 교수님 연구실로 보냈죠. 답이 올 거란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그 기대가 0% 였다고는 못하겠어요. 거절당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10% 쯤은 마음 속으로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혹시 폭탄으로 오해할까 싶어서(ㅋㅋ) 대학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교수님 이메일로도 이러저러한 것을 보냈으니 한번 확인해달라고 메일을 썼습니다. 하지만 회신이 없어서 잊혔나 싶었을 때쯤... 갑자기 메일 회신을 받게 되죠!
'언제 보낸 거지? 못 받은 것 같은데?'
저는 재빨리 보낸 날짜와 어떤 형태의 패키지인지를 설명하는 이메일을 다시 보냈고, 교수님은 소포들 속에 파묻혀있던 걸 찾아내셨다며 회신을 주셨어요. 그리고 고맙다며 사인북을 꼭 보내주겠다고 하셨죠.
그리고 얼마 후... 저렇게 제가 보냈던 <괴짜경제학>과 함께, <슈퍼 괴짜경제학>의 컬러 영문 버전까지 보내주셔서 정말 한동안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연락은 되지 않았다는...)
그래도 교수님이 직접 'One of my most endearing fans'라고 적어주신 게 어찌나 감동적인지. 지금도 다시보니 너무나 좋네요.
<디지털 네이티브>를 쓴 돈 탭스콧도 제가 꽤나 좋아하는 비저너리신데요, 2012년에 서울디지털포럼에 강연자로 오셨을 때 새로운 책 <매크로 위키노믹스> 프로모션 저자 사인회를 했었어요. 이때도 맨 앞으로 튀어나가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사인 메시지를 작성하실 땐, 제가 일하던 NGO의 이름을 보고 특별히 Save Ko-Children이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이런 거 자잘하게 감동스럽죠.)
나중에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설명한 간단한 일러스트레이션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셨길래, 제가 한글 자막 입혀서 만들면 안 되겠냐고 메일을 드려서 얼떨결에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세계관의 초석이 되었다는 <기술의 충격>을 쓴 와이어드 수석편집장 케빈 켈리 씨도 같은 행사로 내한 강연을 하셨어요. 당시 그의 강연을 듣고 상당히 충격을 받아서(레벨이 다른 지성의 느낌), 어려워 보였지만 일단 그의 책을 샀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메일을 보냈는데, 간단하지만 친히 답장을 보내주셔서 또 한껏 흥분했었습니다.
좋아하는, 존경하는 분이 있나요?
그렇다면 마음을 표현하세요. 칭찬은 대가들도 당신에게 미소짓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