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상담심리학 대학원 수업에서,
관계정의를 하지 않고 유사연애를 하는 커플에 대한 케이스를 보다가
교수님께서 " 이 사람 선수네 선수! " 라고 농담하셨다.
도대체 우리 사이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건지 헷갈리게 하면서도 곤란할 땐 여유롭게 빠져나가는 그럼 사람을 사람들은 연애의 '선수'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문득, 사실은 그건 선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관계의 하수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연애상담으로 찾아온 내담자 호문씨도 그랬다.
호문씨는 헤어진지 벌써 반 년 가까이 흐른 여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일부러 다른 사람과 데이트도 많이 해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계속 그 사람에게 미련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늦었을지언정 관계회복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기 많은 호문씨에게 유독 그 사람이 특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할 즈음 그가 말했다. "잊혀지지 않아요. 별 거 아닌 일에도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던 사람이에요."
그동안 호문씨에게 연애는 재고, 밀어내고, 누가 얼마나 더 좋아하는지 힘을 겨루고, 좋아도 좋지 않은 척을 해야하는, 지고 이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호문씨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호문씨를 오롯하게 아끼고 좋아하는, 호문씨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호문씨는 그게 고마워서, 그 사람 앞에 있을 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전의 연애방식이 익숙한 버릇이 되어버려서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가보다. 호문씨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처럼 자신도 그 사람에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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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애착에 관해 연구하는 Helen Fisher는 'TED : 기술이 사랑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유'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 제가 매년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요.
당신이 원하는 (연인의) 조건은 뭡니까?"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매년 조건들이 까다롭게 늘어나고 있는걸까? 예상했다.
하지만 Helen Fisher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 97%가 넘는 응답자들이 원하는 건 기본적으로 똑같아요.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
숨기는 것 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
함께 하는 시간이 재미있기도 하고,
날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
그리고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을 원하거든요.
이런 건 한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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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다양한 이름이 있다. 그리고 사랑과 닮았지만 지나고보면 사랑이 아니었던 것들도 분명 있다.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은 사람을 더 크게 움직이고 반응하게 한다. 사람은 행복할 때 보다 고통스러울 때 그 감정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게 되면 - 이를테면 시간이 흐른 뒤에 - 어떤 관계들은, 아 그 때 나 똥 밟았구나, 싶으면서 침을 퉤 뱉기도 하고 또 어떤 관계들은, 정말 소중했던 걸 그 땐 몰랐구나, 하고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연애를 잘하고 싶다면 어떻게 누군가를 흔들고 불안하게 하고 자극하는 방법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게다가 이런 방식의 관계는 수명이 짧고 끝이 안좋다.)
자신과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는 법,
갈등을 대화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사는 법,
호문씨의 잊혀지지 않는다던 말처럼
나와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는 법,
Helen Fisher의 연구결과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함께 있음이 혼자보다 더 가치있도록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같이 품어주는 법,
등을 배우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도 성장한다.
진짜 연애의 고수는 같이 자라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일테다. 그런 사람의 존재는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기 어렵다. 그 자체로 특별해지고 시간이 지나도 오래 소중한 사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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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상담 에피소드는 가명을 사용하고 재구성해서 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