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가까이 하는 이유
나는 오늘도, 내 인생 멘토님을 만나러 방구석 책장에 놓여있던 철학책에 손을 뻗었다. 책 안에 모셔둔 나의 멘토들(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마르쿠스, 애정하는 김영민 교수님까지)은 내가 언제 찾더라도 너그러이 마음을 내주시니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끔 상상하곤 한다. MBTI S(S는 감각형의 성향을 의미하며 반대인 N이 상상을 즐겨한다)가 80%이상인 내가 상상을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런 내가 가끔 하는 상상.
현실의 난관에 직면했을 때 혹은 내가 정답을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주머니에서 소크라테스가 나와서 해답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에 불과하기에 오늘도 책을 펼쳐서 현명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언젠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책으로 점괘보는 방법을 보았다.
내가 원하는 책 한 권을 두고, 손길이 가는 아무페이지나 펼쳤을 때, 그곳에 적힌 글이 오늘의 점괘가 된다는 것이다. 해석하면, 책 안의 그들이 설파하고자 하는 모든 말들이 우리 인생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이 방법이 너무 좋은 점괘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 또한 나만의 점괘책을 만들었다. 나의 점괘책은 명상록이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내 머릿속에 있는 해답보다는 현명할 것 같았다.
나는 철학책에 입문할 때, 쇼펜하우어를 가장 먼저 만났다. 염세주의, 비관주의를 표상하는 철학자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진심을 다해 들여다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행복하고 싶어했는지 알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과잉에서 오는 권태와 결핍에서 오는 고통사이를 끊임없이 진자운동하는 추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니 일시적일 뿐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행복의 ‘영원’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일시적인 순간의 행복을 더 많은 빈도와 더 큰 강도로 느끼는 것이 행복의 열쇠가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비관적인 생각에 빠질 때면, 다급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를 펼쳐 그에게서 선용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다. 행복은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김영민 교수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가 저술한 책의 파격적인 이 제목만으로, 나를 끌어당기셨다.
눈뜨자마자 죽음을 생각하라니 너무 극단적인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물론 나도 그랬으니)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만큼 적절한 제목이 있었을까 싶다.
‘죽음’앞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어떠한 갈망도 부질없는 것이 되기에,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좀 더 수월하게 느껴진다는 것. 이 가르침은 내가 하루하루를 더 살고싶게 만들었다.
마르쿠스 또한 강조하는 바가 같았는데, 죽음을 가까이하면 생존이 조금 더 쉬워진다는 역설적이고도 천재적인 발상이다.
통금이 있으면 주어진 시간동안 좀 더 열심히 놀게 되는 것.
시험기간 후의 휴식이 달콤한 것.
5일의 출근 끝에 맞이한 주말이 소중한 것.
금식하다가 밥을 먹었을 때 꿀맛이 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유한함이 주는 행복으로 설명된다. 죽음 또한 생존의 유한함이 되기 때문에. ‘죽음’의 키워드는 ’생존‘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외에, 김영민 저자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의 유머가 완전히 내스타일임을 고무시켰다. 진지한 말투에 녹여든 유쾌함이 너무 매력적이라 추천하고 싶다.
인생은 허무하니까.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게 아니니까 쓸데없는 열망과 기대에 빠져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이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생에서 ‘철학’을 고리타분한 카테고리로 분류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각박한 시대상에 놓여진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들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철학이 역사로 남은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보다 훨씬 이전에, 그들이 수많은 문제를 극복하고 터득해온 삶의 지침서를 거절할 바보같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멍청한 일을 저지르고 찾더라도, 그들은 늘 한결같은 태도로 우리가 선용할 말들을 건네준다. ’철학‘이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소크라테스를 내가 필요할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내는 작은 인형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내 상상 속에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