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은 감상용, 나의 인생은 주연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화면을 넘기던 중, 한 여성이 인생 상담을 하는 영상 앞에 손가락이 멈췄다.
그 여자는 화면 넘어 아주 담백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 ‘아, 너무 멋지다! 혹은 예쁘다!’ 감탄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지 않느냐고.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질투하고 시기하는 감정으로 자신과 비교하면서 갉아먹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있는 그대로 그 사람들을 존중하고 멋있게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냐는 것이었다.
분명 다수의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방구석에 앉아 폰으로 바라보던 나에게는, 오로지 화면 속 그녀의 대화 상대가 나 하나뿐이었으므로 나를 많이 아껴주는 언니가 내 손을 잡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SNS에 비춰지는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인생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나를 비교하는 것과 같으므로, 짧은 영상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므로.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그 영상은 허상일 수도 있다.
SNS라는 장치에서는 누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마련이다. 화면 너머로, 그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행을 숨겨 두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이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겉으로 드러내느냐 숨기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믿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과 슬픔, 결핍의 이유가 다를 수는 있어도 완벽한 존재로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세상에 쌍둥이조차 완벽하게 같은 존재가 없으니(이건 내가 쌍둥이기에 더욱 자부함), 사람은 모두가 서로에게 상대적인 존재다. 상대적이라는 건, 각자가 가진 모든 것들에 있어서 남들보다 더 하기도, 덜 하기도 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차이에서 부족함을 찾는다. 결국 사람들은, 그 부족함을 결핍으로 느끼고 불행의 씨앗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부러워하는 그 어떤 사람도, 어떤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또 결핍을 느끼고 있으니 다른 누군가와의 비교로 오는 불행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고의 전환뿐이다. 누가 더 불행을 피하고,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느냐 이것이 이 숙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가진 결핍이 나에게는 충족된 능력일 수 있고, 나의 부족함은 누군가의 강점이 된다. 세상은 아주 공정해서 모두에게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고루 준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요즘의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가진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원래부터 있었으나 주목하지 못했던 나의 장점들과 능력들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나라는 사람이 더 풍족해졌다.
남들의 인생과 비교해서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유튜버가 말했듯, 영화 속의 멋진 주인공을 마주할 때처럼 그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얻어오면 그만이다.
그들로부터 닮을 수 있는 점이 무엇인지, 그들처럼 나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찾아내 주어야 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감상할 뿐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영화는 내가 주인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