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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뜨거운 청춘, 우리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 나이스한 교사인 척, 속으론 욱 ep.5

by 사랑의 생존자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에세이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여러 사례를 종합해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 이번 화는 1편〈열다섯 불타는 청춘,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의 후속편입니다. 먼저 보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_^)




“자, 이 사료 해석해볼 사람?”

初王爲舍人 與一女子私通 女謂王曰

“我嘗與他人通 其男根短小 願見君之長短.”

王卽現之.

女曰

“大而長矣 可以爲國君.”


졸음이 밀려오는 5교시 역사 시간,

온통 한자로 빼곡한 화면 앞에서

아이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에이, 선생님. 저걸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시험에 나와요?”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교실 곳곳에 터져 나왔다.


“시험에 나오진 않아. 대신 아주 재밌는 이야기라 가져왔단다.”


그제야 아이들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선생님한테나 재밌겠죠. 한두 번 속아봤나.’


“이건 『삼국사기』 지증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야.

왕이 되기 전, 한 여인과 하룻밤을 보냈대.”


순간, 졸음이 가득했던 교실이 꿈틀거렸다.


“그 여인이 지증왕의 남근을 보고 말했지.

크고 길구나. 이 나라의 왕이 될 만하다!”


“야, 남근이 뭐야?”

“그… 그거잖아.”

“선생님, 지증왕 변태였어요?”


교실은 키득거림으로 들썩였다.

나는 웃음을 삼키며 정색했다.


“변태가 아니라, 당시엔 남자의 생식기인 ‘남근’이 힘과 왕위의 상징이었어. 자, 여기서부터 시험에 나온다. 집중!”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졸릴 때는 역시, 야한 이야기만큼 좋은 각성제가 없지.

지증왕 덕분에 오늘 5교시도 무사히 넘겼다.




“선생님, 상담 가능할까요?”


종례를 마치고 아이들이 나간 뒤, 소연이가 다가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그러고보니 아까 지증왕이야기로 다들 키득거릴 때도 혼자 심각한 얼굴이던 게 생각났다.

평소 잘 웃고 밝은 아이인데, 오늘은 좀 달랐다.


“선생님, 진짜 비밀 보장해주실 거죠?”


소연이는 몇 번을 확인한 끝에

휴대폰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화면엔 남자친구 태웅이와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둘은 우리 학교에서 유명한 장기 커플.

작년 중2부터 사귀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다.


처음엔 단순한 사랑 고백이었다.

그런데 점점 문자 말끝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너만 보면 나는…”

“너 생각하면서 어젯밤엔…”


왕성한 열여섯의 호르몬이 문자 사이를 활보하고 있었다.

자기 남성성을 소연이 앞에서 뽐내고 싶었던 걸까.

태웅이는 자기 ‘남근’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증왕의 후예, 서태웅.

너도 왕이 되고 싶었니.


“처음엔 그냥 웃겼는데요… 요즘은 좀 불편해요.”


“싫다고 말해봤어?”


“…아직은요.”


태웅이의 날것 같은 사랑의 표현은 아마 문자에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1년이 넘은 중학생의 연애라면, 스킨십의 진도 역시 중요한 문제니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신중히 입을 뗐다.


“소연아, 연애도 우정이랑 같아.

친구가 싫다는데 계속 하면 관계가 깨지잖아.

연애도 그래.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돼.”


소연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태웅이가 기분 나빠서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하죠?”


‘그딴 놈이랑은 단박에 헤어져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나는 나이스한 교사니까….

대신 최대한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진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야.

선을 그었는데 그걸 밟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지.”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소연아, 남자는 많단다.

선생님은 네가 참 아까워.”


진심이었다.

태웅이에겐 미안하지만,

소연아— 나는 네가 너무 아깝다.


소연이는 그런 날 보며 수줍게 웃었다.

햇살이 묻은 그 어여쁜 미소를 보자 왜 태웅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요즘 아이들의 연애는 참 빠르다.

그리고 참 솔직하다.


자유연애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이제는 연애도 하나의 스펙이 된 시대다.

예쁘고 잘생기면 연애의 시작은 쉽다.

하지만 오래 가려면 눈치와 배려,

그리고 공감 같은 고지능적인 감정 기술이 필요하다.


그건 책으로 배워지지 않는다.

직접 부딪치고, 상처받고,

울고불고 해봐야 조금씩 는다.

그러니 연애도 수학처럼

선행학습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젠 마냥 농담 같지 않다.


그럼에도,

“십 대 때부터 연애해도 되나요?”

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학교 현장에서 본 십대의 연애는 인간관계라는 능력치로 보면 아직 초보 수준이다. 하지만, 스킨십의 속도만큼은 어른을 능가하기도 한다.


들끓는 호르몬,

덜 여문 전두엽,

금기에서 오는 호기심,

인터넷이 퍼뜨린 과잉 정보까지 —


마음은 미숙한데,

몸만 너무 빨리 자라버렸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사연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아들이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는데 밖에서 몰래 하는 게 불편하다며 “차라리 집을 비워달라”고 부모에게 요구했다. 아버지는 “어차피 할 거라면 안전하게 하라”고 했고,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을 잠을 설쳤다고 했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교실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아니,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앞서 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니가 미쳤구나, 미성년자가 어딜!”

하고 호통쳤다간 아이 마음이 문을 닫을 게 뻔하고,

그렇다고 서양 부모들처럼

“집으로 와서 하렴. 아참! 콘돔은 챙겼지?”

라고 쿨하게 말할 여유도 없다.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고작 몇십 년 차이일 텐데, 부모 세대의 학창시절과 지금 아이들의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전엔 학교에서의 연애가 특별한 몇몇의 이야기였고, 몰래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에도 가슴이 쿵쾅대던 시절이었다.


이젠 다르다.

연애를 안 하면 ‘모솔’이라 놀림받고,

친구끼리 피임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의 진도를 상의한다.


부모가 아는 세상은 이미 낡았고,

내가 겪어본 일들이 이제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정답이 되지 못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사실 정답은 없다.

혹여 있다 해도, 아이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에겐 “절대 안 돼”가 답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아이에겐 “그래, 네 마음은 이해해”가 답일 수도 있다.


그러니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이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

아이와 ‘열린 대화’를 나누는 일,

그게 유일한 해법이다.


문제는, 그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 부모에게 참 어렵다는 거다.


십대의 사랑과 성이라니,

대부분의 부모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뭘 알아야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

그게 제일 어렵다.


“엄마도, 아빠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

우리 같이 찾아보자.”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모른다는 민망함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배우는 것—

그게 진짜 대화의 시작이다.


십대가 된 아이에게 부모의 역할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건 상대방도 괜찮았을까?”

“그럴 때는 네 기분이 어땠어?”

이런 질문들이 아이를 조금씩 성장하게 만든다.


물론 대화가 늘 뜻대로 흐르진 않는다.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고, 아이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머릿속에선 ‘임신한 십대’, ‘학교 중퇴’ 같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망가질까 두려운 마음이 가슴을 떠나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 불안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엄마의 품을 벗어날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믿어주는 일뿐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지금 당장 내 뜻대로 살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자기만의 답을 찾을 것"을 믿는 일이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서야,

아이들은 마침내 자기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된다.


단, 어떤 순간에도 부모는 최종 목적지의 방향만큼은 단단히 품고 있어야 한다.


피임보다, 사랑의 기술보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건

‘존중’이라는 감각이다.


사랑이 죄처럼 느껴지지 않게,

성이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기술임을 알려주는 것—

그건 꼭 가르쳐야 한다.


나머지는, 차라리 사소하다.




잠깐,

돌쟁이도 안 된 아들 하나 있는 애송이가

십대 자녀를 둔 선배 부모님께 이런 조언을 하다니—

내가 들어도 기가 찰 일이다.


하지만,

연애 조언은 모태솔로가 제일 잘하고,

부부 상담은 결혼 안 한 법륜 스님이 최고이며,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하는 법이라지.


아마 나도 훗날, 우리 아들이 십대가 되면 ‘열린 대화’는커녕 입 다물라고 잔소리부터 해댈게 분명하다.


그러니 부지런히 배워야겠다.

사랑을, 대화를,

그리고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를.










에필로그.

그로부터 몇주 뒤, 소연이는 결국 장문의 메시지를 태웅이에게 보냈다고 했다.


너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가끔 그런 대화를 하면 계속 좋아하기 힘들 것 같아.”


짧고 부드럽지만, 분명한 경계였다.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소연이에게 죽고 못사는 태웅이는 곧바로 사과했다.

그들의 연애는 중학교 졸업까지 이어졌다. 중학생으로선 정말 보기 드문 장기 연애였다.

전교 1등 소연이는 특목고로 진학하며 “우리 대학 가서 다시 웃는 얼굴로 만나자.”며 이별을 고했다.

태웅이는 3일 밤낮을 울다가 남고에 가서 공부만 했다고 한다.


태웅이에겐 미안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태웅아, 지증왕 말고,

부디 수능의 왕이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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