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의 가운데손가락이 남긴 것들

# 나이스한 교사인 척, 속으론 욱 ep.6

by 사랑의 생존자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에세이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여러 사례를 종합해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자, 오늘 떡볶이 먹는 날이에요!
매운맛 드실 분?”


늘 종이 넘기는 소리만 가늘게 들리던 교무실이 순식간에 동네 분식집처럼 떠들썩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네 시.

4시 반이면 칼같이 퇴근하는 중학교에서

이 시간에 단체로 떡볶이를 주문하는

실로 기이한 일이다.


옆자리 50대 선생님이 들뜬 목소리로 이것저것 주문을 받다가 문득 나를 힐끗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신규 샘~ 고생 많다! 핫도그도 시켜줄까? 오늘 맘껏 먹어. 출장 간 날 드물어!!”


그렇다.

오늘은 ‘그녀’가 출장으로 교무실에 자리를 비운,

일 년 열두 달 통틀어 손꼽을 만한,

귀하고도 귀한 날.


발령받은 첫 학교에는‘그녀’가 없으면 떡볶이를 시켜 먹는 이상한 전통이 있었다.


그 기묘한 전통의 근원지

‘그녀’는

바로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 때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사회를 보게 되었으니,

바로, 교사 사회였다.


겉에서 보기엔 교사란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니

늘 협업하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어와 보면 의외로 ‘개인플레이’가 강하다.


내 수업만 잘하면 되고,

우리 반만 무사히 굴러가면 된다.


행정 업무가 수직적 구조를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회사처럼 매출을 올릴 필요도 없고,

대부분의 일은 ‘완벽하게’보다

‘일단 돌아가게만 하면 되는’ 수준이면 족하다.


부서의 ‘부장’이라는 직책이 있긴 하나,

회사처럼 화려한 승진이라기보다는

경력 순으로 돌아오는 순번제 보직에 가까웠다.

수당 몇 만 원이 붙는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모두 같은 교사직급인 건 매한가지다.


굳이 위아래를 나눈다면

교감, 그 위에 교장이 상사 개념인데

그 힘도 예전 같지 않다.


한때는 교감이나 교장 말 한마디면

교사들이 꼼짝 못 하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요즘 교사들에게 “까라면 까야지” 식은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소위 MZ교사들은 관리자를 대놓고 ‘꼰대’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일엔 늘 예외가 있다.

교사의 권위가 바닥을 쳐도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교사가 있듯,

관리자의 권위가 추락한 시대에도

교사들을 압도하는 관리자는 존재한다.


제도가 주는 권위가 아니라,

그 사람 한 명의 순도 높은 카리스마로

아랫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녀는,

그 예외적인 존재였다.




보통 교감은 위로는 교장의 압박,

아래로는 교사들의 원망에 낀,

말 그대로 ‘낑긴 귤’ 같은 자리다.


하지만 그녀는

낑기긴커녕,

학교 생태계 최상단의 포식자였다.


당시 50대였던 교감은 웬만한 남교사들도 주눅 들게 만드는, 건장한 풍채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그녀가 즐겨 입는 화려한 색상의 트위드 원피스가 넓고 단단한 풍채와 맞물려 묘하게 기세를 더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낮고 단단한 톤으로 한 마디 툭 던지며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면 정말로 오금이 저렸다.


어느 날은 외부 체육강사 스케줄을 잘못 잡아 한 시간이 통째로 비는 사고가 있었다. 그 일을 맡은 사람은 경력 30년 차 50대 남자 선생님이었다.


“일을 이딴 식으로 합니까!!!”


교무실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을 거의 던지다시피 내리꽂으며 호통을 쳤다. 재벌집 회장님이 부하직원을 호되게 꾸짖는 삼류 드라마 한 장면 같은 광경에 나는 그저 눈알만 굴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모멸감을 줬다면

누군가 들고일어날 법도 한데,

그녀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 '성깔 좀 있다'는 베테랑 선생님들조차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욕은…

뒤에서만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은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때 교무실에 모여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몰래 욕하는 것 정도였던 것이다.


한편, 교감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게는 무한 신뢰를 줬다.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본인의 권위를 잘 세워주는, 일명 ‘알딱깔센’ 스타일의 선생님들에게는 웬만한 지각이나 실수쯤은 눈 감아주고, 커버까지 확실하게 쳐줬다.


한마디로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은 확실히 챙기고,

싫어하는 사람은 끝까지 밟는,

팬과 안티가 뚜렷한 타입이었다.


그 단순한 생태계를

나는 발령 두 달 만에 알아챘고

즉시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웠다.


‘찍히지만 말자.’


…라고 마음속에 몇 번이고 되뇌었건만,

세상일이 어디 내 뜻대로만 흐르던가.


학교에 온 지 고작 두 달 만에

나는 결국,

그녀에게 제대로 찍히고 만다.




5월의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점심시간,

갑자기 교무실 전체 회의가 잡혔다.


학기가 이미 한참 시작된 중간에 ‘ADHD 학생 지원 사업’ 예산이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그 규모가 거의 억 단위였다. 예산이 크다는 건, 업무량도 억 소리 난다는 뜻이었다.


그 업무를 어느 부서가 맡을지를 두고 회의실 여기저기서 “우린 이런 이유로 안 됩니다”라는 절묘하고 정교한 자기 방어 논리가 쏟아졌다. 특히 업무 성격상 가장 관련이 깊은 상담부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한동안 입을 다물고 회의를 지켜보던 교감 선생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ADHD는… 방과후부에서 가져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내게 꽂혔다.


“제... 제가요?”




나는 당시 신규답게 학교에서 가장 기피부서인 방과후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 학교의 방과후부서는 다른 학교처럼 수업만 주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방과후 수업은 물론이고, 토요일마다 한부모·저소득 가정 아이들과 문화 프로그램을 나가야 했다. 여기에 공부방 사업까지 맡으면서, 밤 8시까지 아이들 밥을 챙기고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일이 내 일상이 되었다. 거기에 대학생 봉사자와 기초학력 프로그램까지 얽히니, 주중 저녁과 토요일은 사실상 내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교사라 함은 비록 월급은 약소하나, 자고로 4시 반 퇴근의 워라밸 삶이 가능한 직종임에도 나는 그걸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억 단위 ADHD 사업까지 가져가라니.

아무리 두 달 차 신규라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ADHD가… 방과후부랑 무슨 상관이지?’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잔뜩 떠다니는 동안

교감 선생님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결국 방과 후에 이루어질 일 아닙니까.

우리 신규 선생님이 잘할 거라 믿어요.”


방과 후에 일어날 일이니 방과후부서 몫이라는 그녀의 괴변 앞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용기를 긁어모아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저희 부서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목소리를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겁니까?!!”


회의실이 쩌렁 울리는 호통소리보다

더 충격이었던 건,

나를 향해 뻗어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었다.


애초에 직접적으로 사람을 손가락으로 대놓고 가리키면 안 되지만, 그건 백번 이해한다 치고, 그래도 굳이 사람을 가리킨다면 검지를 쓰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가운데 손가락을 곧게 펴

내 얼굴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해 있어

외국에서처럼 ‘그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 무언의 모멸감은 정확히 전해졌다.


충격에 휩싸인 나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의자에 꼼짝 않고 붙박여 있었다.

회의실은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긴 정적 끝에 상담부 선생님이 나를 힐끔 보고는 체념한 듯 말했다.


“… 그냥 제가 맡겠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지만,

그 손가락의 모양이 머릿속 깊이 박혀 내 뒷덜미를 계속 짓눌렀다.




그날 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사람을 가운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거울 속의 나를 타인이라 여기고 조심스레 손을 들어 가운데 손가락을 펴 내 얼굴을 겨누어 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명백하게 의도적이고,

작정한 모욕이었다.


언젠가는 이 치욕을 반드시 갚으리라.


그렇게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나 혼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내가 올린 모든 전자결재 문서에서 책을 잡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나이스’라는 전자결재 시스템을 쓰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올라간 문서는 어떻게든 흠을 찾아냈다.


어떤 날은 단어 선택을,

어떤 날은 띄어쓰기를,

심지어 어떤 날은 이유도 없이 그냥

며칠씩 결재를 붙들어 두기도 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찍버린 것이다.


제일 곤란해진 사람은 내 위에 있는 방과후 부장 선생님이었다. 교감은 “밑에 사람 지도 좀 잘 하라”틈만 나면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그때마다 부장선생님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장선생님이 난감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저기… 선생님. 이번 건은 직접 오라고 하시네요.”


“직접이요?”


전자결재 시스템을 두고 직접 와서 수기로 결재 사인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어 부장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거… 들고…”라며 딱딱한 서류철을 하나 내밀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종이를 끼워 들고 다니는 그 결재판이었다.


나는 말없이 공문을 출력해 결재판에 꽂고 교감실로 걸어갔다.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고,

걸음을 옮길수록

억울함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랐다.


그날의 가운데 손가락이

문득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대로 삼키고만 있으면

언젠가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까라면 까야…

아니, 하라면 해야겠지만…

그래도,

그냥 하진 않을 테다.




교감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 노크를 했다.


“교감 선생님, 결재받으러 왔습니다.”


그녀는 나를 힐끗 보더니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빨간색 네일이 칠해진 손가락이 종이 위를 천천히 훑었다. 고작 몇 장 안 되는 공문인데도 그녀는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이후 내가 할 행동에 대해 수십 번 시뮬레이션했다.


몇 분 후,

그녀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뭐, 이렇게 올리면 되겠네요.”


드디어,

내 차례였다.


“저…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생각보다 덜 떨리는 게 다행이었다.


“제가 처음 혼자 올린 공문이라…

여기에 교감 선생님 서명도 받았으면 해서요.”


그제야 그녀가 작게 눈을 치켜들어 나를 한번 훑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서랍 깊숙한 곳에서 값비싸 보이는 만년필을 꺼냈다.


지금이다!


결재판 위의 종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요.”


그리고 나는,
그날 그녀가 나를 향해 내밀었던 그 모양 그대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천천히 펴
서명란을 정확히 짚었다.


이어,
왼손까지 들어
두 개의 가운데 손가락으로
공손하게,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서명 위치를 가리켰다.


서명 중지.png


가슴속 어딘가에서

묵직한 희열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잠시 내 손가락을 바라보는 듯하더니,

아무 말 없이 만년필을 가져가 사인을 했다.

만년필 특유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고 결재판을 들고 교감실을 나왔다. 등 뒤로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복도를 걸어 나오며

땀이 흥건해진 손을 조용히 모으며

소리 없이 외쳤다.


‘예스!’




이후에도 몇 번,

그녀에게 직접 결재를 받으러 갈 일이 있었지만

손가락 복수는 그날 단 한 번으로 족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한 번으로

백 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툭— 하고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후,
그녀는 나에게서 흥미를 거두었고

또한 물 흐르듯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녀에 대해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사 사회에도 일명 ‘진상 교사’라는 부류가 있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그들을 건드리기 꺼렸다.

더러운 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듯,

차라리 모른 척하고 지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우리 교감에겐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진상일수록

더 철저히,

아주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밟았다.


결국 몇몇 문제 교사들은

그 학교를 떠났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짐 싸서 나갈 때

속으로 조금 고소했다.


게다가 그녀의 카리스마는

학부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며 난리를 치던 사람도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실까요?”

그 한마디에 이끌려 상담실로 들어갔다가

30분 뒤에는,

누가 봐도 얌전한 신사·숙녀가 되어

고개까지 숙이며 나오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


리고 드디어,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학기말 종업식,

신규 막내에게 떨어지는 단골 업무인 회식 장소 예약이 내 차례로 왔다.


교사 마흔 명이 모일 대형 뷔페를 몇 주 전 미리 예약하고 3일 전에는 확인 전화까지 했건만, 막상 가보니 자리라곤 스물다섯 개뿐이었다.


“아, 오전에 손님이 많이 들어와서요.

단체석은 지금 이 정도밖에…

나머지는 저쪽 빈자리 알아서 앉으시면 됩니다.”


건장한 남자 직원의 말투는 ‘싫으면 나가라’에 가까웠고, 어리바리한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그 말에 기가 죽어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길게 해.”


그 한마디에

직원은 얼어붙은 듯 멈칫했다.


이어 그녀는

뷔페 안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책임자, 데려와!!!!!”


그리고 정확히 5분 후,

우리 앞에는 마흔 명 단체석이 거짓말처럼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


회식을 마치고

뷔페 문을 나설 때,

앞서 걷는 그녀의 넓은 등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된다더니.


그토록 미워하던 그녀였지만

우습게도 그날만큼은 묘하게 든든해 보였다.




그 후로 10년이 흘렀다.

요즘 교감이라는 자리는 예전보다 더 무거운 행정업무에 짓눌리고, 말도 안 되는 학부모 민원 사이에서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녀 같은 스타일의 교감을 학교에서 다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가끔,

복도 끝에서

서슬 퍼런 눈빛으로 걸어오던 그녀가 생각난다.


적일 때는 끔찍했지만,

내 편으로 서 주던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든든했던 사람.


학부모 민원에 지쳐

서러움이 불쑥 북받치는 날이면

그녀가 문득 떠오른다.


오금이 저리다 못해

때로는 징글징글하기까지 하던 그녀가

그리워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참,

세상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습니다.

전편 <분노한 학부모 앞에서 살아남는 법>

에서 충분히 느끼셨겠지만,

저는 그러니까

(매우 조금 소심한) 복수혈전계의 달인입니다...

그러니까

건..건드리면 안되지 말입니다.

아주 큰일납니다?-_-! 후훗.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따뜻하게 챙겨입으시고, 든든하게 챙겨드시어

건강한 겨울나시길 바랍니다.^^


keyword
이전 05화열여섯 뜨거운 청춘, 우리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