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

# 쓸데없는 관찰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기술들

by 사랑의 생존자


“나는 서울대 나온 사람을 말로만 들었지,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다가 H가 말했다. 화면 속에서는 서울대와는 아무 상관 없는 변호사가 성실하게 악당을 때려잡고 있었다.


“그래?”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꽤 있는 것 같은데.”


“누구?”


“일단 우리 아빠랑 오빠.”


“아, 맞다. 형님이랑 아버님.”


“그리고 친구 J.”


“J 서울대야?”


“응. 그리고 지금 학교에서 친한 A 선생님이랑,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만난 C쌤도.”


H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뭐가 달라?”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은 다 비슷하지 뭐.”


마침 화면 속에서 주인공이 악당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H는 “그렇구만” 하고는 다시 드라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방금 나눈 대화를 되씹어 보았다. H 덕에 새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서울대 문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주변에 서울대 나온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 그것도 어정쩡한 지인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꽤 가까운 사이들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서울대 출신들과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이었다. 직장이나 대학원에서 만난 그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대체로 나를 불편해하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쉽게 친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2년제 전문대를 나온 H와 결혼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건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선호한다기보다는, 그들과 어떻게 친해지는지는 조금 아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

쓰고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이건 명백하게 어디에도 쓸데없는 지식이잖아.


그렇다면 이걸로 ‘쓸데없는 것들 그냥 쓰기’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딘가에는 서울대 나온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절박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이 글의 목적이 애초에 ‘쓸데없는 것’이니까.


자, 일단 내 주변 서울대생부터 세어본다.

오빠랑 아빠를 포함한 가족 둘,

친한 친구 하나,

학교에서 친해진 동료 선생님 둘.

도합 다섯 명.

이 다섯 명과는 제법 가까운 사이다.


그 외에도 친척 오빠 몇, 사적으로 몇 번 밥을 먹은 직장 동료 몇, 세 번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새언니의 오빠 같은 사람들이 스친다. 하지만 이들을 관찰 대상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결국 유의미한 표본은 다섯 명뿐이다.

통계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숫자.

나의 경험과 뇌피셜 100%.

근거도 없고, 출처는 더더욱 없다.

합리적으로 반박할 예정이라면 지금이라도 뒤로 가기를 눌러... 아니다, 끝까지 읽고 욕해주세요. (굽신굽신)


자, 그럼 서울대생과 친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디에도 쓸데없는 스킬 몇 가지 들어간다.

가보자고.




1. 「날 이렇게 대한 사람, 니가 처음이야」 스킬


서울대 출신에게 가장 흔하게 건네는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와, 서울대 나오셨구나?”

“공부를 정말 잘하셨겠네요.”


그런데 이런 말은 그들에게 별로 안 먹힌다. 싫어서라기보다는 너무 많이 들어서다. 심지어 “전교 1등 몇 번 해봤어요?” 같은 질문은 식상하다 못해 조금 피곤한 축에 속하니, 금물이다. 이건 마치 김태희...는 너무 옛날이니까, 장원영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 예쁘세요.” “예쁘다는 말 몇 번 들어보셨어요?”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칭찬 싫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서울대생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다만, 남들과 같은방식으로는 특별한 호감을 얻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이거다.

칭찬하라. 단, 구멍을 곁들인...!

이른바 ‘날 이렇게 대한 사람, 니가 처음이야’ 스킬이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도 다 허점, 그러니까 구멍들이 있다. 오히려 공부에 많은 시간을 쓴 탓에, 다른 쪽의 구멍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어이없는 오타를 낸다거나,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거나,

밥을 먹다 흘린다거나,

단어를 엉뚱하게 쓰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너무 치명적인 건 말고, 사소한 것 하나면 충분하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 그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의외로 덜렁대시네요.”

“허당이시네.”

“이걸 또 빠뜨리세요? 재밌는 분이네.”


그리고 거기에 슬쩍 한 마디를 덧붙인다.


“서울대 나와도 별거 없네요.”


이상하게도 이런 말에 그들은 잘 웃는다. 연예인처럼 유난히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에게는 적당한 무관심이 통하듯, 이들에게는 이런 식의 가벼운 자기 희화화가 잘 통한다.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기분이 상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그렇지 않다. 이들은 학벌이나 지식에 대해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말을 꼬아서 듣지 않는다. 예쁜 사람에게 “못생겼다”고 말해도 타격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참고로 나한테 “못생겼다”라고 하면 나는 운다. 엉엉 운다.)


게다가 이 방식에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서울대생들은 자기 입으로 학벌을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서울대 나왔어.”라고 스스로 말을 꺼내는 일은 아무래도 조금 민망할 테니까. 그러니 이렇게 농담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편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아, 이 사람 서울대 나왔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만든다. 놀리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은근히 띄워주는 셈이다.


물론 일 처리나 판단에서 그들의 명철함이 분명히 드러날 땐 “그래도 역시 서울대네요.” 정도로 한 번쯤은 칭찬해 주는 센스도 잊지말자.




2. 「그래, 너도 힘들구나. 서울대여도 말이지」 스킬


호감을 얻고 제법 가까워지면 그들은 진지한 이야기로 속내를 내비친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다. 생각보다 이들이 상당히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십 대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다 잘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그 위에는 또 다른 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이후의 삶이 크게 달라질 리 없다. 특히 육아나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비관은 더 짙어진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1등을 하고, 최고의 대학을 간다해도 결국 별것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렇게 잘해낸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이...)


그래서 어떤 날은 날 선 말을 비수처럼 던지고, 어떤 날은 도 닦는 사람처럼 인생의 허무를 길게 늘어놓는다.

그럴 때 나는 그저 이렇게 듣는다.


“그래, 잘나 보이는 너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름의 고통이 있었겠구나.”


사춘기의 최대 권리인 방황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공부에 소진해 도달한 최고의 자리에서조차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억울함이 있을테다.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뤘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허탈함과 스스로를 향한 자기연민. 그건 그들만의 몫일 것이다.


그들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나지만, 계속 위로 올라가야 하고 잘남을 유지해야 하는 그들이 가끔은 진심으로 짠하게 느껴진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가진 자를 바라보며 느끼는 기묘한 연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내가 일찍부터 현실에 적당히 안주해 버린 속 편한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그래서 대화의 끝에서는 결국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야! 나는 서울대 안 나와서 다행이다. 너, 안됐다...?”


그런 날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지만, 그들의 무거운 어깨를 조금은 가볍게 하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한듯하다.




다 쓰고 보니 그들과 친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이 한 가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서울대라고 해서 별건 없다.’


나는 학벌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지 않는다. 특별히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서, 이 말이 조금 덜 그럴듯하게 들릴 뿐이다. 서울대를 나와서 “학벌 따위 별거 아니다”라고 말했다면 간지가 폭발할 테지만, 그건 여건상 다음 생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지금으로서는 간지가 조금 없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소심하게 한 번 더 말해본다.


서울대라고 해서
별건 없다.

아무튼.





안녕하세요?

입춘이 지나고도 추운날 다들 건강하시지요.^^


왜인지 기존에 쓰던 '나이스한 교사'시리즈가 너무나 쓰기 싫고, 이러다가 브런치를 뜨겠다 싶은 위기감에 얼토당토하게 무지성의 '쓸데없는 것 그냥 쓰기' 브런치북을 열었습니다.


아무때나 아무거나 가볍게 쓰자는 마음으로 연재일은 '월화수목금토일'로 했습니다. 이것은 연재일따위는 없다는 강력한 의지이며, 여기에 모이는 글들은 대학교 때 애용했던 '싸이일기'같은 용도로 아무거나 대잔치 글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심심풀이용으로 재밌게 읽어주시면 저는 그 이상 바랄게 없을것 같습니다.ㅎㅎ


소중한 브런치 글벗님들, 부디 모두 무탈하시고 평안한 나날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