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사람, 눈치 있는 사람

# 노력형 눈치 백 단의 최후

by 사랑의 생존자


때는 몇 년 전, 3월 새 학기 학부모 상담 시간.

쭈볏쭈볏 들어오신 수겸이 어머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눈치를 많이 봐요. 제가 어릴 때 눈치를 많이 봐서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해요.”


경력직 교사라면 이쯤엔 자동으로 튀어나와야 하는 말이 있다.

‘수겸이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어머님.’

그런데 그 타이밍에 질문이 번쩍 떠올랐다.

그리고는 삼켜야 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기, 어머님. 근데요… 수겸이한테 눈치 보지 말라고 가르치다가 눈치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죠?”

“…네?”


흔들리는 눈동자.

여기서 멈춰야 하거늘, 나의 세치 혀는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


“어머님, 눈치를 보는 사람과 눈치가 있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요?”


잠시의 정적.


“혹시… 저희 수겸이가 눈치가 많이 없나요?”

불안감에 손까지 살짝 떠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아니요! 수겸이는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어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요.”


수습을 시도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교실을 나서며 나를 힐끗 보던 어머님의 불안한 눈빛이 오래 남았다.


아.

또 저질렀다.

질문이 타이밍을 이겨버리는 고질병.


나는 궁금증이 떠오르면, 그 말이 지금 해도 되는지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곤 한다. 어릴 때는 잦았고 성인이 되며 줄었다지만, 3~4년에 한 번씩 꼭 발병해 누군가를 당황하게 만든다. 수겸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당황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진심으로요.


그런데…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눈치 보는 사람’과 ‘눈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갈라지는 걸까.


아, 또 쓸데없는 것의 냄새가 난다.

진짜 쓸데없쥬?

자, 그럼 이번 편 가보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눈치 있고 센스 있는, 그러니까 일명 ‘알딱깔센’과는 거리가 멀다. 상황이나 남의 반응을 재빨리 읽기보다는 그냥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쪽에 가깝다. 그게 나의 기본값이다.

고등학교 때였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애들이 너 엄청 욕하고 있어. 벌써 일주일째야.”


“뭐? 나를? 왜?”


알고 보니 내가 한 친구에게 던진 말 한마디가 문제였다. 그 말이 돌았고, 친구들은 화가 났다. 나는 이미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다. 일주일이 지나자 답답한 쪽은 오히려 그쪽이 되었고, 결국 나랑 제일 친하다는 이유로 눈앞의 녀석이 총대를 멘 것이다.


“너 진짜 몰랐어? 아, 진짜 답답해서!”


그러고 보니 최근에 화장실을 유독 혼자 갔던 날이 있었고, 급식 시간에 친구들이 부쩍 조용해졌었다. 놀란 나는 다음 날 바로 사과했고, 다행히 친구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받아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눈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내 생각에 골몰하다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됐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말이 유행처럼 돌 때 나는 꽤 놀랐다. 저 당연한 말에 왜 저렇게 열광하지? 나는 그 말을 듣기 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그러다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부딪히고, 혼나고, 한마디로, 꽤 많이 처맞으면서 고약한 나의 기본값은 조금씩 수정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쓴다.’


30대 초반쯤 되었을 때,

물론 가끔,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였지만,

“센스 있다.”

“눈치 빠르다.”

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꽤 큰 진화였다.



서양에서는 자신감 없으면 바보 취급당한다지만, 한국에서는 눈치 없으면 소외되기 십상이다.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꼴에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눈치 보는 사람은 더더욱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눈치 보지 않고 눈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일 만만한 H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눈치 보는 사람 같아?”


“상대 반응 하나하나에 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상대가 원하는 건 잘 못 잡는 사람?”


“오호, 그럼 눈치 있는 사람은?”


“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건 챙기는 사람. 전전긍긍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있는 사람에게는 있고,

눈치 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은

바로 ‘여유’.

그리고 그 여유의 정체는,

아마 ‘관찰’이지 않을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에 너무 매달리면,

오히려 상대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결국 눈치만 보게 된다.

반면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내려놓고

상대에 집중하면,

생각보다 많은 게 보이는 것이다.


오호라. 이거다.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이 결론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지만 나는 종종 아이들 눈치를 보다가 일을 그르쳤다.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에 골몰하다 보니 정작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다. 내가 한 말실수, 목소리 큰 아이의 반응 따위만 붙잡고 있었지 교실 전체를 볼 여유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저들이 날 어떻게 볼까’는 잠시 꺼두고 아이들을 관찰하는데 집중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타깃은 모범생이지만 속을 도통 알 수 없는 우리 반 반장 녀석. 일주일을 지켜봤다. 아이는 매일 아침 파란색 망고맛 몬스터 빈 캔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상담 시간에 슬쩍 물었다.


“너, 몬스터 망고맛 좋아하지?”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맛있잖아. 나도 좋아해.”


“완전 존맛이에요, 샘!”


급격히 친근감을 드러내는 아이를 보며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몬스터는 잠을 쫓는 음료다. 그런데 이 녀석은 성적은 꽤 높다. 그렇다면...


“너 밤새 공부하는 스타일이지?”


“헐… 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무릎을 쳤다.

이게 통하네?!


그렇게 시작된 ‘눈치 있는 선생님 되기 프로젝트’는 의외로 잘 굴러갔다.


“선생님 제가 그런 성격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그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이들이 놀랄수록 나는 점점 확신이 생겼다. 게다가 관찰만 했을 뿐인데 훈육까지 쉬워졌다. 칭찬이 먹히는 아이, 자극이 필요한 아이, 무관심이 약인 아이. 유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급기야 이런 말까지 들었다.


“선생님 거의 점쟁이예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혹시 드디어 눈치 있는 교사가 된 건가?

슬며시 올라가는 어깨를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감이 차오른 나는 상대를 바꿔보기로 했다.

바로 H.

이제 '눈치 있는 교사'에서 '눈치 있는 아내'로 진화할 차례였다.


며칠 동안 H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문제는, H는 거의 늘 비슷했다. 기분의 진폭이 크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관찰이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이 미묘하게 어두워 보였다.

입꼬리가 살짝 처졌고,

눈이 흐리멍덩했다.

내 농담에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오호.

이건 분명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치 있는 아내 모드로 돌입했다. 없는 꼬리를 만들어 살랑이며 따뜻한 음식을 대령했다.


“오늘 힘들었지? 이거 먹고 힘내.”


“… 별로. 그것보다 좀 졸리다.”


시큰둥한 말투.

봐라. 이건 그냥 졸린 게 아니다.

피곤함을 가장한 투정이다.


“좀 쉬어.”


다정한 나의 권유에 H는 말없이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10분 만에 잠들었다.


그래. 자고 일어나면 속풀이가 시작되겠지.

난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왜냐하면 난 눈치 있는 아내니까!


20분쯤 지났을까.

H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아, 살 것 같다! 이제야 정신이 드네.”


아까와는 다른 쾌활하고 상쾌한 표정이었다.


“…응? 괜찮아졌어?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 전혀. 졸렸다니까. 몇 번을 말해.”


H는 배가 고프다며 부엌으로 달려갔고, 라면을 끓이며 파를 송송 써는 그의 뒷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진짜로.

그냥 졸렸구나.

눈치를 노력으로 만들겠다니.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역시 재능이 없으면

쓸데없는 노력만 늘어난다.

여전히 눈치 없는 사람,

바로 나.


그리곤 시무룩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니까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진짜 눈치 있는 브런치 글벗 분들,

눈치 보지 않고 눈치 있어지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르침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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