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충분히 '너'답다

지극히 바람직한, 내 안의 나

by 모간

봄의 절정에서 온천지가 꽃들로 수를 놓던 어느 주말, 나는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당직 중이었다. 날이 좋아서, 밖을 더욱 갈망하던 찰나에 중지와 화상전화를 연결했다. 애지와 파라솔은 학원에 가고, 홀로 남겨진 중지가 걱정되었다.


"중지야, 혼자 뭐 해?"

"엄마 나 일기 쓰고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나 일기 쓸 때마다 나한테 말해준 게 뭐였지? 쓰기 전에 맨 앞에 적었던 거요."

"뭐? 뭐지? 뭐가 있었나?"

"그거 있잖아요."

"아, 기승전결?"

"맞아요. 기승전결! 혼자 일기 써볼게. 제목은 <엄마 없는 날>이고 날씨는 <벚꽃이 눈 같은 날>이야."


한 참 후, 일기를 다 쓴 모양인지 중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조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일기를 읽어준다고 하는 걸 보니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엄마의 개입과 눈총이 빠진 일기는 "정말 혼자 쓴 거 맞니?"라고 할 정도로 꽤 괜찮았다. 감히 글쓰기 비전문가가 평가해 보건대, 유려한 문장도 그렇고, 막힘없는 감정표현은 어른 뺨치듯 훌륭했다.


그런데, '기승전'까지는 좋았는데 역시나 '결'이 조금 아쉬웠다. '나는 엄마가 제일 좋다'라는 급마무리는 이미 몇 번이나 써먹은 표현이다. 음, 거의 '참 재미있었다'와 같은 정도의 빈도랄까. 이 부분만 다른 문장으로 대체하면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수정된 문장은 '엄마가 돌아오면 같이 벚꽃놀이를 가고 싶다'였다. 바로, 통과! 그 어떤 문장이든, 중지 마음에서 길러낸 것이라면 무엇이든 바람직하니까.


"그런데, 엄마. 사실 나 마지막에 뭘 붙이려고 했는지 알아요?"

"뭔데?"

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목련처럼 활짝 핀 꽃이고, 나는 아직 덜 핀 꽃 봉오리 같다.

"캬~ 멋지다. 어떻게 그렇게 멋진 표현을 생각했어? 봄이랑 닮아서, 아름답다.”

"헤헤,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나보다 아는 게 훨씬 더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거기서 나이 많은 게 왜 나와? ^^;;"

"아 그 그 그 게..^^;;"

"정말 멋진 표현인데, 마무리로 적어도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좀 부끄러워서 못 적었어."

"뭐가 부끄러워?"


음, 선생님이 잘 쓴 일기는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시는데 이걸 친구들이 들으면 부끄러울 것 같고,

선생님이 읽으시면 너무 어른처럼 썼다고 말할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워서.


중지야, 너의 일기는 '어른답지 않고, 충분히 너답다'라고 엄마는 꼭 말해주고 싶네.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문장을 가슴 안에 꽃 피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앞선 생각과 표현은 중지만이 가진 값진 재능이라고 생각해. 이 귀한 문장을 책에서 봤든, 꽃그늘 밑에서 느꼈든, 드라마에서 들었든, 너의 가슴에 남아 너의 문장으로 새길 수 있다면 그건 오롯이 '너의 것'이야. 너의 일기장에 봄과 꽃이 들어갈 여유가 있다는 것, 그 꽃 향기가 기어이 엄마와 너의 가슴에 닿을 수 있다는 것, 이보다 아름다운 순간이 있을까.


이후, 나는 목련에 대해, 그리고 꽃봉오리에 대해, 마지막으로 어른에 대해 며칠을 곱씹었다. 목련이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뜻을 알게 되면서 고고한 자태의 연꽃까지 덤으로 피워 올렸다. 크고 작은 갖가지 꽃봉오리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생각나서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어른, 우리 모두가 쉽게 말하는 그 어른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오래, 생각했다.


어른 안에 아이가 살고 있듯,

아이 안에 어른이 살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해야겠다.


모두, 온전한 '너' 그리고 온전한 '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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