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예쁘고 빛나는, 내 별을 찾아
회사 내부망에 언론 사설이나 칼럼을 정리한 글이 매일 올라온다. 뉴스 스크랩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는데, 다른 주제로 깊이를 더한 글이 실리다 보니 이것만 읽어도 하루치의 활자를 다 챙겨 먹은 듯 포만감이 인다. 매일 꼬박 챙겨 먹기는 어렵지만, 나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처럼 든든하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나 교수 등이 쓴 칼럼이 올라오면 '오늘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며 오늘의 운세까지 점친다.
그렇게 며칠 전 만난 오은영 박사의 칼럼 하나,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과 관련하여 '올 한 해 너 참 잘 지냈어'라고 말해주되 두루뭉술하게 칭찬하지 말고 1년을 쭉 정리해주면서 구체적인 증거를 모아 이러저러하다, 대체로 잘했다며 통찰능력과 자기 신뢰감부터 선물로 주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육아서적이나 부모를 위한 유튜브 채널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데, 이런 조언은 실천이 가능할 것 같아서 살짝 벤치마킹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창이 열리는 저녁식사 시간, '엄마가 우리 딸들 한 해 동안 너무 열심히, 멋지게, 성장했다고 산타할아버지께 선물을 요청할까 하는데, 괜찮겠지?'라며 이야기 포문을 열었다. 쿠폰, 포인트, 용돈, 선물 등 인센티브에 유독 강한 중지가 눈빛을 반짝 거리며 응했다.
오 박사님의 가르침대로 찬찬히 애지중지의 한 해를 정리했고, 그 끝에 선물도 하나씩 허락했다. 물론 산타할아버지가 아빠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계실까?' 하며 아직도 묻는 걸 보면 상상력의 불씨가 아예 꺼진 건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속 그 불씨처럼, 절대 꺼뜨리고 싶지 않은 단단한 마음.
그런데 선물 앞에 마음이 활짝 열린 탓일까, 중지는 목표를 이뤘는데도 엄마 선물을 챙겨주려는 듯 나머지 못다 푼 이야기를 줄줄 쏟아냈다. 엄마의 눈빛에서 행복을 읽어내는 능력만큼은 '초능력' 감이다.
"엄마. 난 지금까지 인생 중에서 3학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는 친구가 한 명 밖에 없어서 무조건 친구들을 사귀어야겠다고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여자애들 8명 중에 7명과 친구가 되었는데, 인기도 많아지고 친구들이 나를 찾으니까 처음에는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한 친구랑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친구랑 일이 벌어지고 또 다른 친구랑 이어지고.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힘든 거예요. 예를 들어, 물컵에 물이 가득 차면 조금만 움직여도 쏟아버리잖아요.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도 없고요. 그것 같았어요.
원인과 결과처럼, 너무 많은 친구를 사귀니까 내가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마지막 친구에게는 정성을 쏟을 수 없다 보니 나한테 서운해하고요. 사람들은 '적당히' 하기가 어려운데, 4학년이 되면 친구도 적당히 사귀려고요. 음, 한 4-5명 정도. 외롭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을 만큼요."
나는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 3학년 일기장에는 절대 담길 수 없는 깊고 깊은 이야기를 놓칠 세라 조급해졌다. 내가 정리해준 중지의 1년은 나의 얄팍한 평가에 불과했구나, 자기 삶의 증거는 결국 자기 스스로만이 증명할 수 있구나, 그 큰 울림을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 내가 저번에 그린 그림 있잖아요. 별 네 개, 우리 가족을 그린 그림이요. 다른 애들은 가장 예쁘고 빛나는 별을 보면서 '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거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막상 남들 앞에서 말할 때는 내가 키도 작고 그러니까 남들이 고르고 남은 '작고 별 볼 일 없이 못생긴 별'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 작은 별이 '나'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계속 그림을 보다 보니까, 나는 왜 빛나지도 않고 쓸모 짝에도 없는 것 같냐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그림도 내가 그렸는데, 왜 나를 작고 볼품없는 별이라고 말했냐 이거죠.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요. 내 생각대로 '나는 가장 예쁘고 빛나는 별'이라고 말할 거예요. 나도 이제부터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감동 앞에서, 나는 빠르게 움츠려든다. 반성 모드로 돌입하는 순간이다. 중지는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가장 예쁘고 빛나는 별'을 기꺼이 선사했다.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행복으로 여겼다. 물론 그때 중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당연하다 여겼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자신의 행복과 동일시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의 진심이 지금은 정답이 아니다.
올 한 해 중지는 소리 없이 쑥쑥 자랐고, 성장했다. 그 결과 생각만 자란 것이 아니라, 속까지 단단하게 차 올라 진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는 생각을 넘어 자기 스스로를 당당히 증명할 자신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겨우, 시작이겠지만.
누가 누구를 키운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한 해 치의 성장을 이렇게 또렷이 말하고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데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가장 예쁘고 빛나는 별'을 기꺼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진짜 내 별을 꺼내 '가장 예쁘게 빛나도록' 단단하게 키워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주는 사랑을 내 것이라고 덥석 받아먹지 않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나를 좀 더 아껴주면서.
불혹의 나이에 열 살 중지의 새해 결심을 남몰래 벤치마킹하다니, 그러고 보면 나도 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