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아빠의 잘못은, 얼굴

얼굴이 정말 잘못했네

by 모간

크리스마스 주말, 나의 잔소리가 어떤 기류와 합세하더니 태풍처럼 커져버렸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것은 열한 살 애지 마음이다. 별수롭지 않은 일 앞에서, 의외로 쉽게 무너지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그때, 중지와 파라솔은 묵묵히 상황을 견디고 감내하는 듯했다. 무겁지 않은 눈물 몇 방울과 우리를 조금 이해한다는 텁텁한 숨결 몇 모금을 예의상 보태면서 말이다. 이런 보탬은 내게 쥐구멍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태풍으로 변했다가 장렬히 숨어버리기에 딱 좋은 쥐구멍, 도망가기 좋은 통로 말이다.


그렇게 상황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려던 파라솔, 애지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러자 애지가 고개를 저으며 외면했다. 아무 잘못이 없는, 그래서 더 당혹스러워하던 파라솔이 애지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애지야, 아빠가 뭘 잘못했어?"

"아니요."

"그런데 왜 그래? 엄마한테 혼났는데, 왜 아빠한테 그러는 거야?"

"아니에요."

"아빠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말해줘. 뭐 때문인지."


음, 아빠는 얼굴이 세잖아요.

파라솔은 아까의 당혹함보다 몇 배는 더 놀란 눈치였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을 따끔한 현타! 센 말로 상처를 준 건 이 엄만데, 아빠는 도대체 어떤 얼굴로 애지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애지는 험상궂은 아빠의 얼굴을 통해 어떤 감정을 읽었을 것이다. 대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는 없으니, 고개를 돌려 아빠의 센 얼굴을 외면하는 수밖에. 마치 엄마의 잔소리가 극에 달할 때 두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는 '귀틀막'과 같은 맥락이다. 말도 목소리를 타고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태초부터 표정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난 얼굴이야말로 말해 뭐 할까.


여보, 얼굴이 정말 잘못했네.


말이 센 엄마,

얼굴이 센 아빠,


우리는 누구의 폭력성이 더 위험하다고 따져 묻지 않았다. 다만, 얼굴빛과 말빛에 대해, 숨겨도 기어코 들키는 그 무언의 폭력성에 대해 각자 생각했다.


시작은 내가 했는데, 끝은 파라솔이 떠안았다. 물론 애지는 엄마에게 차마 뱉지 못한 불만을 아빠에게로 전가했을 확률이 높다. 이래도 저래도 좋을, 품이 넉넉한 아빠의 얼굴이 표적이 되기 쉽다는 뜻이다. 나에게 쥐구멍이 필요했듯, 애지에게도 아빠의 넙데데한 얼굴처럼 만만한 쥐구멍 하나쯤은 필요할 테니까.


실로,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고맙다고, 자꾸 쥐구멍으로 들어가선 안된다. 볕이야 들겠지만, 최소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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