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인문학] 잊지 마, 셀러브리티

넌 나의 Celebrity

by 모간

무장해제되는 금요일 저녁. 한동안 풀리지 않던 고민이 있어서 중지에게 툭 물었다. 길을 잃었을 때는 문제와 무관한 제3자의 객관적 시선으로 얻어걸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답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는데, 듣다 보니 질문이 뭐였는지 잊을 정도로 재미났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얼마나 정성스럽고 맛깔나게 하는지, 말투와 표정에서 작은 인격체의 온 우주가 알알이 느껴졌다. 몰입이었다.


반면, 애지는 조금 더 컸다고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놀이에 푹 빠질 때가 많다. 저녁 밥상도 치우지 않은 채, 김치 냄새를 시큰한 안주 삼아 수다 삼매경에 푹 빠진 우리를 결코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서로의 외면, 낯설지만 지켜주고픈 순간이다. 그러다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조용하던 애지가 슬며시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 나는 언제쯤 이야기할 수 있어요?"

"어? 우리 애지도 엄마한테 해줄 이야기가 있어? 그럼 잠시만."


죽고 못 사는 연년생 자매이면서도, 중요한 순간 경쟁자가 되기도 하는 숙명. 타고난 순서는 물론 다른 외모, 다른 성향과 기질, 그럼에도 기어코 닮은 여럿 구석들. 애지는 엄마와 중지의 재미난 대화가 몹시 탐났나 보다. 아니면 그 몰입에 자신도 풍덩 빠지고 싶다는 마음이 뒤늦게 들었거나. 여하튼, 대환영이다.


애지가 나를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애지가 나의 고민에 대해 언급하리라 기대했다. 평소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말문이 트이면 중지와는 또 다른 시선과 통찰력으로 엄마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엄마, 나는 요즘 셀러브리티라는 노래가 너무 좋아요."

"노래? 아이브 노래야? 장원영?"

"아니요, 아이유. 가사가 너무 좋아서 카톡에도 가사를 올려놨어요."


애지는 나의 고민과는 전혀 무관한, 자신이 놓인 상황, 감정, 느낌, 생각, 꿈, 정체성 등을 집약해놓은 노래 하나를 소개했다. 나의 권유에, 애지가 부끄러운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You are my celebrity




특히, 이 부분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랩 같은 노래를 들어도 그 안에 꼭 이런 게 하나씩 들어있더라고요. 노래를 들으면 이런 부분이 귀에 쏙쏙 들려요. 이 노래에서 핵심은 '잊지 마'에요. 잊지 마라고, 기억하라고, 힘줘서 말해주는 게 좋았어요. 흐린 어둠 사이는 깜깜한 밤하늘을 말해요.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이 깜깜한 밤하늘을 헤치고 나아가야 되잖아요. 나는 작은 별인데, 어두운 밤하늘 속을 두 팔로 저으며 헤엄쳐 나가는 거예요. 아직은 내 별이 작으니까 처음에는 작은 길이 열리고, 내 별이 커질수록 더 밝고 큰길이 열려요.


저는 햇빛이 쏟아지는 환한 빛보다, 캄캄하고 어두운 밤에 빛나는 작은 별빛이 더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왜 왼손으로 그린 별일까요? 우리는 대부분 오른손을 쓰는데 왼손잡이처럼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는 뜻이에요. '유일함', 나는 세상에 단 한 사람이고, 그 유일함이 아름다운 거예요.


물론 캄캄한 밤하늘에 엄마, 아빠 별이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잖아요. 결국 나 혼자 앞으로 나아가야 돼요. 그러려면 하고 싶은 공부만 해서는 안되고,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돼요.


만약, 내 별이 힘들다고 하는 날이 오면, 엄마 아빠는 그냥 옆에서 어깨 토닥이며 사랑으로 응원해주면 돼요. 그거면 돼요.




애지 카톡 프로필에 있던 이 가사는 비공개였나 보다. 애지의 프로필을 매일 보지만, 한 번도 엄마가 볼 수 없었던 세상. 한 사람의 어린 영혼이 이토록 깊이 삶을 들여다볼 수가, 어떤 말 대신 눈물이 쏟아졌다.


작은 두 팔로 어두운 밤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모습, 그 날갯짓으로 실선처럼 가느다란 길을 내는 작은 별, 힘이 들 때면 '잊지 마' '유일함'이라는 멜로디로 자신에게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 애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엄마가 된 이후, 처음으로 다짐했다. "오늘 이후, 더 이상의 잔소리는 무의미하다." 애지는 엄마의 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담담히 이어갔다. 다 큰 어른이 서 있었다. 언제든지 묵혔던 이야기, 겨우 용기 내 꺼낸 마음속 이야기는 예의를 갖추고 정성을 다해 들어줘야겠다.


앞으로 애지중지가 그리는 희미하고 가느다란 그 길을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야지. 그 빛이 어디로 향하든, 무엇을 그리든, 그 아름다운 향연을 유유자적 구경하면서 살아야지.


잊지 마,

당신의 유일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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