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지옥을 탈출한 여자
“어쩌다 이런 새끼랑 결혼했대?”
의사 말과 달리 우울증은 쉽게 괜찮아지지 않았다. 항우울제를 먹고 수면제를 아무리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나약한 건지. 우울한 감정이 나를 삼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난 무당까지 찾았다. 답답했다. 무슨 마가 꼈길래 여기까지 왔는가. 부적을 쓰든 굿을 하든. 뭐라도 하고 싶었다. 미신이고 귀신이고 나를 구해줄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신빛나씨. 언니는 결혼하면서 궁합도 안 봤나?”
못해도 나보다 두 배 이상은 살아온 것 같은 무당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강
렬한 첫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꽤 빨리 결혼을 결정하기도 했고. 궁합도 제대로 안 보고 결혼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결혼해서 궁합은 따로 안 봤어요.”
무당은 나를 째려봤다. 한숨을 크게 푹 쉬고는. 결혼해도 되는 궁합이 있고 연애만 해야 하는 궁합이 있는데. 그와 내 궁합은... 연애하기에도 별로인 궁합이라고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순간 꼭 해야 할 숙제를 안 한 것처럼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사주를 안 봐서 후회했다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렸는데. 결혼까지 간 것도 후회됐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 하나 살려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발버둥 쳤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돈은 없는데 알량한 자존심만 있고. 가장 역할을 하고 싶은데 능력은 안 되고. 성격은 더럽고... 언니는 이 새끼가 남자로 안 보이고. 아이고... 지옥 속에 살았겠네. 둘이 전혀 안 맞다. 이건 부적을 써도 같이 못 살 조합이다.”
처음 만난 무당은 마치 우리의 결혼 생활을 엿본 것처럼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냈다. 그녀의 일침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반박할 말도 없고. 기운에 눌려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이혼만은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언니는... 이 새끼랑 결혼만 안 했어도 더 승승장구했을 텐데. 하필 이런 새끼가 인생에 들어와서 물을 흐려놨네. 쯧쯧”
한심하다는 건지. 안타깝다는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근데 이미 엎어진 물인데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무너뜨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근데 이혼한 건 잘했다. 계속 살았으면 둘 다 숨 막혀 죽었다. 이번에 조상신이 도왔다.”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묘하게 누군가 나를 끌고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도와준 걸까? 지하로 추락하는 느낌이 아닌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느낌이 든 건. 어떤 천사라도 나를 구해준 걸까.
“저...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혼 서류만 정리되면 더 이상 엮이지 않을까요?”
꽤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로 무당을 쳐다봤다. 뭔가 이 사건이 쉽게 정리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무당을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에게 3가지 미션을 줬다.
“일단 언니는. 내년까지 결혼식, 장례식 가지 마라.”
첫 번째 솔루션부터 꽤 강렬했다. 무당말에 따르면 올해 기운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므로.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곳에 가지 말라고 말했다. 결혼식, 장례식에는 잡귀신이 많을 뿐 아니라 술자리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런 자리는 피하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그 새끼랑 만나서 결혼한 거 없었던 일처럼 살아라.”
두 번째 해법도 꽤 신박했다. 나보고 결혼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예 언급도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삶에 없었던 것처럼 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에게도 말하고 그에 대한 언급도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그와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 음성까지 모조리 다 지우라고 했다. 만약에 지나가다가 그를 우연히 봐도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라고 했다.
이어 그와 관련된 모든 연락처와 사진들. 말끔하게 다 지우라고 했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내 마음속에서도 훌훌 날려버리라고 강조했다. 안 풀리던 수학 문제 해설집을 주듯이 자세하게 말해줬다.
“그리고 마지막, 언니 올해는 남자 만나지 마라. 한 5명 정도 들어올 건데. 언니한테 남자 역할 할 수 있는 사람 한 명도 없다.”
마지막까지... 입이 떡 벌어지는 소리였다. 침묵이 지나가고 잔소리는 이어졌다. 남자한테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도 안 했다며. 주변에 있는 사람 만나지 말고 차라리 소개를 받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들었지만. 무당한테 들으니 또 색달랐다. 무당말을 100% 맹신할 순 없겠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말들만 해주는 것 같아서. 뭔가 안심이 됐다. 난간에 위태롭게 버텼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면서. 아주 조금 슬퍼졌다.
무당이 내게 준 미션이 너무 인상적이라서. 따로 적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문득 나 다시 제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저 다시 예전처럼 잘 살 수 있을까요?”
힘없이 질문하자 무당은 피식. 웃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화냈다가. 다그쳤다가. 다시 웃었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에 묘하게 긴장됐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두렵기도 하고.
“언니야. 내년부터 기운이 물갈이돼서 주변 사람들이 싹 바뀐다. 올해 말까지 언니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 절대 잡지 마라.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연들이다.”
이혼을 하게 됐으니. ‘돌싱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으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난다는 말일까? 아니면 이혼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한 번에 끊어지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인맥이 물갈이 된다는 뜻일까? 순간 멍해졌다.
근데 확실한 건 가정폭력에 벗어났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집에 가는 길이 두렵지 않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뭐 주변 사람들이 날 떠나가도 상관없다. 그냥 괴롭히는 사람이 사라진 것만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올해보다 훨씬 더 바빠진다. 언니 역마살 3개 있는 거 알제? 밖으로 나돌수록 일이 잘 풀리니까 수시로 여기저기 다녀라.”
지금 서있을 힘도 없는데 돌아다니라고?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뭐 시키는 대로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언니는 내년에 직업 하나 더 생긴다. 부업이 본업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 새끼로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재밌게 살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