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변화–히피펌 첫 도전

ep07 지옥을 탈출한 여자

by 윤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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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펌으로 빠글빠글하게 해주세요.”


이혼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미용실이었다. 무당이 결혼이 없던 일인 것처럼 살라고 해서. 스타일의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처럼 얼굴에 점을 찍고 등장할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걸 찾았다.


“히피펌이요? 얼마나 빠글하게 해드릴까요?”


미용사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역시 내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태어나서 히피펌은 처음이다. 항상 단정한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파마도 웨이브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낯선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불행했던 과거의 나와는 이별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제 이미지를 완전 다르게 바꿔주세요.”


비장한 표정으로 미용사를 쳐다봤다. 미용사는 사진을 몇개 보여주고 내게 선택하게 한 후. 머리카락을 하나씩 말기 시작했다. 굉장히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1인 미용실이라 그런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힙한 노래가 흘러나와 심장을 쿵쿵 두드렸고. 은은한 커피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멍 때리면서 미용실을 자세히 보니. 인테리어를 화이트톤으로 맞춰서 그런지. 굉장히 모던하고도 세련된 느낌이었다. 기분 전환이 확실히 됐다.


“근데 혹시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가요?”


머리카락을 반 정도 말았을 때.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미용사는.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이혼한 걸 얘기해도 될까. 그냥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할까.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건데.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말해버리자. 치밀하게 거짓말할 자신도 없다.


“저 사실... 최근에 이혼했어요... 가정폭력으로...”


지인이 아닌 낯선 사람에게 처음 고백하는 거였다. 예상 반응은 괜한 것을 물어봐서 미안하다거나 지금은 괜찮냐고 걱정하는 거... 둘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어머 축하드려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축하한다고? 미용사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내 이혼을 축하해 줬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약간 떨떠름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받아쳐야 할까.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축하할 일은 아니죠. 라고 말해야 하나.


적당한 대답을 떠올리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거울을 쳐다봤다. 그러자 미용사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사실 저희 엄마도 가정폭력으로 아빠랑 이혼했거든요. 아빠가 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악마에게서 탈출한 거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문득 변호사가 내게 말해준 게 생각났다. 우리나라 이혼 사유 2위가 가정폭력이라고.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만. 가정폭력과 지옥은. 꽤 가까운 곳에서 항상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벗어나니까 너무 행복해요.”


따뜻한 그녀의 눈빛과 말투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와버렸다. 이혼 후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확실한 건 이혼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뭐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미용사는 같은 경험을 한 동료를 만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혼하기 전 그녀의 가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가족이지만 가깝지 않았다. 처음 봤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보다 오히려 더 편한 느낌이었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엄청 고생했거든요. 엄마로 모자라서 저까지 손찌검하려고 하니까. 엄마가 못 참고 이혼한 거예요. 분노조절장애인 아빠랑 같이 살 때까지는. 집이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었어요.”


만약 내가 그와 계속 살아서 아기까지 낳았다면. 저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도. 내가 경험한 지옥을 대물림 했어야 했다. 몇십 년 동안 그걸 버텨내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관계에서 폭력이 개입되는 순간 사랑은 사라진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저도 집에 들어가는 길이 항상 두렵고 무서웠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에 느낄 수 있는 깜깜한 어둠은. 집에 들어갔을 때의 두려움과 비교하면 어둠도 아니었다. 1분 1초가 고통스러웠던 그때를 떠올리자 문득 한없이 슬퍼졌다.


“저희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나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항상 우울하고 의욕이 없었는데. 지금은 운동도 열심히 다니시고 제 일도 가끔 도와주시면서 재밌게 살고 있어요.”


미용사는 아빠가 없다는 공백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괴물에게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다는 것에 감사함이 크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혼하고 너무 답답해서 무당한테 갔는데... 결혼이 없었던 일처럼 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머리 스타일부터 변화시키려고 여기 왔어요.”


처음 본 사람에게 무당을 만난 이야기까지 하는 스스로가 웃겼다. 하지만 나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니. 브레이크 없이 계속 이야기가 나왔다.


“제가 진짜 예쁘게 해드릴게요.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면 될 것 같아요. 어리고 예쁜데 뭐가 문제예요!”


미용사는 신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니. 진짜 별일이 아닌 것 같았다. 기간이 길지 않고. 아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머리는 완성됐다. 태어나서 이렇게 빠글한 파마는 처음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세요!”


미용사는 내 머리에 에센스를 발라주며 말했다. 사과처럼 상큼한 에센스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뭔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미용사의 톤에 맞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머리를 예쁘게 해준 것도 물론 너무 고맙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그 진심 어린 응원이 너무 고마웠다.


결제를 하고 미용실 밖을 나오니 따뜻한 햇볕이 나를 반겨줬다. 하늘색으로 투명한 하늘은 물론 연두색 나뭇잎에 비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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