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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n 25. 2019

퇴사 후 유럽 - 스페인 그라나다에서(2)

2018.04.28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10일이 지났다. 믿어지지 않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기억 또한 빠른 속도로 희미해져 간다.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라져 가는 기억이 아쉽다.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그 순간만큼 생생하고 가슴 벅차오르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유럽에 오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만큼의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여행은 처음 그 순간이 가장 임팩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많이 느끼고 담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전혀 다른 이곳에서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유럽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한국으로 여행 온 외국인의 시선이 나와 같을까를 상상해 본다. 한국이 너무 싫고, 한국을 떠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기대하며 유럽에 왔지만 이 곳에서도 나의 삶이 극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유럽이 아닌 다른 어떤 나라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여행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기에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어느 곳에서든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회사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회사가 싫어서 박차고 뛰쳐나왔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러 걱정과 두려움이 든다. 다시 시작한다면 견뎌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견뎌낸다는 것, 버틴다는 것이 마음을 짓누르며 공황상태로 만든다. 분명 즐겁게 일했던 기억도 있을 텐데, 좋지 못한 순간들만 떠올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인데 왜 그게 힘든 것인지 모르겠다. 일은 일, 관계는 관계, 나는 나, 각각 개별적인 문제들로 선을 지키고 싶은데 어느 순간 무엇이 일이고 관계 문제이고 내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뒤엉켜 버린다. 생각하니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닫혀버린다. 문을 자유롭게 여닫는 방법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를 잘 지키며 살아온 것이라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오로지 나 혼자였을 뿐이다. 문을 열어 나를 꺼내 주려고 노력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에도 응답하지 않고 더욱 깊숙이 숨어버리는 나를 보고 이제는 아무도 문을 두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바보 같게도 나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노크소리에 안도하며 고립된 그 공간에서 평안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데, 나갈 방법을 모르겠다. 다시 누군가가 노크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를 꺼내 주길 바라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안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혼자 여행을 하는 하루하루를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훅 '혼자'라는 단어가 강조될 때면 조금 외로워진다.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삶을 살아갈 때 '혼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가져다준다. 나는 그동안 무엇인지도 모를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정말 '애쓰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혼자만의 힘으로는 평생을 노력해도 이 공허함을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두렵더라도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거리는 아직도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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