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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01. 2019

퇴사 후 유럽 - 프랑스 파리에서

2018.05.02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아무런 입국 절차 없이 기차에 앉은 채 국경을 넘는 경험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어제 바르셀로나 호스텔에서 한국인을 정말 많이 만났다. 특히 혼자 여행 온 여성들이 많았다. 그중에 사회성도 있고 밝아 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줘서 오랜만에 한국어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직장생활에 대해(직업은 달랐지만) 고민하는 바도 똑같고, 상처 받은 경험들도 비슷비슷했다.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였는데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미래 준비를 나름 철저하게 하고 있어서 배울 점도 많았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나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오늘 오전에는 조식을 먹다가 맞은편에 앉은 남성 분과 간단하게 이야기 나눴는데, 본인은 캘리포니아에서 왔단다. 취직을 한 이후로 업무가 바빠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다가 오게 되었다며 상사가 아시아(일본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인데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본인도 잘 쉬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딜 가든 아시아 사람들 밑에서는 일을 하면 안 되겠구나를 느꼈다. 하하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고, 낯선 곳에서는 혼자라는 긴장감에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피하곤 했다. 하지만 적응이 된 건지, 외로움 때문인지 타인이 보이는 관심에 쉽게 마음이 열리고 정말 최악의 영어 실력인데도 어떻게 해서든 말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타인에게서 공감되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파리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우연히 새로운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피곤함에 잠깐 졸다가 그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 커피라도 마시면서 여행 기록이라도 정리할 생각에 식당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동시간대에 식당칸에 같이 도착한 그분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잠깐 대화라도 나눌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커피를 다 마셨고, 그분 또한 본인이 주문한 음식을 다 먹은 후였다. 본래 고향은 스페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영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유럽 전역을 다니며 금융 컨설팅을 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굉장히 외향적이고 대화를 좋아하시는 그분은 최악의 영어회화를 구사하는 나에게 계속 용기를 주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결국 구글 번역기를 써서 소통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화의 주제가 '신'과 영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러가니 짧은 영어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화를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분이 나에게 최선을 다해 전달하려고 했던 조언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흔들림의 연속이니, 흔들리지 않은 강한 무엇인가를 붙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본인은 그 강한 의지를 '신'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여행을 와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으려는 나를 보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본인 동생이 대한민국 서울 이태원에서 레스토랑을 크게 운영하고 있으니 꼭 가보라며 자신의 명함에 사인까지 해서 건네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저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을 수 있는지, 관계에 두려움이 없을 수 있는지. 이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무엇을 배우며 살았을까? 이 분이 해 주었던 인생의 조언은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었다. 성장과정에서 항상 엄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처음에는 엄마 말을 듣고 정말 그렇게 해 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타인의 기대에 지나치게 맞춰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쉽게 지치는 타입이다. 타인이 나에 대해 나쁜 평가를 하거나 실망했다는 표현을 하면 스스로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때문에 나에게는 항상 관계가 어려운 과제이다. 영어를 못해서 관계를 피한다는 것은 깊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 핑계 댄 것일 뿐이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던, 말을 잘하던 하지 못하던, 나는 관계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


가끔은 긴장감을 툭 놓아버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사람과 관계하는 것을 상상한다. 때로는 상처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인생에서 '그냥'은 없다. 뭐든지 인과관계가 있고, 인생에 있어 단순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를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그 분과의 만남 또한 인생이 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이를 인지만 할 것이냐 실천에 옮기느냐는 오직 '나'의 선택이다. 남은 여행 기간 동안은 좀 더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어보도록 해야겠다. 아니면 뭐 어때, 여기서는 완벽한 타인이니 조금은 무책임해져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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