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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05. 2019

퇴사 후 유럽 - 스위스 바젤에서

2018.05.05

프랑스 철도 파업과 은행의 전산시스템 중단 위기를 넘기고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스위스 바젤에 무사히 도착했다. 예약한 기차가 취소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이른 아침 시간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한 터라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긴장감에 잠을 설쳤더니 무척이나 피곤했다. 스페인에서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었는데 프랑스로 넘어온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도 분주했다.


그렇게 도착한 스위스 바젤의 첫인상은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바젤이라는 도시를 느끼기도 전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빨리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걸음을 재촉해서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려는데, 전압 코드가 맞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여행책에서 유럽의 몇몇 나라가 전압이 안 맞으니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확인하긴 했는데 안일하게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결국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 근처에 전자상가를 찾아 구입하긴 했는데... 스위스 물가가 정말 비싸긴 비쌌다. 우리나라 다이소에 가면 5천 원이면 살 물건을 3만 원에 주고 사려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돈을 아껴가며 여행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크게 지출을 하게 되니 뭔가 억울했다. 게다가 마트에서 장 본 음식을 숙소 공용 냉장고에 넣어 놓고 씻고 나왔는데 그 사이 누군가가 내가 사놓은 음식 일부를 먹었다. 아...

여행이 순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스위스에 도착해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니 안 그래도 지치고 힘든데 온갖 짜증이 다 올라오는 듯했다. 


항상 좋은 것만 허락하지 않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가끔은 (별거 아니지만) 이런 사건사고들을 겪게 함으로써 세상에 즐겁고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은 것이라고 깨달음을 준다. 그래도 나 정도면 정말 무난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했고, 철도 파업의 위기도 무사히 넘겼고, 여자 혼자 몸으로 위험한 일을 당하지도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졌다.


생각해보면, 내 나이에 '퇴사' 그것도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퇴사를 결심한 것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선택을 후회하거나 번복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렇게 갈망했던 온전한 '쉼'을 실천하고 있고, 그 쉼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든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삶의 모습은 다를지라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갖지 못한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들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이지 각자가 '견뎌내야 하는' 무게는 분명 있다. 


이 여행의 끝에 한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나 또한 일상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억울하고 힘든 일만은 아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하루하루가 사실은 나를 포함한 다수가 견뎌내는 일상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이런 용기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면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들었다.


여행이 25일 남았다. 이동할 나라들도 아직은 많다. 용기는 얻었지만 아직은 좀 더 여행에 집중하고 싶다.

스위스 바젤에 도착하기 전 들른 파리 스트라스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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