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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03. 2019

퇴사 후 유럽 - 프랑스 파리에서(3)

2018.05.04

여행을 하는 동안 최대한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려고 카드를 발급해 왔는데, 전산을 새롭게 구축한다고 체크카드 및 계좌 입/출금이 3일 동안 불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게다가 철도파업으로 운행이 되지 않는 기차도 있단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들 때문에 정신없이 오전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와도 중요한 건 '일상의 유지'이다. 


다행히 내일 출발하는 기차는 취소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일정이 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자 당장 오늘을 즐기기보다는 내일, 그리고 앞으로 남은 여행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편히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낼 수가 없었다. 어제의 낭만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파리'라는 도시가 나에게 주는 낯설고 차가운 이미지만 남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복잡하고 시끄러운 소음들, 화려한 도시 뒤에 숨은 낡고 허름만 건물과 가난한 사람들. 세계 어디를 가도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여행을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내며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머무른다. 나는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일찍 선택해서 고집스럽도록 한 가지 길만 추구했다. 주변의 우려, 근로 조건이 좋은 곳에 대한 권유와 추천도 받았지만 내 길은 이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알면 알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무력감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의 성과를 내야 했다. 실수를 하면 그건 나의 잘못으로 화살이 돌아왔지만, 좋은 성과를 내면 그건 누구나 해내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조직생활이야 다 그렇겠지만, 나라는 주체성이 사라지고 기관의 부속품이 돼버린 느낌을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이 주체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 상태로는 경쟁력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럼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혔다. 어른들이 그렇게 '기술을 배워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진리를 이렇게 또 깨닫는다. 차라리 기계를 다루며 기계와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왜 그 당시에는 몰랐던 것일까.

그냥 '내 일'만 하고 마음 편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없단 말인가. 내 일과 상관없는 인간관계까지 고려하며 또 머리 복잡한 조직생활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퇴사 전에 좀 더 현명하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감정에 치우친 게 아닌가는 후회도 들었다. 아무리 나에게 마음을 열어라 메시지를 줘도 나는 결국 이렇다. 사람이 무섭고 힘들다. 다시 마음이 얼어붙고 더욱 높은 장벽을 쌓는 느낌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있다 보니 더욱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오늘 하루 오전부터 마음 졸이며 다녔던 여파였는지, 한국에서 하는 걱정과 고민들로 파리의 마지막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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