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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06. 2019

퇴사 후 유럽 -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2018.05.07

호스텔이 숙박비는 저렴한 편이어서 긴 여행을 할 때는 여러모로 경비를 아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어떤 룸메이트와 방을 함께 쓰느냐에 따라 수면의 질은 달라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부터 코를 고는 사람 옆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몸소 체감했는데, 어제 바젤에서 머문 호스텔에서도 불운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해서 일찍 잠이 들었는데, 머리를 울릴 만큼 큰 소음이 들려서 잠에서 깼다. 내 밑에 층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코 고는 소리였다. 그 후로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고 소음을 피해 잠에 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니 이동하는 동안 머리가 멍하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힘들게 인터라켄에 도착했지만 빨리 숙소로 이동해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번에도 도미토리 룸을 예약했기 때문에 긴장되는 마음으로 체크인을 했는데, 오늘 예약한 손님이 나뿐이란다. 2층 침대가 무려 3개(총 수용 인원 6명)나 배치되어 있는데 이 방은 오늘 하루, 나 혼자 쓸 예정이니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안내하며 호스트는 자리를 떠났다.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신이 나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크게 지르고 싶었다. 인생은 정말 플러스, 마이너스 영이다. 어제까지는 정말 끔찍한 밤이었는데, 오늘은 나 홀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일요일의 스위스는 정말 고요했다. 어떤 상점도 여는 곳이 없었다. 겨우 문을 연 슈퍼마켓을 찾아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해 먹고 씻고 잠이 들었다. 오후 7시쯤 잠이 든 것 같은데 깨보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기분이었다. 멍했던 머리도 맑아지니 그제야 인터라켄을 둘러볼 힘이 났다.


케이블카를 타고 피르스트로 향했다. 케이블카만 20분 이상 탔던 경험이 새로웠다. 한국에서는 길어봤자 10분 내외인데, 이 곳의 케이블카는 도대체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점점 고도만 높아지니 조금은 아찔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의 경이로운 풍경에 두려움은 곧 사라지고 360도로 펼쳐진 자연을 감상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하얗게 쌓인 눈이 반사되어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서는 시선을 두기 힘들었다. 분명 내가 있는 곳은 현실인데,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불어 일으킬 만큼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뭐라 표현할 수 없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은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하루 종일 앉아서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라우터브루넨에 돌아와 주변을 산책했다. 빙하가 녹아 산꼭대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자연 폭포를 바라보며, 물방울 하나하나가 '중력'에 의해서 끌어당겨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초원에서 쉬고 있는 소들의 목에 걸린 종에서 나는 방울 소리마저도 인위적이지 않고 풍경에 녹아들어 하나의 하모니를 내는 듯했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마주하며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심신이 충분히 위로받고 충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를 거쳐 왔는데 스위스는 정말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나라였다. 그동안 유럽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큰 범주에서)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스위스는 달랐다. 물론 물가는 비싸고, 이민정책이 까다롭다는 등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 다르겠지만 내게 기회가 있어 살고 싶은 나라를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스위스'라고 답하겠다. 이번 생이 안된다면 다음 생에는 스위스에서 풀을 뜯어먹고 사는 '소'라도 되고 싶을 만큼 인터라켄의 자연풍경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 곧 베른으로 떠난다. 5월로 접어든 여행은 벌써 마지막을 생각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어느 순간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체력적, 정신적인 힘듦에 우울함을 더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스위스 인터라켄에 와서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을 보게 되니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쉼을 통해 체력도 충전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들을 다니다 보니 내 여행 스타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고, 앞으로 어떤 여행을 가고 싶은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행은 그동안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한다. 


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나'의 모습을 대입하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여행이 새로운 만남과 문화를 체험하는 경험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는 혼자 조용히 사색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치유하는 시간으로 여행을 만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외로움은 느끼지만 그 외로움 때문에 억지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고 시간은 오래 걸려도 방법을 찾고 크게 실수가 없다. 나는 사교적이고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자립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성향이 크다. 조직생활을 영민하게 잘하지 못할지라도 스스로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고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며 생활한다. 

그동안 나의 이런 모습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게 어떻게 나의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행을 와보니 알겠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다. 그러니 한국에 돌아가서도 난 잘 해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 갈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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